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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다듬기
이대성(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선임연구원)
   제주도에 영어 교육 도시를 만든다고 한다. 영어 잘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초등학교 7개, 중학교 4개, 고등학교 1개를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영어 초등학교에서 특별히 영어를 잘하는 학생은 영어 중학교에 보내고, 거기서 또 영어를 잘하는 학생은 영어 고등학교에 보낼 모양이다. 이 영어 학교를 나온 학생은 영어만 잘하게 될지, 아니면 영어도 잘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온 나라가 이렇게 나서서 영어 공부를 시키지 않았던 때에 학교를 다니던 이들도 지금 국어 능력이 부족하다며 회사 생활이 힘들 때가 많다고 하는데,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에 매달려 자라날 학생들의 국어 능력은 과연 어떤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인가? 우리 역사와 문화는 잘 모르고 미국의 역사와 문화만 아는 학생만 되지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기르기 위한다지만 국제 경쟁력이 영어만 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어찌하여 너도나도 영어만 파고들게 만드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국어와 국사만 빼고 영어로 모든 수업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다른 과목은 우리말로 강의하건 영어로 강의하건 정말로 별 차이가 없을까? 모든 학문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맞춤법만 익혀서는 국어 능력이 높아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와 경제와 문화 현상에 대한 지식을 두루 갖추어야 국어 능력을 높일 수 있다. 국사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옛 모습은 우리말로 바라보고, 지금 모습은 영어로 바라보게 해 놓고서 우리 역사를 과연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배운 역사가 얼마나 쓸모가 있겠는가?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고, ‘말은 정신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는데, 국어로 배운 과거가 영어로 배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는 없다.
   영어 학교를 다니려는 학생들 가운데 영문학과 교수나 외교 통상 분야의 전문가를 꿈꾸는 이가 많을까, 아니면 의사나 법관을 꿈꾸는 이가 많을까?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성공의 수단으로서 영어를 배운다. 달리 말하면, 학문하는 기쁨을 느끼면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나 아니라, 일종의 자격증과 같은 토플이나 토익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 영어를 배우는 이가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결국, 영어 학교의 설립은 ‘국제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 아래에 10살도 안 된 어린아이에게 성공의 지름길만을 가르치려 하는 반교육적인 정책인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영어 말고도 가르쳐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글쓴이도 그렇거니와, 통역기와 같은 기계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영어 실력만 갖추면 바랄 것이 없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말 실력도 그런 정도에서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모국어 교육과 외국어 교육을 서로 다른 관점과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은 언어를 모국어와 외국어로 나누어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되는 언어와 돈이 되지 않는 언어로 나누어 정책을 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말마저 시장 논리에 맡겨서야 되겠는가!
   얼마 전 부산시는 “부산을 국제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만들기 위해 영어를 공용화하는 문제를 종합적이고,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대해 같은 시 교육감은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문제점은 (학교) 외부에서 영어에 노출되는 환경이 전혀 없고 교사들이 과거에 문법, 해석식 교육을 받았다는 점”이라며 맞장구를 쳤다는 보도를 보았다.
   부산은 우리나라 제1의 항구 도시이다. 그만큼 외국인과 접할 기회도 많을 것 같다. 그런데 부산의 교육감은 ‘학교 밖에서 영어를 접하고 쓰는 상황이 흔치 않다’고 얘기한다. 부산이 이럴진대, 다른 지역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에 적합한 영어 정책은 무엇인가? 일반 대중에게는 필요한 만큼의 영어 교육을 시키고, 외국인과 자주 접하는 일을 하거나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좀 더 전문적인 영어 교육을 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방안이다. 그러나 부산시와 교육감은 우리 사회를 지금보다 더 영어가 필요한 사회로 만들어서 누구에게나 전문적인 영어 교육을 시키려는 방안을 찾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발표 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한 해에 영어 교육에 들이는 비용이 10조 원이 넘는다. 그 돈이 비효율적으로 쓰인다고 하여 영어를 많이 쓰는 환경을 만든다며 영어 학교니, 리틀 유에스(little US)니, 영어 마을이니 하는 것을 곳곳에 세우려 하고 있다. 하지만 별 효과도 없이 예산만 낭비하고 있음은 보도를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생각을 바꾸어 영어 교육에 들어가는 돈의 반만이라도 다른 기초 학문에 투자한다면 국제 경쟁력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아니, 그 돈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통역기 계발에 투자하는 것이 영어를 공용어로 만드는 일보다 훨씬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할 것이다.
   글쓴이에게는 무역업을 하는 고교 동창이 있다. 학교에서 배운 영어 실력이 전부였던 이 친구가 지금처럼 외국인과 막힘없이 통화할 만큼 영어 실력을 갖추는 데에는 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무역업으로 직업을 정하고 나서 열심히 외국어를 공부하였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이 친구를 보면서 조기 외국어 교육의 허상을 본다. 어린 시절에 알아 두면 평생의 자산이 될 수 있는 많은 지식들이 있다. 이를 배우고, 익히고, 경험하는 데에 들여야 할 시간의 대부분을 영어에 빼앗긴 청소년들이 과연 얼마나 우리 사회를 능동적으로 이끌어나갈 것인가? 더 이상 어린 학생들에게 필요 이상의 영어를 배우고 쓰게 하지 말자.
   영어, 필요한 만큼만 배우고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