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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연세대 교수)
   ‘꼿꼿하다’란 ‘① 물건이 휘거나 구부러지지 아니하고 단단하다 ② 사람의 기개, 의지, 태도나 마음가짐 따위가 굳세다 ③ 어려운 일을 당하여 꼼작할 수가 없다’란 뜻을 가지는 단어다. 원래 ①의 뜻이었다가 ②의 뜻으로 전의(轉義)된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②의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꼿꼿하기는 개구리 삼킨 뱀’(고집이 센 사람을 일컫는 말), ‘꼿꼿하기는 서서 똥 누겠다’(고집이 세어서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꼿꼿하다’는 어근 ‘꼿꼿’에 ‘하다’가 붙어서 된 말이다. ‘꼿꼿이’란 부사도 있으니 ‘꼿꼿’이 어근임에는 틀림없는데, ‘꼿꼿’이 어디에서 온 말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꼿꼿’은 ‘꼿’이 두 번 합쳐진 첩어인데, ‘꼿’이란 단어나 형태소를 발견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럼 이 ‘꼿’이나 ‘꼿꼿’은 어디에서 온 말일까?
   ‘꼿꼿하다’는 옛말에서는 ‘곧곧다’였다. ‘곧곧하다’는 ‘다리가 곧곧하다’, ‘목이 곧곧하다’처럼 앞의 ①의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예문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17세기 말의 <마경초집언해>이다.

   허리 으며 다리 곧곧고 몸 얼굴이 여윈 이 신 위홈이라 <마경초집언해(1682년)상,37b>
   즘으로 여곰 긔후 브어 합며 식상이 허부며 머리를 펴고 목을 곧곧며 긔운이 촉고 천이 추니 이 상황증이니 <마경초집언해(1682년)상,89a>

   ‘곧곧하다’는 ‘곧다’의 어간인 ‘곧-’이 겹친 첩어(疊語)다. 즉 ‘곧고 곧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곧하다’에서 온 말이 아니라 ‘곧다’에서 온 말이다. ‘곧하다’란 단어는 쓰인 적이 없다. 한 어간 ‘곧-’에 ‘하다’가 붙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다’와 ‘믿하다’와 같은 단어가 공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대개 첩어의 어근에는 ‘다’를 붙여서 부사로부터 형용사를 만든다. 그래서 ‘똑똑하다’도 옛날 문헌에는 ‘다’로 출현하기도 하며, ‘섭섭하다’는 지금도 ‘섭하다’란 단어가 함께 쓰이고 있어서 두 단어가 같은 뜻을 가진 채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결국 ‘곧다’의 ‘굽거나 비뚤어지지 아니하고 똑바르다, 마음이나 뜻이 흔들림 없이 바르다’란 뜻은 ‘곧곧다’와 같은 첩어가 되면서 ‘곧다’와 거의 유사한 의미로 쓰이되, 의미를 더 보완하는 용법을 가질 뿐이다. 그래서 사전에 풀이된 ‘곧다’의 뜻풀이를 ‘꼿꼿하다’의 뜻풀이로 대신하거나, 거꾸로 ‘꼿꼿하다’의 뜻풀이를 ‘곧다’로 대신하여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곧다’의 첫 번째 뜻풀이는 ‘굽거나 비뚤어지지 아니하고 똑바르다’인데, ‘꼿꼿하다’의 뜻풀이는 ‘물건이 휘거나 구부러지지 아니하고 단단하다’로 되어 있어서, 된소리가 되면서 ‘단단하다’는 의미를 더 첨가시킨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뜻풀이도 ‘곧다’는 ‘마음이나 뜻이 흔들림 없이 바르다’인데 ‘꼿꼿하다’의 의미도 ‘사람의 기개, 의지, 태도나 마음가짐 따위가 굳세다’이어서 미세한 감정적 차이만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곧곧다’는 어간말에 ‘ㄷ’을 쓰지 않는 표기상의 제약으로 ‘곳곳다’로 변화하였다. 19세기 말까지도 쓰이었지만, ‘꼿꼿하다’의 약한 표현으로 20세기에 와서도 사용하였다.

   몬져 막대로 얏 노 우희 輕輕히 텨 보아 만일 고 곳곳면 이에 올코 屍를 옴기지 아니홈이라 <증수무원록언해(1792년)2,24a>
   대개 발마 가지 덧덧이 곳아 사이 힘써 잡아 당긔면 더옥 곳곳야 올나 가니 <성경직해(1892년)4,5b>
   나는 곳곳한 나무가지를 고나 띠를 째서 줄을 메워 훌륭한 활을 만들었다. <1955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55년)171>

   ‘곳곳다’의 부사형이 ‘곳곳이’였음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등잔  두 눈에 바로 곳곳이  셔시니 山 여 動憚티 아니니 애졍히 一條好漢이러라 <박통사언해(1677년)하, 31b>

   이 ‘곳곳다’가 된소리화되어서 ‘다’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이지만, 그 부사형인 ‘이’가 18세기에 나타나므로, ‘다’도 원래는 18세기 이전에 등장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우연히 18세기 이전의 문헌에서 그 용례를 찾기 힘들 뿐이다.

   모시 두어번  다  활셕니나 녹말이나 먹이면 야 죠흐니라 <규합총서(1869년),27b>
   다(剛直) <한불자전(1880년),196>
   목 다 <한불자전(1880년),243>
   그 빗히 젹이 맑어지고 안면각(顔面角)은 여지며 그 명오도  총명여지고 <경향신보(1906년)2,210>
   이 이 혼을 일엇느냐 지가 니 에그 이것이 죽엇보다 눈도 안이 고 입을  담을엇네 <고목화(1912년)下,114>
   그 든 긔운이 다 어로 가고 얼골이 노지며 등살이 셔 만 어로 피신고 십은 각이 굴둑 갓지마는 <홍도화(1908년)상,359>
   엇더케 긔가 막흰지 얼골빗이 노지고 두 눈이 야 아모 말도 못고 안졋다가 <화의혈(1911년),37>
   등리가 썬듯썬듯 찬물을 더리고 가심이 두근두근 덧이 나려지고 머리 이 야 하늘노 올나가셔 왼몸이 벌넝벌넝 면셔  말리 <박흥보전(1918년),8a>
   그러면 저는 저의 안해에게로 向하는 한 사랑을 일브러 거 이 不具의 女性을 사랑할 수는 업섯습니다. <十七圓五十錢(1923년),69>
   하야진 등살은 고만두고 발락하나 곰 못하는 것이 속으로 인젠 참으로 죽나부다하고 <솟(1935년,134>

   이때에 처음으로 ‘다’의 의미가 ‘단단하고 길쭉한 것이 굽은 데가 없이 쪽 고르다’란 뜻에서 ‘강직하다’란 의미로 전의되어 나타난다. <한불자전>에 ‘다’의 의미로 ‘강직’을 대응시킨 것에서 의미전이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말 이전에 이미 이러한 의미가 새로 생겨난 것이다.

   ‘다’의 부사형이 ‘이’나 ‘히’로 나타남도 당연한 일이다.

   두로 흉년이 되야시니 늣개야 심은 거슨 이 셔셔 도로혀 옴기지 못니만도 못고 <1783호남윤음(1783년),4a>
   일에 곳고 굽지 아니 야 이 셔리와 눈을 업시 여기고 줄기 굿세여 하의 닷케 여나 <명성경언해(1883년),33a>
   그가 저 긔적은 길이 우 갑갓고  야 가기 조흔 거 보지 못냐 거 <천로역정(1894년)하,152b>
   아젼 삼젼만 지도 우리네 의졀을 졀문 놈의 지갓치 이 안 밧고 <삼션긔(19세기),254> 그는 허리를 집고서 이 버틔고 섯다. <靑春(1927년),178>

   그 눈이 크고 콧마루가 놉고 키가 크고 평 몸을 히 고 안젓던 박 진를 각엿다. <무정(1918년)2,317>
   모래 우 자기가 섯든 그 자리에 나무에 붓잡아 매여논 듯이 히 서 잇섯다. <靑春(1927년),52>

   다음의 예처럼 어근인 ‘’ 자체가 부사처럼 쓰이기도 하였다.

   시눌 구렁이가 고를  들고 진 셔를 널늠 널늠 㐗甫 夫妻 大驚야 <박흥보전(1918년)37a>

   ‘다’가 표기법의 변화로 ‘꼿꼿하다’가 된 것 역시 19세기의 일이다.

   밀쵸ㅣ 빗치 잇고 꼿꼿이 잇고 뜨거옴이 잇니 <셩교절요(1864년),18a>
   꼿꼿허다(正直) <국한회어(1895년),33>
   “네 벌써 먹었세요.”하고 허리를 뒤로 꼿꼿하게 펴며 대답을 한다. <환희(1922년),179>
   머리가 다시 족여내는 듯하고 눈속이 꼿꼿하며 조름이 쏘다진다. <백구(1932년),291>
   박대함은 노후의 서름을 사는 것이라고 간곡히 충고하였으나 그의 태도는 여일 꼿꼿하였다. <형(1934년),356>
   밥을 잔뜩 먹고 딱딱한 배가 그럴적마다 퉁겨지면서 밸창이 꼿꼿한 것이 여간 켕기지 않었다. <봄봄(1935년),147>
   까닭없는 은혜를 거저 받지 않겠다는 신씨의 꼿꼿한 마음은 다들 아름다왔다. <금삼의피(1936년),239>
   어느날 식전에 내가 널본 안팍마당을 다 쓸고 허리가 꼿꼿해서 방에 나와 잠간 누어 잇는데 <임거정(1939년),19>
   어더 마저서 뺨이 부어 오를 뿐 아니라 거더 채여서 배쌀이 꼿꼿하야 한동안 쩔쩔 매엇고 <임거정(1939년),515>
   숫하게 고지식하여 한번 책임 맡은 일은 조금도 굽일 줄을 몰으는, 꼿꼿한 사람이였다. <전야(1940년),181>

   그런데 ‘꼿꼿하다’와 유사한 말로 ‘꿋꿋하다’가 사용되고 있다. ‘물건이 휘거나 구부러지지 아니하고 썩 단단하다, 사람의 기개 의지 태도나 마음가짐 따위가 매우 굳세다’란 뜻을 갖고 있어서 ‘꼿꼿하다’의 모음변이로 ‘꿋꿋하다’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자칫 잘못 생각하면 ‘꼿꼿하다’가 ‘곧다’에서 온 것이니까, ‘꿋꿋하다’는 ‘굳다’에서 온 것이 아니냐는 결론을 내리기가 쉬울 것이다. 그래서 ‘꿋꿋하다’는 ‘굳고 굳다’란 의미를 가지는데, 역시 ‘굳다’는 없고 ‘굳굳다’로부터 출발하여 ‘다’나 ‘다’로 쓰이다가 ‘꿋꿋하다’로 정착된 것처럼 해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굳굳다’와 같은 어형이 쓰인 적이 없으며, ‘다’의 등장은 ‘곧곧다’가 ‘다’로 변화한 후에 일어난 일이고, 또 ‘꿋꿋하다’가 ‘굳고 굳다’란 뜻보다는 ‘곧고 곧다’의 뜻을 가진 ‘다’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가 ‘꿋꿋하다’로 변화한 것은 단지 표기법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다’는 ‘다’에서 모음만 대립시켜서, 의미의 큰 대립은 없이, 대신 어감 차이만을 보이는 어형으로 발전한 것이다.

   다 <한불자전(1880년),212>
   일신을  못고 그 밤을 그 모양으로 지니 원력이 고 위혐 경녁을 만히 지본 남 갓흘지라도 <금강문(1914년),382>
   달빗체 石骨彫像가치 하여진 그 放浪者의 ! <국경의밤(1924년),64>
   녜 하고 대답을 하고 십도록 모든 한 感情은 풀려바렷다. <청춘(1927년),90>
   꿋꿋하다(强直) <국한회어(1895년),43>
   영식이는 입의 침이 말으로 혀가 꿋꿋해지는 것을 깨다랏다. <백구(1932년), 308>
   숭은 유 초시의 지극한 정성과 꿋꿋한 의지력에 눌려 더 말할 요기가 없었다. <흙(1932년),134>
   오히려 자기보다 몇 살을 덜 먹은 인순이는 꿋꿋하게 백여내지 안는가. <고향(1932년),138>
   상훈이는 다소 혀 꼬부라진 소릴 하나 그래도 꿋꿋하였다. <삼대(1933년),108>
   도정(都正) 이하전은 종친 가운데 꿋꿋한 사람이었다. <운현궁의봄(1933년),244>
   그러문요, 지금도 꿋꿋하시고 말고요, <금삼의피(1936년),237>
   나는 이렇게 꿋꿋허게 살어 있소이다. <상록수(1936년),458>

   ‘꼿꼿하다’는 ‘곧다’의 어간 ‘곧-’이 첩어가 된 ‘곧곧’에 ‘다’가 붙어서 만들어진 단어인 ‘곧곧다’가 된소리로 된 결과이다. 그리고 ‘꿋꿋하다’는 ‘굳고 굳다’의 뜻을 가진 ‘굳굳다’에서 온 말이 아니고, ‘다’의 모음만 바꾸어 감정이 큰 말을 만들어낸 것이다. 어찌 보면 유사한 의미를 가지는 두 단어가 동일한 구조로 동일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질 것 같지만, 의외로 체계와 구조를 벗어 던지고 전혀 다른 변화 과정을 겪기도 한다. 그것은 어휘가 언어 외적인 요인에 의한 변화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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