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민 (국립 국어 연구원장)
1. 국어 생활에 좀더 깊은 관심을
  옛 스승들은 배우는 일과 실천하는 생활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이러한 사실은 배우는 일이 곧 실천하는 일, 알고 나면 반드시 일상 생활의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가르침이 곧 ‘호학 독행(好學篤行)’이라는 말일 것이다. 사실 이 세상의 질서와 가치를 크게 배우고 깨달은 사람이라면 그 깨달음을 실천에 옮겨 주변을 밝게 이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가치 있는 깨달음이라도 이기적인 지식에 그칠 뿐 이타적인 지혜가 될 수 없다.

  경제 생활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일상 생활에 상당한 안정이 깃들이면서 우리의 내면 생활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잇따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반가운 측면이 문화에 대한 의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생활자세가 날로 건전하게 자리를 잡아 간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돈과 여가를 건전하게 쓰지 못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는 물론 고도의 기능을 익히려는 사람들이 꾸준하게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여건에 따라 ‘사회 교육’, ‘평생 교육’이란 말이 생겨났고, 각 대학에는 사회 교육원이, 그 밖의 공사 기관에도 갖가지 크고 작은 문화 강좌, 교양 강좌가 마련되면서 수강자가 줄을 잇는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다. 이제야말로 배움이 학교에서만 끝나 버리는 시대가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 실제로 배우고 있는 사람이 자꾸만 늘어난다는 사실은 반갑고 흐뭇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밝아지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다만 배우기만 즐겨할 뿐 아는 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배움은 헛된 지식으로 끝나 버린다. 우리 사회가 아직은 거칠고 불친절하고 무질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다 합리성이나 합법성이 통하지 않는 현실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부드럽고 친절하고 상냥한 마음씨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질서나 합리성을 올바르게 실천할 줄 모르는 습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국어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친절’이나 ‘질서’나 ‘합리성’이라는 말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러한 단어들이 실제 생활에서 살아 움직이거나 제 힘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그 좋은 뜻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는 뜻이다. ‘호학’과 ‘독행’이 따로 놀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알고 있는 것조차 실천할 줄 모른다면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국어에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 힘을 제대로 살려 문화 발전에 써먹을 수 없는 국어 단어가 있다면 이 얼마나 아깝고도 아쉬운 일인가?

  세계화를 부르짖고 삶의 질을 높이자고 문화 복지를 꿈꾸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세련된 국어 생활을 통하여 스스로의 마음과 의식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가다듬는 일이다. 그러자면 각자는 스스로의 국어 생활에 더욱 더 깊은 관심을 쏟아야 하며 국어를 한층 더 갈고 닦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좋은 뜻을 지닌 단어의 힘을 실천으로 연결하여 생활과 의식을 조금씩이라도 문화적으로 우아하고 품위 있게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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