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에 ‘화냥년’은 ‘화냥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로,
그리고 ‘화냥’은 ‘서방질을 하는 여자’로 풀이되어 있다. ‘화냥질, 화냥기, 화냥데기’ 등의 단어들로 보아서
‘화냥년’은 ‘화냥’과 여자를 낮잡아 이를 때 쓰는 말인 ‘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화냥’은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화냥’에 대해서는 여러 어원설이 제기되어 왔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화냥년’을 ‘환향녀(還鄕女)’에서 왔다는 설이다. 즉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붙잡혀 갔던 여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그 여인들이 몸을 버린 여자들이어서 그들을 지칭하던 ‘환향녀’가
오늘날의 뜻을 가진 ‘화냥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발음도 비슷하고 민족적 설움도 끼어 있어서 일반인들에게 그럴 듯하게 들렸던지,
오늘날은 이 설을 믿는 사람도 꽤나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설은 어디까지나 민간어원설일 뿐이다. 또 한 가지는 만주어 ‘hanyang’
(음탕한 여자)에서 왔다는 설이다. 이 단어가 병자호란 때 중국 심양에 끌려갔던 여자들이 돌아오면서 같이 들어와 우리나라에 퍼졌다는
것인데, 증거가 없어서 믿기 어렵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화냥’이 만주어 ‘hayang'으로부터 온 ’화랑(花娘)‘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그 근거가 불분명하다. ‘놈을 기르다’의 뜻인 ‘한양(漢養)’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옛 문헌에
‘화냥’을 ‘양한(養漢)’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 ‘양한(養漢)’의 뜻을 몰라 ‘한양(漢養)’으로 잘못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설은 남자 무당을 ‘화랑이’라고 했는데, 떠돌이 남자 무당은 이 여자 무당 저 여자 무당을 찾아 다녔기 때문에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을 ‘화랑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여자의 경우에 적용되면서 ‘화냥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훈몽자회에 ‘격(覡)’을
‘화랑이 격’이라고 하고 또 ‘화냥’을 ‘화랑’(花郞)이라고도 한 문헌이 있어서, 여기에 암시를 받아 해석한 것이지만, 이제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 ‘화냥’이란 단어는 아무래도 그 의미로 보아 ‘화냥’의 ‘화’가 ‘꽃 화(花)’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왜냐하면 여성에게 사용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냥’도 한자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냥’에 해당하는 한자가 없으니
‘화냥’과 연관된 단어를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화냥년’의 ‘화냥’과 같은 여자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어떤 단어를 썼을까?
먼저 발견되는 단어는 ‘화랑(花娘)’이다. 이 ‘화랑(花娘)’은 일찍부터 우리나라에서 쓰인 단어이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20년(1489년)
3월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 이제 유녀(遊女)라 칭하고 혹은 화랑(花娘)이라 칭하며 음란한 짓을 제멋대로 하니,
이를 금제(禁制)하는 조목을 뒤에 자세히 기록합니다. ○ 화랑과 유녀가 음란한 짓을 하여 이득을 꾀하고, 승려와 속인(俗人)이
서로 즐겨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니, ○ 모든 업자[色人]가 화랑과 유녀를 숨기고 사람과 통간(通奸)하게 하고 인하여 이익을 얻는 자는,
범인(犯人)과 같은 죄를 주고 재리(財利)는 관(官)에 몰수하소서.
결국 ‘화랑(花娘)’은 이 기록에 보이는 대로 ‘음란한 짓을 제멋대로 하는 유녀(遊女)’를 말한다. 그렇다면 ‘화랑’(花娘)은
원래 무슨 뜻일까? 중국 원말 명초의 학자인 도종의(陶宗儀, 호는 남촌(南村))가 지은 ‘철경록’(綴耕錄) 권14에 ‘창부를 화랑이라고 한다’
(娼婦曰花娘)는 기록이 있어서 ‘창녀’를 ‘화랑’이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화랑’의 중국어 발음이
‘화냥(huániãng)’이어서 이를 차용한 것이 바로 ‘화냥’인 것으로 보인다.
‘화냥’이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은 ‘박통사언해’(1677년)다. ‘이 도적 화냥년의 난 나괴
야 (這賊養漢生的小驢精)’에서 ‘화냥년’이 등장하는데, 이것과 같은 계통의 박통사신석언해(1677년)에는 ‘네 이 도적
養漢여 나흔 져근 나귀아’로 나타난다. 여기의
‘양한’(養漢)은 ‘남자와 통간하는 여자’를 말한다. 그리고 이 ‘양한’이 바로 ‘화랑’(花娘)과 동일한 뜻이다. 역어유해(1690년)에
‘養漢的’을 ‘花娘’으로 풀이하고 있어서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재삼이 편찬한 ‘송남잡지’에 ‘지봉유설’(1614년)에
‘양한’에 대해 기록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즉 이수광이 말하기를 ‘창녀’를 ‘양한적’(養漢的)이라고 했다
(芝峯曰 今中朝號娼女爲養漢的)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기록으로 보아 ‘화냥’과 ‘화랑’(花娘)과 ‘양한(養漢)’은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화랑’(花娘)의 중국어 발음이 ‘화냥’과 같은 것에 주목하게 된다. 따라서 ‘화냥’은 그 어원이 ‘화랑’(花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화랑’(花娘)이 ‘화랑’(花郞)과 발음이 같고 또 실제로 ‘花娘’을 ‘花郞’으로도 표기한 예들이 있어서 ‘화냥년’을
무당이나 신라 화랑과 연관시켜 풀이한 것도 나오게 된 것이다.
‘화냥년’의 ‘화냥’은 여러 형태로 쓰이었다. ‘화냥, 화냥이, 화랑, 환양년, 화랑년, 화낭, 하냥년, 한양년’ 등이 등장하는데,
이중에서 ‘화낭’과 ‘화랑’은 한자 ‘花娘’을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듯하다.
화냥이(慣嫁人) <몽어유해보(1768년)> 화냥이(養漢的) <1778방언유석(1778년)
> 화냥이(慣嫁人)<한청문감(1779?)> 화낭(養漢的) <화어유초(1883년> 년긔가 젹고 기미
아름다오믈 인여 져 분슈 모로 사들은 모다
그릇 화랑의 류로 알더라 <홍루몽(19세기)> 환양년(歡兩女) <한불자전(1880년)> 화랑년(花嫏女) <국한회어(1895년)> 뎌 화낭이
뎌의 부친이 뢰횡에게 마져 즁샹엿슴을 보고 (那花娘見父母被雷橫打了, 又帶重傷)<수호지(20세기)> 온
동리에서 판박어 노흔 화냥년이니 한 번 화냥이나 두 번 화냥이나 <뽕(1925년)>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쁘냐, 이 하냥년 같으니
<어머니(20세기)> 내가 딴 서방을 했꺼나 한양년의 짓을 했거나 <어머니(20세기)> (놈) 쌩 화냥년의
죵 지금 야동ㅅ집은 두 발을 동동 굴으며 를 쓰는 <목단화(1908년)>
예나 이제나 직업적으로 몸을 파는 여인이 있었음을 앞의 성종실록의 기록(모든 업자[色人]가 화랑과 유녀를 숨기고 사람과
통간(通奸)하게 하고 인하여 이익을 얻는 자는)에서 알 수 있는데, 오늘날의 ‘화냥년’은 행실이 좋지 않은 여인을 말하기는 해도,
직업적으로 몸을 파는 여인을 지칭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남녀관계가 방정치 못한 여인을 일컫는 말로 ‘논다니’란 단어도 쓰이었는데,
이 단어는 남자 ‘건달패’에 대응되는 여인을 일컫는 어휘인 것 같다. 19세기 말부터 ‘갈보’란 말도 쓰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한자어는 ‘창녀’(娼女)와 ‘유녀’(遊女)일 것이며, 그 이후에 직업적으로 국내 남자를 대하는 여인은 ‘창녀’로, 그리고 외국인을
상대하는 직업여성을 ‘양공주’(洋公主)로 부른 적도 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모두 ‘윤락녀’(淪落女)로 통일되어 부르게 되었다.
건달패와 논다니들이 어우러져서 약물이 아닌 누룩국물을 마시고 그 심부름을 하는 모양이다.
<상록수(1935년)> 혜쥬 창녀 별악을 쳐 쥭으니
<태상감응편도설언해(1852년) 갈보(娼女)<국한회어(1895년)>
어떤 특별한 뜻을 나타내는 단어가 이렇게 다양하게 분화되어 변천하는 것을 보면서 언어는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