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샘 / 국립국어연구원
우리말에는 상황에 따라 말맛을 살려 골라 쓸 수 있는 관용 표현이 많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시작하다'의 의미를 나타내는 여러 가지 관용 표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1)과 (2)의 관용 표현은 둘 다 '떼다'를 구성 요소로 하고 '시작하다'의 의미를 나타내는데, (1)의 경우 '첫걸음마'와 '걸음마'를 바꾸어 쓸 수 있지만 (2)는 ᄂ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첫발' 대신에 '발'을 쓰면 어색하다. '발을 떼다'만으로는 '시작하다'의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
(3)~(5)는 '(첫)발'이 '디디다', '내디디다', '들여놓다' 등의 동사와 함께 쓰여 '시작하다'의 뜻을 나타내는 예들이다. (3)~(5)의 관용 표현은 시작의 대상을 나타낼 때 조사 '에'를 쓴다. '에'와 함께 쓰이는 명사들은 '영화', '연기', '정치'처럼 시작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기도 하지만 '연예계, 연극계, 정치판' 등과 같이 그런 일을 하는 사회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6)~(8)의 밑줄 친 표현들도 넓은 의미에서 '시작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표현들은 (1)~(5)와 비교할 때 시작하는 일의 규모가 다르다. (1)~(5)가 개인적인 일을 시작한다는 뜻인 반면 (6)~(8)은 민주화, 건설, 개혁 등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큰일이 시작되는 데에 기여한다는 의미이다.
(9ᄂ)의 '포문을 열다'도 역시 '시작하다'의 의미를 나타낸다. 다만 '상대방을 공격하는 발언'을 시작하는 경우에 쓰인다. (9ᄀ)처럼 전쟁에서 대포를 쏘아 공격하는 것을 나타내던 표현이 설전(舌戰)에도 적용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