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形而上學)'과 '형이하학(形而下學)'
이준석(李浚碩) / 국립국어연구원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말로서 '형이상학(形而上學)'과 '형이하학(形而下學)'이라는 철학 분야의 전문 용어가 있다.
'형이상학(形而上學)'과 '형이하학(形而下學)'은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라는 어근(語根)에 '-학(學)'이라는 접미사가 붙어서 파생된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물인 Metaphysics를 번역한 '형이상학'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본질,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의하여 탐구하는 학문을 가리키는 것이다. 좀 더 넓게는 헤겔과 마르크스 철학에서, 비변증법적 사고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고, 초경험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가리키기도 한다. 경험적 대상의 학문인 자연 과학은 상대적으로 '형이하학'이라 부르고 있다.
Metaphysics와 Physics의 번역어로 쓰이면서 철학의 중요한 용어로 자리 잡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은 "주역(周易)"의 '계사상전(繫辭上傳)'의 한 구절에서 유래하고 있다. '형이상'과 '형이하'는 "형상(形象) 이전의 것을 도(道)라고 하고, 형상 이후의 것을 기(器)라고 한다.[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에서 유래한 말이다. 송(宋)나라의 주희(朱熹)는 이러한 '형이상'을 '이(理)' 또는 '성(性)'이라 하고 '형이하'는 '기(氣)'라고 해석하여 성리학의 중요한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이렇게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용어는 동양적인 학문의 전통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즉, 형체를 갖기 이전의 근원적인 사물의 본래 모습을 '형이상'이라고, 감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은 '형이하'라고 파악하였던 중국 철학의 기초 위에서 인간의 감각 기관을 초월한 정신 세계를 Metaphysics라고 지칭하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를 번역하면서 수용하게 된 말이다.
'고사 성어(故事成語)'란 출전이나 근거가 분명하여 유래를 알 수 있는 관용적인 말을 말한다. 이들 고사 성어는 넉 자의 한자로 구성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때론 우리 일상생활에서 익숙해진 두 음절 또는 세 음절의 어근(語根) 형태의 단어들 가운데 중국의 문헌에 출전이나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고사 성어도 있다. 그런데 '형이상학'이나 '형이하학'은 Metaphysics나 Physics를 번역하되, 고사 성어인 '형이상'과 '형이하'의 어근에 접미사 '-학(學)'으로 파생한 말이다. 이처럼 비록 전문 용어일지라도 고전의 출전이 분명하고 그러한 전통 속에서 형성, 발전된 개념을 그 유래로 하고 있다면 이는 고사 성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이라는 말은 동양과 서양의 학문적 접촉 속에서 새롭게 생성되어 친숙해진 고사 성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