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자 표기법의 이해

사람 이름의 로마자 표기

김세중(金世中) / 국립국어연구원

2000년 7월 7일 새 로마자 표기법이 고시되었다. 로마자 표기는 주로 지명과 인명을 대상으로 하는데 실제로 누가 표기를 맡느냐는 점에서 지명과 인명은 뚜렷한 차이가 있다. 지명은 도로의 표지판, 공항과 항만 등의 안내판과 지도 등에 주로 쓰이는데 표기를 담당하는 주체는 주로 정부나 공공기관이고 실제로 표지판을 제작하고 설치하는 것은 표지판 제작 업체이다. 이에 반해 인명은 정부나 공공기관이 아니라 개인인 국민 각자가 표기를 해 왔다. 그래서 작년에 새 표기법이 고시되었을 때 대부분의 국민은 자기 이름을 새 표기법대로 표기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개인이 자기 이름을 로마자로 적을 때 로마자 표기법을 지켜서 적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여권을 처음 발급받을 때 자기 이름을 로마자로 적게 되는데 로마자 표기법대로 적지 않아도 제재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개인이 신청한 대로 여권의 인명 표기가 정해졌는데 그 결과 혼란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정수'라는 이름은 Jeongsu, Jeongsoo, Chongsu, Chongsoo, Chungsoo, Chungsu 등 갖가지 표기가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그동안 인명에 대해서는 로마자 표기법이 구속력을 띠지 못하였는데 인명이라고 로마자 표기법의 대상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이유는 없다. 인명도 표기법을 따라야 표기의 혼란을 막을 수 있고 표기법을 제정한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새로 여권을 발급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도록 의무화하는 등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인명의 표기에서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성과 이름의 순서이다. 성과 이름의 순서에 대해서는 서양식대로 이름을 먼저 쓰고 성을 나중에 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로마자 표기법에 성을 먼저 쓰고 이름을 나중에 쓰도록 규정되어 있다. 한국 사람의 이름은 한국식으로 쓰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철수'는 Cheolsu Han이 아니라 Han Cheolsu라고 쓰는 것이 원칙이다. 서양 사람들 중에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성을 먼저 쓴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굳이 서양식으로 바꾸어 적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름의 두 글자 사이에는 붙임표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붙임표를 쓰는 것도 허용한다. 즉 Han Cheolsu가 원칙이되 Han Cheol-su를 허용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름의 두 음절 사이에 일어나는 음운 변화는 무시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김석문'이라는 사람이 있다면 이름의 '석문'은 [성문]으로 발음되는데 이 경우 발음인 [성문]을 로마자로 표기해야 할지 '석' 따로 '문' 따로 표기해야 할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만일 지명이라면 '석문'은 발음이 [성문]이므로 Seongmun으로 표기해야 한다. 그러나 인명만은 발음을 따르지 않고 각각의 글자를 별도로 표기한다. 따라서 사람 이름인 '석문'은 Seongmun이라고 적지 않고 Seokmun이라 적는다. 최근에는 고유어로 이름을 짓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는데 고유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빛나'라는 이름이 있다면 '빛'을 적고 '나'를 적는다. 따라서 Bitna가 된다. Binna라고 적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성씨에 대해서는 따로 정한다고 규정하였고 지금 논의 중에 있다. '이(李)씨'의 경우 표기법대로 하면 I라고 해야 하지만 I로 쓰는 사람이 거의 없고 I로 쓰기를 강력히 권장하더라도 따를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로마자 한 글자인 성씨는 세계적으로 예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김', '박' 등도 표기법에 따르면 Gim, Bak지만 현실적으로 Kim, Park로 적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성씨의 표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으는 중에 있고 앞으로 공청회 등을 거쳐 권장 안이 마련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