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암뙈지’가 아니라 ‘암퇘지’일까?
정호성(鄭虎聲) / 국립국어연구원
국어에서는 두 말이 결합하여 복합어를 이룰 때 일반적인 음운규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돼지’란 말은 그 앞에 ‘수-, 암-’이 오면 【수돼지/암돼지】혹은 【숟뙈지/암뙈지】가 아니라 【수퇘지/암퇘지】라고 발음을 한다. 또한 ‘안’과 ‘밖’이 결합하여 한 단어가 되면 【안박】이나 【안빡】이 아니라 【안팍】으로 소리가 난다. 또한 고기 중에서도 ‘기름기나 힘줄, 뼈 따위를 발라낸, 순 살로만 된 고기’를 가리키는 ‘살코기’란 말은 분명 ‘살+고기’로 구성된 단어이지만 【살고기】, 살꼬기가 아닌 【살코기】라고 말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현대국어에서 접두사로 분류되는 ‘암-’과 ‘수-’는 중세국어에서는 말음에 ‘ㅎ’ 소리를 가지고 있었던 말들이다. 또한 이들은 문장에서 홀로 쓰일 수도 있었다.
(1) ㄱ. 암히 수흘 좃놋다(雌隨雄) 《두시언해 초간본 제17권 5장》(암컷이 수컷을 좇는구나)
ㄴ. 수 라 머리 바 求거 암히 우루믈 슬피더라(雄飛遠求食 雌者鳴辛酸)《두시언해 중간본 제17권 7장》(수컷은 날아 멀리 밥을 구하거늘 암컷이 울음을 슬피하더라)
그리고, ‘안〔內〕’과 ‘살〔肉〕’은 현대국어에서 홀로 쓰일 수는 있지만 중세국어에서 역시 말음에 ‘ㅎ’ 소리를 가지고 있던 말이다.
(2) ㄱ. 內 안히라 《월인석보 1권 20장》(內는 안이라)
ㄴ. 안콰 밧기 貴賤이 다나 《두시언해 초간본 8권 5장》(안과 밖이 귀천이 다르나)
ㄷ. 菩薩이 몸과 콰 손과 … 《석보상절 13권 19장》(또 보살이 몸과 살과 손과 …)
ㄹ.
낱 좌샤 히 여위신 《월인천강지곡 상권 23장》(한 낱 쌀을 잡수시어 살이 여위신들)
현대국어에서는 이들 단어들이 문장에서 홀로 쓰일 때는 말음 ‘ㅎ’ 소리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닭, 수+강아지, 암+돼지, 안+밖, 살+고기’ 등과 같은 결합에서는 바로 이 ‘ㅎ’ 말음 소리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수탉】, 【수캉아지】, 【암퇘지】, 【안팍】, 【살코기】’ 등으로 발음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글 맞춤법’ 제31항과 ‘표준어 규정’ 제7항에서는 ‘암-, 수-’ 등에서 말음 ‘ㅎ’은 밝혀 적지는 않으나, 이들과 결합한 말들에서 거센소리가 나는 것을 인정하여 ‘암캐, 수탉, 암퇘지, 안팎, 살코기’ 등과 같이 거센소리로 쓰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