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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다듬기
김옥순(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혜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착하디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선우사(膳友辭), 『조광(3권 10호)』, 1937. 10.

   백석(白石, 1912~1995)의 시 제목 ‘선우사(膳友辭)’의 뜻은 ‘반찬 친구에 대한 글’이다. ‘膳’자가 선물을 드린다는 뜻도 있지만 반찬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반찬 친구인 나와 가재미와 흰밥에 대한 글’이라는 뜻으로 제목 ‘선우사(膳友辭)’를 풀이할 수 있다. 나조반(평복 방언 사전에 ‘연석(宴席) 같은 데에 쓰이는 책상처럼 생긴 장방형의 큰 상으로서 표준말에서 쓰는 나좃대를 받쳐 놓은 쟁반인 나조반과는 다르다’고 풀이되어 있다. 음식 소반으로 흔히 쓰는 나주반[나주에서 생산된 전통 소반]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형진 엮음, 『정본 백석 시집』, 2007.) 위에서 흰밥과 가재미와 내가 나와 앉아서 만나는 순간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생각지도 않았던 바다와 벌판과 산골의 새롭고 완벽한 결합을 꿈꿀 수 있음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이 시의 발상법도 특이하다. 시인은 자기가 먹을 반찬으로 놓인 음식물을 향해 동류의식을 느낀다. 이 시 속의 시인과 흰밥과 가재미는 수직적인 지배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친구 관계라는 독특한 발상법을 보여준다. 물론 함주(咸州, 함경북도 함주군)라는 객지에 홀로 있으면서 혼자 저녁밥 먹기 쓸쓸해서 밥상에 놓인 가재미와 흰밥을 보고 말을 걸기 시작하는 데에서 이런 시가 나타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시인이 어려서부터 타고났다고 여겨지는 모든 생물에 대한 생명존중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인간 본위의 일방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다른 생물에 대한 외경 의식을 갖고 쌍방향적 세계관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런 세계관은 원래 시인들이 갖는, 이질적인 데에서 동질적인 것을 찾아낼 줄 아는 은유적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사람과 가재미와 흰밥이 닮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 시를 읽어 보면 이 세 존재는 각각 바다, 벌판, 산에서 아름답게 생장하여 각각 우주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재미는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모래사장)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었고”, 흰 쌀밥이 된 벼는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뜸부깃과의 새. 주로 호숫가나 초습지의 물가에 산다)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었고”, 시인은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솔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났다 그들은 각각 자기나름대로 맑고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자라나서 모두 욕심이 없고, 착하고, 정갈해서 가난해도 정답고 좋다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얗고 억세지 않고 정갈한 공통점을 가진 이들은 각각 바다와 들판과 산골의 아름다운 대상을 대표하며 ‘완벽한 우주적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에 가난해도 서럽지 않고 외롭지도 않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가재미와 벼와 나를 가리키는 이 ‘우리들’은 세상을 반목과 질시가 아닌 하나의 원융(圓融)한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 바탕에 동질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은유적 세계관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이 말은 세상을 버린다는 외톨이 의식이라기보다는 외로운 세 존재가 쓸쓸한 어느 저녁나절 어느 한순간에 완벽한 한 쌍을 이룰 때 이들은 그 자체로 우주의 한 축이자, 이 세상의 대표적 존재가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즉, 더 이상 다른 존재를 논할 필요가 없이 이 순간 세 층을 이루는 ‘우리들’ 셋은 완벽한 세상의 대표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면, 인간들이 얽혀서 싸우고 경쟁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세상만 세상이 아니라, 어느날 저녁 쓸쓸한 나조반 위에서 우연히 함께 만난 다른 생명체들과의 세상도 아름답고 독특한 시적 세계를 이룩할 수 있다는 다원주의적 세계관이 뒷받침된 미학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