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같은 뜻을 나타내는 관용 표현
김 한 샘 / 국립국어연구원
일반 단어들 사이에 동의 관계가 성립하듯이 두 개 이상의 관용 표현이 같은 뜻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런데 관용 표현은 두 개 이상의 구성 요소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성 요소를 비슷한 말로 바꾸어 전체 관용 표현이 같은 뜻을 나타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 (1) ㄱ. 길재는 조선 초기에 성리학의 씨를 뿌린 학자이다.
- ㄴ. 길재는 조선 초기에 성리학의 씨앗을 뿌린 학자이다.
- (2) ㄱ. 김 형사가 집요한 수사 끝에 박 사장의 탈을 벗겼다.
- ㄴ. 김 형사가 집요한 수사 끝에 박 사장의 가면을 벗겼다.
- (3) ㄱ. 창고 속에서 썩고 있던 물건이 이제야 임자를 만났구나.
- ㄴ. 창고 속에서 썩고 있던 물건이 이제서야 주인을 만났구나.
- (4) ㄱ. 동생은 형한테 장난감을 빼앗기고는 입을 내밀었다.
- ㄴ. 동생은 형한테 장난감을 빼앗기고는 주둥이를 내밀었다.
위의 (1~4)은 같은 뜻을 나타내는 관용 표현 쌍의 예이다. 이들은 모두 구성 명사가 관련 있는 단어이다. (1)의 씨와 씨앗처럼 두 명사가 거의 모든 경우에 바꾸어 쓸 수 있는 비슷한 말인 경우도 있고 (2), (3)의 '탈-가면', '임자-주인'처럼 고유어와 한자어 쌍인 경우도 있다. (4)의 '입을 내밀다'와 '주둥이를 내밀다'가 둘 다 토라진 모양을 나타내지만 '주둥이'는 '입'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므로 '주둥이를
내밀다'는 낮잡아 이르는 뜻이 있다.
- (5) ㄱ. 선생님은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하는 제자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 ㄴ. 선생님은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하는 제자들의 어깨를 두들겨 주셨다.
- (6) ㄱ. 경찰이 출동한 것은 강도가 아미 꼬리를 감춘 뒤였다.
- ㄴ. 경찰이 출동한 것은 강도가 이미 꼬리를 숨긴 뒤였다.
- (7) ㄱ. 김 선생님은 신세를 지고 그렇게 입을 닦을 분이 아닙니다.
- ㄴ. 김 선생님은 신세를 지고 그렇게 입을 씻을 분이 아닙니다.
- ㄷ. 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 *ㄹ. 걸레로 바닥을 씻었다.
(1~4)와 달리 (5~7)은 구성 동사가 관련 있는 단어들이다. (5)의 '두드리다'와 '두들기다', (6)의 '감추다'와 '숨기다', (7)의 '닦다'와 '씻다' 등은 모두 비슷한 뜻을 나타내는 단어들이며 이들로 구성된 (5~7)의 관용 표현들도 모두 같은 뜻을 나타낸다. (7ㄷ~ㄹ)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닦다'와 '씻다'를 항상 바꾸어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입'과 함께 쓰여 '이익 따위를 혼자 차지하거나 가로채고서는 시치미를 떼다'의 의미를 나타낼 때는 바꾸어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