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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촘스키의 제자이면서 인지 언어학자이자 사회 비평가인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에서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왜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 정당인 공화당에 투표하는지를 분석하였다(‘코끼리’는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그가 제시한 개념은 프레임이다. 프레임(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한다. 자기가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에게 투표한다. 자신의 이익이나 객관적인 처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이미 형성된 인지적인 무의식(프레임)에 따라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가를 무엇에 은유하는가? 사람으로 은유한다(그러나 우린 실제로 그 사람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인 국가는 건강해야 하는데,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이는 경제적인 부의 축적(GDP 성장)과 강력한 군사력을 기르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렇게 해야 그 사람(국가)은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이때 국가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모두 건강해질 필요는 없지만 기업은 그래야 하며, 국가 전체적으로도 많은 돈을 보유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국가를 가족으로 은유한다. 가족 은유는 ‘엄격한 아버지의 가족(strict father family)’ 모델과 ‘자상한 부모의 가족(nurturant parents family)’ 모델로 나뉜다. 엄격한 아버지는 험한 세상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자녀들을 그릇된 길에서 바르게 인도한다. 세상은 악하고 험하며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강력하고 엄격한 아버지가 필요하다. 이 프레임을 가진 사람들은 이 논리를 진심으로 믿는다. 개신교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개방형 이사제' 도입을 뼈대로 한 사립학교법을 극렬히 반대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비리를 지속시키겠다는 사악한 의도라기보다는, 이 법이 엄격한 아버지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악한 세상에 사는 외부인이 선한 자신의 행위에 개입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종교 탄압’이다. 이 법이 사학의 자율권이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아무리 ‘논리적으로’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다. 물질적 성공을 신의 은혜로 동일시하는 사람들에게 본인들이 누리고 있는 물질적 번영은 바로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며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종교인들도 그들(부자=선한 사람들)에게 잘 훈육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순종한다. 그래서 프레임은 무섭다.
   반면에 자상한 부모의 가족 모델에 따르면, 세상은 더 나은 곳으로 바뀔 수 있으며 또 바꾸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을 보살피고 자녀들이 다시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 보살핌은 ‘공감’과 ‘책임’을 함께 갖는다는 뜻이다. 자유, 정직함, 공정한 배려, 열린 소통, 공동체의 건설과 협력이 자상한 부모의 가치들이다.
   아! 그러나 지금 우리 눈앞에는 엄격한 아버지밖에 보이지 않는다. 엄격한 아버지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권위자이기 때문에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순종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절대로 완성되거나 완결될 수 없는 것임에도, 엄격한 아버지는 ‘민주주의는 웬만큼 되었으니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외친다. 거기에 딱 들어맞는 대상이 바로 FTA이다. 아버지는 온갖 고난을 헤치고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이끌 것이다. 우리는 개방해야 하고, 이익과 손실의 대차대조표를 맞춰보면서, 남는 장사가 될 것이라고 속삭인다. 이 프레임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한국과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마무리했다는 소식에 세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나라를 지켜보고 있다. 무역 규모 세계 11위인 한국과 연간 1조7000억 달러어치를 사들이는 최대 수입시장 미국이 ‘경제 국경’을 없애기로 했기 때문이다. ‘부자 친구’와 동업한 한국의 몸값도 뛰어올랐다. 중국과 유럽연합(EU)에선 현재 추진 중인 한국과의 FTA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린이 동아>, ‘지구촌 너도나도 FTA’ 2007년 4월 4일자-


   코끼리들의 프레임을 이렇게 알기 쉽게 간추린 말도 찾기 힘들다. 그들은 ‘어린이’에게까지 ‘그냥 친구’가 아닌 ‘부자 친구’와 동업해야 되며, 그래야 우리 ‘몸값’이 올라간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노심초사 미국과의 FTA 협상에 공을 들였으며 결국 성공했다. 이제 자식들은 부자 친구와 동업자가 되었고 우리 몸값도 뛰어올랐다. 우리의 강한 아버지는 우리를 승리로 이끌 것이다. 믿습니다. 끝!
   레이코프는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단다. 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한다.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려면 새로운 언어가 있어야 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먼저 다르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편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려면 상대편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프레임의 기본 원칙이다. 주택법 개정안(종부세)을 보수 언론에서 ‘세금폭탄’이라고 말할 때, “이 법은 ‘세금폭탄’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모두가 이 법 때문에 자기 머리 위에 세금폭탄이 진짜 터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 상대편의 언어는 그들의 프레임을 끌고 오지, 결코 내가 원하는 프레임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새로운 프레임이 없다. 프레임에 저항은커녕, 이 프레임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으며, 우리는 거기에 예속되어 간다. 우리는 코끼리가 그려 주는 아름다운 신세계 말고는 또 다른 인간 사회를 ‘기획’할 능력을 상실했다.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사회적 변화라고 하는데, 우리에겐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할 동력이 없다. 돈놀이가 재테크가 된 사회에서 노동의 가치니, 공존이니 하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수사인가. 서열화된 학벌사회에서 비판적 지성이니, 능력 중심이니 하는 말이 얼마나 듣기 지겨운 설교인가. 어차피 자본주의적 삶, 아니 욕망 그 자체인 자본은 ‘올인의 유혹’, ‘로또의 꿈’이 아니었던가.
   자본의 공격은 무차별적이고 가혹하다. 프레임은 강력하고 전면적인데도, 개인들은 저항하는 법을 잊어먹었다. 한 반 아이들을 16만 원짜리(경주), 23만 원짜리(제주), 50만 원짜리(중국), 77만 원짜리(일본)로 나누어 수학여행을 보내는 것을 ‘합리적 방법’이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 수 있을까. 우리에겐 이제 코끼리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