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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준(삼괴중학교)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일까? 매점 음식물 쓰레기를 교실 내로 들여오지 못하게 섣불리 지도하다가 큰 코 다쳤다. 반 학생들이 다퉜는데 한참 생각해 보지 않아도 학급 담임인 내가 매를 맞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매점 음식물 쓰레기를 교실 내로 가지고 들어오면 처벌한다는 교칙도 없으니 학교 책임은 쉽게 벗어날 수 있을 터이고, 싸운 학생들은 서로 옥신각신하며 모두 자기가 옳다고 하니 결국, 싸움이 일어난 규칙을 운영한 내게로 원망의 화살이 날아올 게 틀림없다.
   교실이 지저분해지기 때문에 반에서 음식을 먹거나 매점에서 먹다 남은 음식물을 갖고 들어오면 이름을 적게 한 게 문제였다. 이름이 적히면 교실 청소를 시켰는데, 걸린 아이 이름을 적는 과정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이름이 적힌 아이는 음식물을 밖에서 먹었는데 입에 조금 남은 걸 가지고 적었다는 것이고, 이름을 적은 아이는 딴 아이라면 말이 없었을 텐데 자기를 얕잡아 보았기 때문에 이름을 지우라고 하며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바로 전날, 이름이 적힌 아이들을 청소시킬 때 불만이 있는 것을 감지하고 그만 두려고 했는데, ‘아차’하는 사이에 싸움이 났다. 그냥 주먹질도 아니고 가지고 있던 컴퍼스로 상대방 학생의 머리를 찍어 피가 나게 해서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게 됐다. 머리를 보니 다행히 빗겨 맞아 그리 큰 상처를 입지 않아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조금 잘못 맞았다면 정말 양쪽 학부모님을 이해시키지 못할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이름을 적는 아이나 이름이 적힌 아이나 모두 착한 아이들이라 싸움까지 이르게 한 ‘이름 적는 일’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부랴부랴 그날로 학생들 이름 적는 것을 그만 두게 하였다. 일주일에 하루를 정해 쌍스러운 욕을 하는 아이 이름을 적는 일도 자연스레 그만 두었다. 욕하는 아이의 이름을 적는 학생은 싸움을 잘해서 학생들이 대들지 않았다고 한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교사가 학생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해 상처를 준 부분이다. 초기엔 학생들도 재미있어 하기에 서로 감시하는 가운데 자율적인 학급 운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를 놓고 보니 너무 안이한 발상이었다.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도 환경부나 학생부에서 매점 쓰레기를 교실에 들여보내지 말라고 지도했어도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는데, 중학교에서는 왜 그랬는지를 따져 보면 이번 일의 문제점은 쉽게 나온다. 고등학생들에게는 매점에서 빵이나 아이스크림을 먹다 미처 못 버리고 가져온 쓰레기는 교실에서 분리하여 배출하도록 지도했는데 중학생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중학생들은 고등학생보다 통제가 더 쉽다고 생각해 아예 갖고 들어오지 못 하게 한 것이었다.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않고 명령으로 접근하고 있는 중학교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등학교는 머리를 자유롭게 기르고 휴대전화를 갖고 등교를 할 수 있는데 같은 운동장을 쓰고 있는 중학교 학생들은 엄격하게 두발을 관리하고 휴대전화를 아예 갖고 오지 못 하게 한다.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헤아리는 마음이 아쉽기만 하다. 겉으로 학생들이 말을 안 하니까 모르는 줄 알고 너무 쉽게 교사들이 일을 처리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교사들이 착각 상태에 빠졌다고 하면 지나칠까? 더구나 교사가 교사에게 충고를 금기시하는 막힌 구조에서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에 우울한 풍경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학생들의 말을 차분히 귀담아듣지 않는 사이에 학교나 교사에 대한 불신은 점점 더 자라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어떤 규칙을 정하기 이전에 교사들의 판단력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은 어려서 자기 뜻을 전달하기 힘들고 그나마 그들의 뜻을 반영할 수 있는 창구는 교실에선 오로지 교사뿐이 없는 현실이다. 학생들에게 매점 음식물을 교실에서 먹지 말라고 하기 전에 교실에서 쓰레기를 잘 버리게 지도하면 왜 안 되는지, 200원짜리 불량식품 오징어 다리를 교실에서 먹어 냄새 풍기는 것을 탓하기 전에 매점에다 그런 음식을 팔지 말아 달라고 말 한마디라도 했었는지 생각해 봐야 했다. 학생이 생각이 없고 걱정되는 일을 많이 하고 지도하기 힘든 만큼, 우리 교사도 그에 못지않게 생각이 없이 생활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게 된다. 관리자에게 조금이라도 싫은 소리를 들으면 그대로 학생에게 화풀이하여 교실을 경직되게 만들고, 교사가 중심을 잡지 못 하여 학생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는 나를 보면서 하는 말이다. 교사야 시키는 대로 해서 편할 수 있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가고, 학생들은 그 충격으로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실 풍경을 생각해 보면 교무실 풍경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면 솔직히 얘기하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은 왜 그럴까? 그러나 그게 쉽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생들처럼 이름을 적고 치고받을 수 있는 투박한 관계가 그나마 행복하지 않은가 하는 불순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소통의 부재 때문에 생긴 답답한 푸념이다. 싸움 사건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날 오후에 학교 안내 방송으로 매점 쓰레기를 교실에 반입하는 학생들을 혼내겠다는 말이 여전히 흘러나왔다. 내겐 그 소리가 듣기 싫은 소음으로만 들렸는데 그 이유를 언제 솔직히 말할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