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비상과 좌절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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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奇亨度, 1960~1989)의 시 '鳥致院'은 겨울밤에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모습을 삽화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제1연을 보면 진눈깨비가 내리는 추운 겨울날 스팀 장치도 엉망인 기차를 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행자의 상태도 제1연 "쉽게 잠이 오지 않는 축축한 의식 속으로/ 실내등의 어두운 불빛들은 잠깐씩 꺼지곤 하였다."와 제4연 "나의 졸음은 질 나쁜 성냥처럼 금방 꺼져 버린다."에서 비유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다음 도표에서 Ct는 '비유하는 것', Ce는 '비유되는 것'을 가리킴.)
제1연 | Ce 축축한 | ------- | 어두운 Ct | 제4연 | Ce (의식이) | -------- | 질 나쁜 성냥이 Ct | |
| | | | | | ↘ | | | ||||
의식 | ---------- | 불빛 | 들어왔다 말고 | 켜지다 말고 | ||||
| | ↘ | | | | | | | ||||
(잠들다) | -------- | 꺼지다 | (졸다) | ------------ | 꺼진다 |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밤 기차 여행에 피곤한 여행자의 의식 상태가 '어두운 불빛', '질 나쁜 성냥'으로 비유되고 있다. 제1연에서는 춥고 축축하고 피곤한 밤을 지내는 여행자의 의식이 나타나지만 제4연에서는 한 실패한 귀향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타난 반수면 상태가 비유되고 있다. 이런 시의 배경은 곧 등장인물의 내면적 상태를 반영한다.
조치원이 고향인 한 젊은이가 잘된 귀향길이었다면 난방이 잘된 따뜻한 기차간이었을 것이고 밝은 불빛이었을 것이다. 물론 밤의 여행에서 졸다 깨다 하는 상태와 잠들락 말락 하는 상태를 흐린 불빛과 질 나쁜 성냥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동시에 실패한 귀향자의 상태까지도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런 상태는 제3연에서 여행자들의 잠든 상태에서도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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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된 꿈은 발밑에 뒹구는 빵 봉지로 그 처참함이 비유되고 소스라쳐 깬 눈빛은 마치 갑자기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드러나는 초라한 소지품 목록처럼 여행자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여실히 비유하고 있다. 편치 못한 기차 여행에서 좀 더 편하게 자려고 몸을 뒤척이는 모습은 사투리처럼 몸을 뒤척인다고 표현하면서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서 성공하기가 힘듦을 보여 준다. 여기에 '실패한 귀향길/ 잘된 귀향길'의 대립 양상을 추가할 수 있다.
제3연 "서울은 내 둥우리가 아니었습니다."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실패한 귀향과 새 둥지의 비유가 반복해서 나타나는데, 제1연의 (삶은) 달걀을 권하고 (삶은) 달걀 껍질을 벗기다가 손을 다치는 사건, "한때 새들을 날려 보냈던 기억의 가지들을 위하여"에서도 암시되듯이 새의 둥지로서의 나무의 관계가 반복해서 묘사되고 있다. 이 실패한 귀향자의 고향이 또한 조치원이라는 점에서도 새의 둥우리 귀환 이미지가 반복됨을 알 수 있다.
달걀을 깨 먹는 행동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모습이 연상되고 그 새가 날아서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날아갔다가 정착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통과 의례의 실패와 재시도가 '나무 위의 새', '기차를 탄 여행자' 그리고 '도시 속의 정착자'의 대상과 주거지 관계를 띤, 환유적 관계로 나타난다.
둥지 속의 알에서 깨어나 철새처럼 새로운 정착지로 갔으나 실패하여 귀향 중인 새처럼, 이 시 속의 한 사내는 고향과 타향 사이를 오가며 실패와 재시도를 반복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다시금 서울에 정착한 사람과 서울에 정착하지 못한 지방 사람의 대립적인 의미가 드러난다.
기차는 사내의 또 하나의 둥지, 즉 임시 둥지이다. 여기서 보면 조치원은 새를 날려 보낸 나뭇가지이고 서울은 둥지를 잠깐 튼 나뭇가지로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지방 사내의 모습이 조치원에 도착하자 새로운 비상을 시도하는 크고 검은 새로 표상되고 있다.
힘든 겨울 여행을 하는 새와 난방이 안 된 기차 여행의 비유를 통해 지방 사람의 서울 생활이 얼마나 힘든가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