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공사 삼 일(高麗公事三日)
조남호(趙南浩) / 국립국어연구원
속담은 사람들이 살면서 겪은 경험을 정제된 말로 응축하여 표현하면서 생기게 된다. 따라서 속담은 반드시 살면서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가치만 담고 있지는 않다. 그중에는 특정 계층, 지역, 성(姓)에 속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것도 있어 그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주기도 한다. 최근에도 특정 지역 주민이 혐오하는 속담을 방송에서 무심코 사용했다가 지역 주민에게서 항의를 받은 일도 있다.
속담 중에는 우리 민족 전체의 성향을 비하하는 뜻이 담긴 것도 있으니 ‘고려공사 삼 일’을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다. 고려, 즉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공사(公事)는 삼 일이면 바뀐다고 말하는 것이니 한 번 세운 법이나 제도를 지속하지 못하는 나쁜 습관을 비꼬는 것이다. 정해진 법이나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따르지 않고 바뀔 날만 기다리는 사람에게 이 속담은 좋은 핑계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듣기에 썩 좋지 않은 이 속담이 “조선왕조실록”에서 자주 발견된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태종실록’부터 ‘영조실록’에 이르기까지 무려 19회나 나온다. 다른 속담보다 훨씬 많이 나온다. 제도가 자주 바뀌는 것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라는 말이 들어간 것을 보면 고려 시대부터 이미 사용하기 시작한 말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필자가 알기로 문헌에서 가장 일찍 확인되는 것은 ‘태종실록’이다.
‘태종실록’보다 뒤에 나온 기록에서는 ‘고려공사 삼 일’이라는 표현이 상황에 맞게 바뀌기도 하였다. ‘연산군일기’나 ‘중종실록’에서는 주로 ‘조선의 법 삼 일’로 나온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온 것이다. 또 ‘공사’ 대신 ‘정령(政令)’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우연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선조실록’ 이후로는 ‘조선’ 대신 다시 ‘고려’로 나온다. 시대에 맞게 ‘조선’으로 고쳤다가 당대의 일이라고 말하기가 그때에도 부끄러워 ‘고려’로 다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변함이 없는 것은 ‘삼 일’이라는 표현뿐이다.
최근에는 이 속담을 듣기가 어려운 듯하다.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어 사람들이 사용하기를 꺼리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 속담을 들어 말할 만한 상황은 계속 생기는 듯하다. 실록에 나오는 아래 글은 지금도 충분히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