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관용 표현의 우회적 용법
김 한 샘 / 국립국어연구원
관용 표현은 두 개 이상의 단어가 어울려 쓰이며 대부분 같은 형태의 직설적인 표현이 존재하기 때문에 문맥을 파악해야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힘들거나 속된 말을 할 때 관용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인 내용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어떤 이의 죽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누가 죽다’, ‘어느 분이 돌아가시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할 수도 있지만 관용 표현을 쓰면 완곡하게 표현할 수 있다.
- (1) ㄱ. 김 박사는 아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 ㄴ. 모두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으세요.
- (2) ㄱ. 그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잠이 들었다.
- ㄴ. 피곤해서 눕자마자 금방 잠이 들었어요.
- (3) ㄱ. 내가 숟가락을 놓기 전엔 너희들 결혼 허락 못한다.
- ㄴ. 할머니는 밥맛이 없으신지 금방 숟가락을 놓으셨다.
- (4) ㄱ. 요단강 건넌 후엔 다 소용없는 것이니 너무 욕심 부리지 말게.
- ㄴ. 적군이 요단강을 건너 진격해 왔다.
- (5) ㄱ. 요새 몸 상태로 봐서는 천당에 갈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아.
- ㄴ. 난 지은 죄가 하도 많아서 죽어서 천당
가기는 힘들 거야.
- (6) 아버님은 5년 전에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유명(幽明): 저승과 이승을 아울러 이르는 말)
(1~5ㄱ)과 (6)의 ‘눈을 감다, 잠이 들다, 숟가락을 놓다, 요단강을 건너다, 천당에 가다, 유명을 달리하다’는 모두 ‘죽다’의 의미를 나타내는 관용 표현이고, (1~5ㄴ)은 같은 표현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쓰인 예이다.‘눈을 감다, 잠이 들다, 숟가락을 놓다’는 모두 ‘죽음’이 동반하는 신체적 변화에 빗대어 ‘죽다’의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잠이 든 것처럼 눈을 감게 되고 더 이상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을 수 없게 된다. 한편 ‘요단강을 건너다, 천당에 가다, 유명을 달리하다’는 산 사람은 알 수 없는 사후 세계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그것이 ‘요단강 건너편’이든 ‘천당’이든 ‘저승’이든 사람이 죽으면 우리와 같은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죽음’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말하기 꺼려하는 것 중 하나가 남녀 관계이다.
- (7) ㄱ. 영희는 새로 온 과장에게 꼬리를 쳤다.
- ㄴ. 집에 들어서자 강아지가 반갑다고 꼬리를 쳤다.
- (8) ㄱ. 김 선생과 박 선생이 눈을 맞추는 것 같더니 다음 달에 결혼한대요.
- ㄴ. 엄마가 아기와 눈을 많이 맞추는 것이 좋대요.
- (9) ㄱ. 같은 팀에서 일하면서 전기가 통했는지 요새 다정해 보이네요.
- ㄴ. 전기가 밖으로 통하지 않도록 테이프로 잘 감아 놓아라.
(7ㄱ)의 ‘꼬리를 치다’는 주로 여자가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감정을 나타낼 때 쓴다. (8~9ㄱ)의 ‘눈을 맞추다’와 ‘전기가 통하다’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해서 사귀는 것을 뜻한다. ‘눈이 맞다’도 (8~9ㄱ)와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