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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목월 시 '나무'의 멈춤의 의미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원
儒城(유성)에서 鳥致院(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修道僧(수도승)일까. 黙重(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 날은 鳥致院(조치원)에서 公州(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於口(어구)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過客(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公州(공주)에서 溫陽(온양)으로 迂廻(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門(문)을 지키는 把守兵(파수병)일까, 외로와 보였다./ 溫陽(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黙重(묵중)한 그들의. 沈鬱(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 다.
(‘나무’, 『청담』, 1964)
  박목월(1916〜1978)의 시 ‘나무’에서는 시인이 여행길에서 만난 나무들에 대한 단상이 수필처럼 그려지고 있다. 수필 같다고 보는 이유는 우리가 잘 아는 충청남도의 도시들을 시인이 돌아다니며 보았던 경험을 적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일정은 유성(대전시 유성구)에서 조치원(충남 연기군)으로, 조치원에서 공주(충남 공주시)로, 공주에서 온양(충남 아산시 온양)으로 그리고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온다. 곳곳에서 만난 대상은 나무였고 그 나무들은 수도승과 과객(지나가는 나그네)과 하늘문을 지키는 파수병으로 비유되고 있다. 여기까지 보면 평범한 경험을 간결한 수필체로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뒤에 가서 보니 시인의 몸(마음) 안에 여행길에 만났던 나무들이 뿌리를 펴고 있었다 한다. 그 후로 시인은 몸 안에서 나무들을 기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시적 상상력의 세계로 들어섬을 알 수 있다.
  시에서 말하는 이는 반복해서 자신의 몸속에(시인 박목월이 남자임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여자가 몸속에서 아기를 기르듯, 들판의 늙은 나무와 가난한 마을 어귀의 나무들과 산마루(산등성 마루-산 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의 나무들을 기른다고 말한다. 이 비유관계를 세 개의 동질적인 문장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1. 여자가 ----아기를 ----- 기른다
2. 내가 ----수도승을 ----- 기른다
----나그네를 ----- 기른다
----하늘문을 지키는 파수병을 ----- 기른다
3. 내가 ----묵중함을 ----- 기른다
----멍청하고 어설픈 것을 ----- 기른다
----외로움을 ----- 기른다
  1의 문장은 일상적인 문장이다. 2의 단락에서 말하는 이가 눈여겨 보는 대상들은 세속적인 삶의 기쁨을 추구하는 대상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세계를 바라보는 것일까? 3의 단락을 대조해 보면 알 수 있다. 나무의 묵중함은 세속적인 사람의 ‘가벼움’과 대조되고 나무의 멍청하고 어설픈 것은 세속적인 사람이 바라는 ‘똑똑하고 야무진 것’과 대조되며 나무의 외로움은 사람들이 그 외로움을 못견디어 ‘함께 있고 싶어하는 것’과 대조되는 비 현세적이고 종교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묵중함 / (가벼움)
멍청하고 어설픈 것 / (똑똑하고 야무진 것)
외로움 / (함께 있음)
비현세적, 종교적 / 세속적
  여기서 시인은 왜 나무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것은 나무들이 ‘서 있다’는 사실을 부목할 수 있다.. 말하는 이는 바삐 길을 가는데 묵중한 나무는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고, 그는 바삐 길을 가는데 나무는 마을 어귀에 떼를 지어 멍청하게 몰려 서 있고, 그는 바삐 길을 가는데 나무는 산마루 저 멀리에 서 있었다. 즉 말하는 이는 계속 움직이며 살기 급급해 하며 종종걸음을 치는데 나무는 다소 멍청하고 어설픈 것 같지만 정지한 채 뭔가 생각하고 멈춰 서 있다. 이 시에서 나무가 서 있는 공간도 주목할 만하다. 들판에서, 마을 어귀로,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으로 시인은 나무가 서 있는 자리에 눈길을 돌린다. 시인의 눈길은 사람들이 사는 자리에서 점점 사람들과 멀어지는 자리로, 세속적인 자리에서 비세속적이고 종교적인 자리로 넘어간다.
  시 안에서 말하는 이는 남성이지만 그가 나무를 자신 안에 기르면서부터 남성성과 여성성이 함께 뿌리내리게 된다. 이 시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가진 시인의 정신적 에너지는 나무를 통해 새롭게 거듭남을 알 수 있다. 그 거듭남은 인간이 태어난 곳인 동시에 조상의 넋이 사는 곳을 나무를 통해 깨닫고 바라볼 줄 아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일상생활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이 시의 나무는 멈춤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사람은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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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