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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연세대 교수)
[3]


   한 편의셔 탁견 씨름 쥬졍 홈 이럿트시 분난 졔 옥장이  말이 여보시오 이리 구시다가  염문의 들니면 우리 등이 다 쥭소 한 왈 다며  말이 여보와라  말고 오가 염문 말고 소곰문을 면 누구 날노 발기냐 <남원고사(19세기)4,7a>

   또 불특정 다수에게도 ‘여보’ 계열이 사용되었는데, 그때에는 주로 ‘여보아라(여보와라)’ 등으로 쓰이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서, ‘이리 오너라’와 동일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통인이 드러가 그로 엿자오니 사 도련임 승벽 잇스믈 크계 짓거야 이리 오너라 방으 가 목낭쳥을 가만이 오시라 <춘향철종(19세기)上,17b>
   기침을 한 번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이리 오너라." 하였다. 그때야 문여는 서리가 나더니 혜숙의 어머니가 나오며 "누구를 찾으세요?" 한다. <환희(1922년),067>

   그래서 ‘여보’는 복수를 뜻하는 ‘여러분’ 앞에서도 쓰이었다. ‘여보 여러분’은 현대국어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쓰임이지만 20세기 초에는 흔히 나타났던 예문들이다. 현대국어에서는 ‘여보시오 여러분들’은 쓸 수 있다.

   여보 여러분 나 녯날 평시에 슉부인지 밧쳣더니 지금은 가련 민죡 즁의  몸이 된 신셜헌이올시다. <자유종(1910년),1>
   여보 여러분  말 좀 들으시오 가 누구인지 알고 려가오 나 황간수 일리  권진오 <고목화(1907년)상,4>

   이러한 여러 가지 특징으로 보아서 ‘여보’를 비롯한 ‘여보’계의 어휘들은 원래 가지고 있는 의미인 ‘여기 보오’란 뜻을 내면에 감추고 있으면서 ‘말하는 사람에게 시선이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르는 기능은 그 뒤의 호칭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보 도련님(마누라 등등)’은 그냥 ‘도련님’(마누라 등등)하고 불러도 상관이 없지만, 대신 ‘여보 마누라(도련님 등등)’ 하고 부르면 현장성이 있으며, 말하는 사람에게 관심과 시선을 집중시켜서 두 사람 사이의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여보’가 다양한 높임이나 낮춤에 두루 쓰이다가 ‘여보’에 높임법에 따른 다양한 형태들이 등장하면서 ‘여보’는 예사높임에만 쓰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예사높임의 대상인 부부간의 호칭에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럼 ‘여보’가 부부간에 쓰일 때에는 어떻게 변화하여 왔을까? 남편이 아내에게 또는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를 사용할 때에는 대부분이 ‘여보’의 뒤에 ‘마누라(마노라)’나 ‘셔방님’ 또는 ‘영감님’을 붙여서 사용하였다.

   홍참의가 고두쇠의 눈에 뵈히지 아니려고 문을 왈칵역로 쑥드러셔며 여보 마누라 어셔드러오 부인이 급히 드러 가다가 너머진다 <치악산(1908년)상,96>
   (리판셔) 여보 마누라 우지말고 검홍의게 이약이 좀 자세 드러봅시다 <치악산(1908년)상,169>
   마누라 여보오 하인 불너 압 집에 가셔 술이나 좀 밧아오라 오 <설중매(1908년),60>
   여보 셔방님  말 듯소 가 모도 화이오  거시 열증이라 <남원고사(19세기)4,38b>
   여보 셔방님  말 듯소 일이 본관 일 잔니 <남원고사(19세기)5,10b>
   (마누라) 여보 영감 뎌놈  양을 보닛가 우리 보 각이 더 나구려 <고목화(1907년)상,39>

   그런데 부부간의 예사높임을 약간 낮추면 ‘여보’ 대신에 ‘여보게’를 사용하였는데, ‘여보게 마누라’의 모습으로는 보이지만 ‘여보게 셔방님’이나 ‘여보게 영감님’ 등은 보이지 않는다. 그 당시의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동지) 여보게 마누라 아러셔 술잔 데여쥬게 만 거든 가 셔울가셔 길슨이 보
   고 오네 <귀의성(1907년),26>
   여보게 마누라 울지 말게. 그짓 소견업 년 뒤어진 무엇이 셜워 운단 말인가. <화의혈(1911년),70>

   그러나 ‘여보’나 ‘여보게’를 빼어 버리고 단지 ‘마누라, 셔방님, 영감님, 영감’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마) 영감 이말 뎌말 그만두고 인져 봄이 되얏스니 갑동이나 졔집에 갓다오게 주션 좀 시구려 (박) 마누라 그 말이 올소 <고목화(1907년)상,43>

   그러나 이러한 호칭도 빼어 버리고 단지 ‘여보’ 단독으로도 부부간의 호칭으로 사용하였다. 19세기 말에도 간혹 그러한 예가 발견되지만 주로 20세기 초에 와서 일반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여보 그것이 나려올 지 김 주사집에 잇든 것을 데려다 둡시다 그려 <계집하인(1925년),10>
   (최) 응 죄를  혼자 지어다구 두 외 갓치 지엿지 (부인) 여보 남의  말 마르시오 <은세계(1906년),25>

   이처럼 19세기에는 ‘여보 마누라, 여보 서방님, 여보 영감님’ 등으로 많이 사용하였지만, 20세기 초에 와서는 ‘여보’를 빼어 버리고 단지 ‘마누라, 서방님, 영감님’으로 부르거나, 또는 ‘여보’ 단독으로 사용하는 용법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여보’와 같은 용법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러면 19세기 이전에는 ‘여보’와 같은 기능을 가진 어휘는 없었을까? 16세기 문헌에 ‘이바’가 보여서, 이것이 오늘날의 ‘여보’의 기원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바 네 닷 돈 덜어라 말오 네 고디시근 갑슬 니르면 <번역노걸대(1517년),하22b>
   이바 내 너려 쵸마 <번역박통사(1517년),상10a>
   이바 밥 앗기디 말오  세 번식 저희를 밥 주어 <번역박통사(1517년),상10a>
   개여 이바 우리 이 官人이  붓 갈흘 오져 니 <번역박통사(1517년),상17a>
   이바 내 너려 닐오마 쇽졀업시 간대로 갑슬 와 므슴 다 <번역박통사(1517년),상32b>
   이바 엇디 이리 누르고 여위뇨 <번역박통사(1517년),상37b>
   더러운 노마 이바 뎌 눈브 활와치 오를 블러 오라 <번역박통사(1517년),상59a>

   ‘이바’는 앞에 호칭이 나타나고 (개여, 더러운 노마) 뒤에 ‘이바’가 쓰이거나 ‘이바’ 단독으로 쓰이거나 한다. 대부분이 백화문을 번역한 문헌에만 출현하는데 항상 아랫사람에게만 쓰는 말이다. 백화문 ‘니래(你來)’의 번역문인데 ‘니래(你來)’는 ‘너 이리 와라’의 의미여서, 높임에는 사용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이바’가 등장하던 시기에 ‘이봐, 여봐’와 같은 어휘는 보이지 않는다. ‘이바’가 ‘이 보아’의 축약형이라고 한다면 ‘-를 보아’도 ‘-를 바’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로 그러한 형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 보오’의 축약형이라면 ‘이보’로 나타나야 할 텐데, “놉푸나 놉푼 남게 날 勸야 올녀두고 이보오 벗님네야 흔드지나 말념우나<李陽元의 시조>”에서처럼 ‘이보오’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바’가 ‘여보’의 기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바’가 ‘이것 보아’의 뜻을 가지고 있는 듯이 해석될 수 있지만, ‘여보’의 어원으로 단정하는 것은 큰 무리다. 그리고 ‘여보’의 기원을 ‘이바’로 본다면, ‘여보’가 다양한 높임에 사용되는 용법으로 변화한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이바’는 백화문의 번역서인 ‘박통사언해(1677년), 노걸대언해(1670년), 박통사신석언해(1765년)’ 등에 쓰이다가 20세기에 와서 ‘보아’의 축약형인 ‘봐’에 유추되어 ‘이봐’로 변화하였고, 현대까지 구어에서 쓰이고 있다. ‘이봐’가 ‘이것 보아’로 해석되면서 ‘여봐’도 등장하여 일반화되었다. 그래서 ‘여봐’는 ‘이바’로부터의 발달형과 ‘여보’로부터의 발달형의 두 가지가 있게 된 셈이다. 그러나 ‘이바’로부터 발달한 형태에는 ‘이바요’(또는 ‘이봐요’), 여봐라, 여봐요’의 형태가 생겨났고, 구어에서는 ‘이보세요’도 생겨났다.

   이봐 정순이 언니 식히는 대로 가만 잇서요 <찔레꽃(1937년),216>
   이봐 진호, 엄마가 말이야, <천맥(1938년),224>
   여봐-. 술 더웠거든 어서 들여 오구 무어 간즈메 좀 안주 될 걸루……<속천변풍경(1937년),205>
   아이구 여봐 <화상보(1951년),055>
   이봐요 정순이 난 암만 해도 옵바가 화가 나신 것 가태요 …… 정순이가 너무 옵바를 괴롭혓지 머 가엽게」<찔레꽃(1937년),268>
   이바요 저리 가서 맘에 드는 옷감 골라요 어여 <찔레꽃(1937년),216>

   ‘여보’는 ‘여기 보오’의 준말이다. ‘여보’는 말하는 사람이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에게 두루 쓰이었던 것인데, 높임법에 따라 ‘보다’에 다양한 높임법이 사용되어 ‘여보십시오, 여보시오, 여보게, 여보아라’ 등이 발달되면서, ‘여보’는 예사높임에 주로 쓰이고, 예사높임을 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갖춘 부부간에 자주 쓰이면서 부부의 호칭으로 발달하였다. 처음에는 말하는 사람에게 관심이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로 등장하여서 ‘여보 마누라, 여보 서방님’ 등으로 쓰이었지만, 차츰 ‘여보’가 단독으로 쓰이거나 ‘여보’를 빼고 ‘마누라, 서방님’ 등으로 불리어 오늘날까지 쓰이게 된 것이다. 전화가 등장하면서 직접 대면하는 상태가 아닌 환경에서는 ‘여보’가 거의 쓰이지 않고, ‘여보세요’가 일반화된 것은 최근에 일어난 변화다.
   한 호칭이 시대를 따라 변화하면서, 이렇게 다양한 변화를 겪는다는 사실을 보면서, 한 어휘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변화에 대해 신비스러운 느낌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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