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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선임연구원)
   우리말에 ‘말이란 탁 해 다르고 툭 해 다르다’라는 속담이 있다. 말이란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하는 데 따라서 아주 다르게 들린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나에게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가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괜히 나까지 송구스러운 생각이 든다. 반대로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 ‘미안합니다’라고 하면 오히려 화를 더 내기도 한다. ‘죄송하다’나 ‘미안하다’나 용서를 구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상황에 따라 적절한 말이 있는데도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일본의 총리가 과거 우리 민족에게 자행한 잘못을 반성한다면서 ‘통석의 념’이니 ‘유감’이니 하는 말로 얼버무리려다 오히려 여론의 반발만 샀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본 국민 모두가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사죄를 해도 시원찮은 터에, 고작 ‘통석의 념’ 같은 말장난으로 잘못을 덮어 버리려는 행태에 화를 내지 않을 우리나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거늘…….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 보면 광복 60년이 넘도록 친일 세력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일본어 찌꺼기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미국 의회에서 문제를 삼고 있는 이른바 ‘위안부’라는 말을 한번 들여다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위안부(慰安婦)’는 “주로 전쟁 때 군대에서 남자들을 성적(性的)으로 위안하기 위하여 동원된 여자”로, ‘종군(從軍) 위안부’는 “전쟁 시에 군인들을 성적(性的)으로 위로하기 위하여 종군하는 여자”라며 역사 전문 용어로 풀이해 놓았다. ‘종군’의 풀이를 살펴보면 “전투 목적 이외의 일로 군대를 따라 같이 다님”이라고 되어 있다. 즉, ‘종군 위안부’의 뜻풀이에는 그 여성들이 강제로 끌려간 것이라는 풀이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조금 불순한(?) 의도로 해석하면 자청해서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몸을 판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금성국어대사전>에서는 ‘위안부’를 “전시(戰時)에 군인들을 위안하기 위해 성(性)의 도구로 동원되는 여자.”로 풀이해 놓았다.
   결국 ‘(종군) 위안부’에 대한 두 사전의 풀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군인을 주로 상대하는 창녀’라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이 말을 일제 시대에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 끌려가서 갖은 고초를 겪었던 여성들에게 스스럼없이 써 왔다. 우리 사회가 명확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그분들이 당한 고통을 함께 나누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면 이런 말이 공공연히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일제가 남겨 놓은 것들에 우리는 너무 무심했던 것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종군 위안부’라고 하는 것을 외국의 유력 언론에서는 ‘Japanese Army sex slaves’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종군 위안부’와 ‘일본군 성 노예’는, 어느 관점에 서 있느냐에 따라 하나의 대상을 부르는 말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앞으로는 우리도 일제 시대에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성적 착취를 당한 분들을 가리킬 때에는 ‘(일제) 일본군 성폭력 피해 여성’ 또는 ‘(일제) 일본군 성 노예’와 같은 표현으로 바꾸어 써야 할 것이다. 국어사전도 ‘위안부’가 단순한 창녀가 아니라는 점을 좀 더 명확하게 기술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조선말대사전>이 ‘위안부’를 “낡은 사회에서 군대의 롱락물로 제공되는 녀자.”와 같이 풀이한 것은 참고할 만하다.
   이처럼 한 가지 일이나 사물을 놓고도 말하는 이의 가치관이나 관점에 따라 그것을 부르는 말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떤 말은 예전 가치관으로 보면 별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의 가치관으로 보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미망인(未亡人)’이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말을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으로,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를 이르는 말.”로 풀이해 놓았다. 《춘추좌씨전》의 <장공편(莊公篇)>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은 본래 남편과 사별한 여인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이르던 일인칭 대명사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소인(小人), 소자(小子)’와 같은 부류의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뜻이 바뀌어 다른 사람이 남편과 사별한 여자를 가리키는 삼인칭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과거에는 남편을 따라 죽음을 택하는 것이 지조 있는 행동으로 여겨졌는지 모를 일이나 지금에 와서도 이런 잣대로 남편과 사별한 부인의 지조를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본인이 스스로를 낮추어 ‘미망인’이라 하는 것도 아니고, 남이 ‘미망인’라고 하는 것은 모욕이나 다름없다.
   ‘가정주부(家庭主婦)’, ‘가정부(家政婦)’, ‘파출부(派出婦)’ 하면 떠오르는 것이 여성인가, 남성인가? 열이면 열이 여성을 떠올릴 것이다. 예부터 가사 노동은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일은 대개 여성이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말들에 모두 ‘부(婦)’ 자가 쓰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성에 따른 역할 구분이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이는 역사의 발전으로 이해해야 한다. 요즘에는 남편이 한 직장에 얽매이지 않은 직업을 가진 경우에는 가사 노동에 적극적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남편이 가사일을 전담하고 아내가 바깥일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사회 변화를 감안하면 이제는 ‘주부’의 한자를 ‘主婦’와 ‘主夫’로 나누어 쓰거나, 아니면 남녀를 통칭할 수 있는 새로운 어휘를 만들어 써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가정주부’는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으로, ‘가정부’는 “일정한 보수를 받고 집안일을 해 주는 여자”로, ‘파출부’는 “보수를 받고 출퇴근을 하며 집안일을 하여 주는 여자”로 풀이하여 가사 노동은 여성이 할 일이라는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런 말들의 뜻을 알아보려고 사전을 찾는 어린아이들에게 성에 따라 하는 일이 구분되어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남자가 가사 노동을 하는 것은 남자다운 것이 아니고, 여자가 가사 노동을 등한시하는 것도 여자다운 것이 아니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사전 편찬자가 현실 언어를 있는 그대로만 기술하는 데에만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참고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부정적인 성질을 지녔거나 사회적으로 천하게 여겨지는 직업을 가진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그에 상응하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 없는 것을 몇 가지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독부(毒婦), 매소부(賣笑婦), 매음부(賣淫婦), 매춘부(賣春婦), 요부(妖婦), 위안부(慰安婦), 음부(淫婦), 작부(酌婦), 접객부(接客婦), 접대부(接待婦), 추업부(醜業婦), 출부(黜婦), 탕부(蕩婦), 투부(妬婦), 흉부(凶婦)

   외래어나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우리말로 고쳐 쓰는 것만이 국어 순화가 아니다. 과거의 낡은 가치관을 반영한 말을 버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가치관을 담은 말로 고쳐 널리 보급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국어 순화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