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국어사전에 '여편네'는 '결혼한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그런데 '여편네'를 남편의 '옆'에 있어서 '여편네'가 된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즉 '옆편네'가 '여편네'가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여편네'를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로 인식할 정도로 '여편네'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단어가 되어 있다. '여편네'의 '여편'은 한자어이다. 남편(男便)에 대해 여편(女便)이 있었던 것이다. 『가례언해』(1632년)에 '녀편은 남편의 長幼로 례고'란 문장이 나오는데, 여기에 '남편'에 대립되는 '녀편'이 보이고 있어서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여편네'에서 '네'를 뺀 '여편'이 쓰이지 않아, 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지만, 옛 문헌에는 '여편'의 옛날 표기인 '녀편'이 단독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문장에서 보듯이 '녀편'은 단지 '남편'에 대립되어 사용하는 단어였지, 오늘날처럼 낮추어 보는 의미는 없었다. 그런데 옛날부터 '여편'과 '남편'에 대한 어원 의식 속에 '여'와 '남'의 대립은 있었지만, '편'이 '便'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잘 인식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일찍부터 '녀편'과 '남편'의 '녀'와 '남'은 '女'와 '男'으로 표기하였으되, '편'은 '便'으로 표기하지 않는 현상까지도 등장한다. 다음 예문에서 '녀편'의 '녀'는 한자와 한자음을 다 달았지만, '편'에는 한자를 쓰지 않고 있는 것이 그러한 의식을 말해 준다.
'女녀便편아/女녀便편니'로 표기하지 않고 '女녀편아/女녀편니'로 표기한 것은 '편'의 한자를 의식하지 못한 결과로 해석된다. 이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을 한자 '男便'으로 표기한 예가 그리 흔하지 않았고 또 그러한 표기는 19세기에나 가서야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대의 많은 사전, 예컨대 조선총독부의 『조선어사전』, 문세영의 『조선어사전』, 조선어학회의 『우리말큰사전』에는 '녀편네'나 '여편네'에 한자를 표기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남편'에 대해서는 모두 '男便'이란 한자를 달아 놓아 그 어원이 한자어임을 알리고 있다. '남편'은 한자로도 표기되지만 '녀편네'의 '녀편'이 한자로 표기된 예가 없어서 그러한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편 대 여편의 대립은 분명하고 그 뜻도 '남자 편, 여자 편'을 뜻하기 때문에 '녀편'의 어원이 한자 '女便'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여편네'의 '여편'에 한자 '女便'을 달아 놓은 것이 한자어가 아닌데 한자를 달아 놓았다는 비판을 받을까 걱정이다.
이처럼 '녀편'이나 '남편'은 '네'나 ''를 붙이지 않고 사용되다가 '녀편네/녀편내/녀편'나 '남편네/남편내/남편'처럼 복수의 접미사 '네'나 ''가 붙게 되었다. 주로 16세기부터 이러한 예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17세기 이후에 '남편네'는 보이지 않는다.
이때의 '녀편네'와 '남편네'는 낮추는 뜻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녀편네'가 오늘날처럼 낮추어 말하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근대국어 시기인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원래 '-네'나 '내'가 존칭 표시의 체언에 붙는 복수 접미사였는데, 근대국어에 와서 '쇼인네'나 '우리네 살림살이'에서처럼 평칭이나 자기 겸양을 나타내는 말에 쓰이게 되면서 복수의 의미보다는 낮추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여편네'가 낮추는 말로 된 것이다. 남자를 낮출 때에 지금도 '남정'(男丁)에 '네'를 붙여 '남정네'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