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의 속담】

신조 속담
-속담집 편찬 과정을 중심으로-

송재선 / 우리말 속담 큰사전, 상말 속담 사전 편찬자


1.속담의 기원

  필자는 속담의 기원을 아득한 옛날 옛적인 구석기 시대로 추정한다. 그 이유로서는 구석기인들은 집단 생활 과정에서 자유로운 언어 소통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집단으로 수렵(狩獵)을 하거나 어로(漁撈)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동의 통일을 기하기 위하여 의도적인 언어 교육이 필요하였을 것이고 따라서 잘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 줄 때는 행동으로 시범을 보이기 전에 먼저 말로써 언어 교육이 있었을 것이다. 언어란 인간이 일을 하는 하나의 생산 수단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집단으로 하게 될 때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언어 교육이 필요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수렵 속담(狩獵)으로 “산에 가야 꿩을 잡는다”는 속담이 있고 어로 속담으로서 “물에 가야 고기를 잡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므로 구석기 시대 수렵인들에게는 전자와 유사한 언어 교육을 있었을 것이고 어로인들에게는 후자와 유사한 언어 교육이 있었을 것이다. 즉 수렵인들은 어느 산에는 꿩이 많고 어느 산에는 무슨 짐승이 많으니 그곳으로 사냥을 가자고 할 것이고 어로인들은 어느 물에는 무슨 고기가 많고 어느 물에는 조개가 많으니 그곳으로 가자고 하여 여러 사람의 공감을 얻어 집행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언급한 수렵 속담과 어로 속담은 구석기 시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세월을 두고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더라고 이를 반론할 수 있는 논거는 없을 것이다.
  속담은 민중의 중지(衆智)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민중의 사상, 철학, 도덕, 교훈, 관습 등이 짧은 말속에 농축되어 있는 보배로운 말들이다.
  그러므로 속담은 오랜 세월을 두고 구비 구전(口碑 口傳)되면서 줄기가 뻗어 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싹이 나면서 발전되었고 또한 발전되고 있다.


2.신조 속담

  신조 속담이란 새로운 속담을 말한다. 새로운 속담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속담이 시대적 산물이고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에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천하게 되면 생활 양식이 변하게 되고 의식 구조도 변하게 되므로 따라서 새로운 속담, 즉 신조 속담도 발생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신조 속담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조선조 봉건 사회가 일제의 침략으로 기형적이나마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되면서 발생된 신조 속담과 다른 하나는 일본 제국주의가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되면서 제국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발생된 신조 속담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두 신조 속담의 실례를 간단히 들어 보기로 한다.


      (1)일정 시대의 신조 속담

  날일을 시키면 장승될까 무섭고 도급 일을 시키면 발목 부러질까 무섭다.
  이 속담은 일정 시대 철도 공사장에서 노동자에게 날일을 시키면 일하는 시간보다 서 있는 시간이 많을 정도로 느릿느릿 일을 하기 때문에 일을 도급으로 시키면 발목이 부러질 정도로 흙을 많이 지고 다닌다는 뜻으로서 당시 항일 사상을 가진 노동자들이 날일에는 사보타주(sabotage)를 하지만 도급 일에는 자신의 이해관계가 있으므로 열심히 한다는 데서 유래된 속담이다.

  문전옥답(門前沃畓) 쓸 만한 건 신작로(新作路)로 다 들어가고 자식새끼 날 만한 색시는 신마찌(新町)로 다 팔려 간다.
  문 앞에 곡식 잘 되는 논은 일제가 약탈하기 위하여 개통하는 도로로 들어가고 자식을 잘 날 수 있는 예쁜 농촌 아가씨는 일제 때 유곽(창녀가 모여 매음하는 곳)이 있는 서울 신마찌(현 묵정동) 창녀로 많이 팔려 간다는 뜻으로서 일제가 강점하면서 농촌 몰락상의 한 단면을 묘사한 속담이다.

  ㅈ으로 왜놈 목 친다.
  이 속담은 일정 시대 항일 사상에서 발생된 속담으로서 무기가 없는 우리들은 맨손으로라도 왜놈과 싸우되 맨손도 끊기고 없어지면 남근으로서라도 싸워 이겨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이 속담의 어원에는 흥미 있는 삽화가 있다. 즉 1933년 1월 29일 전라북도 정읍 보천교(普天敎) 교인 김○○는 “지금 중일 전쟁이 점점 확대되면 세계 대전으로 확대되면서 좆으로 즉 조지로(朝支露: 朝鮮·支那·露西亞)가 왜놈의 목을 쳐 이기게 되면 조선은 독립이 되고 정권은 보천교에서 잡게 된다.”고 말한 데서 유래된 속담인데 이 말을 한 김 씨는 유언비어 죄로 3년 형을 받았다.


        (2)광복 이후의 신조 속담

  8·15 해방 이후 미군정 시대에서 제6공화국에 이르는 동안에 신생된 신조 속담에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미국 유학 갔다 와서 박사 못 된 건 병신이고 중국 갔다 와서 장군 못 된 건 병신이고 군정청에 들락날락하고 감투 못 쓴 건 병신이다.
  군정 시대 미국 유학한 사람은 거의 박사가 되고 중국에서 항일 운동한 사람 중에는 장군된 사람이 많고 군정청에 자주 출입한 사람은 거의가 감투를 썼는데 이 대열에 들지 못한 사람은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겠다.
  이 속담은 영국 신문 기자의 말에서 유래된 말로서 6·25 전쟁 직후 정치적으로는 독재 정치 하에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파탄되어 불안정한 환경에서 민주주의가 수립된다는 것은 마치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다리듯이 요원하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 속담화된 것이다.

  청첩장이 아니라 고지서다.
  최근 결혼식은 친한 하객을 초청하여 결혼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있거나 이권을 가진 사람들은 친 불친을 떠나서 돈이 나올 만한 사람에게는 다 청첩장을 보내기 때문에 결혼을 축하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돈 봉투를 전해 주기 위해서 안 갈 수 없듯이 청첩장을 받으면 돈을 보내게 된다는 뜻이다.

  부모 송장 팔아 돈 번다.
  부모상을 당했을 때는 친한 사람들에게 부고를 보내는 것인데 최근에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 권력권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친 불친을 떠나서 부의금을 받아 돈벌이를 한다는 데서 유래된 속담이다.

  나는 범죄 기는 경찰
  제6 공화국에서는 강력범을 소탕하기 위하여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강력범의 소탕전을 벌렸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서 유래된 속담이다.

  ∘홍길동 박사(洪吉童 博士)
  우리나라 고전을 주제로 한 비교 문학을 국내에서 연구하지 않고 해외 유학에서 연구하고 돌아온 유학생을 조롱하는 말이다.


      3. 속담을 수집하게 된 동기

  필자가 속담에 관한 취미를 가지게 된 사연과 이것을 수집하게 된 동기를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필자가 속담에 취미를 가지게 된 것은 지금부터 71년 전(1923년)인 보통학교(국민학교) 2학년 때 조선어독본(국어 교과서)에 이언(俚諺)이라는 제목으로 속담 10수(首)가 실려 있었다.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다음과 같다.
까마귀 날아가자 배 떨어진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쇠귀에 경 읽기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 못 한다.
우물 안 개구리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등등이었다.
  당시 이 속담을 가르쳐 주신 담임 선생님은 평소에도 문자, 속담, 동화 등을 잘 이야기하시는 분으로서 이날 속담 시간에는 이 속담 외에도 재미있는 속담을 수십 개를 알려 주시었다.
  필자는 이때부터 속담에 취미를 가지게 되었고, 또한 속담을 많이 쓰려고 노력하였다.
  8·15 해방이 되자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만세 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천지를 진동시키게 되었고 빼앗겼던 성과 이름을 되찾고 우리 문화를 되찾으려는 사조가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필자도 일제에 의하여 말살된 우리나라 속담을 수집하는 것은 우리 민족 문화유산을 발굴하는 일환이라고 느끼게 되었기 때문에 속담 수집을 하게 된 것이다.


4. 제1차 속담 수집

  속담 수집을 착수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속담을 정리한 다음 가까운 친우들에게 부탁하여 수집하는 한편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사람들에게서 수집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필자는, 당시 대전에 거주하였는데 대전에는 4개의 서점이 있기는 하였으나 속담에 관한 서적은 하나도 구하지 못하였고 다만 일정 시대에 조선 한글 학회에서 간행한 “한글”을 몇 권 구했는데 여기에는 속담이 계속 연재되어 있었다.
  1948년 11월경 서울에 여러 날 체류하는 기회에 서점을 찾아다니며 속담에 관한 책을 찾던 중 종로 한 고서점에서 김사엽·방종현(金思燁·方鐘鉉) 공편 “속담 대사전”을 입수하게 되었는데 이때 필자는 손오공의 금봉이라도 얻는 것처럼 기뻤다.
  이 “속담 대사전”에 수록된 3, 600여 수와 그간 수집된 구전 속담(傳 俗談) 약 2,000여 수와 합치면 5,000여 수인데 이 중에서 중복된 것 약 600~ 700여 수를 제한다 해도 근 5, 000수에 달하는 훌륭한 속담 사전이 될 수 있다는 데서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이것을 출판할 야심으로 속담을 하나 하나 원고에 옮기면서 속담 수집은 여전히 계속하였다.
  이러던 차에 청천벽력과 같은 6·25 전쟁으로 인하여 이제까지 수집한 속담은 가산과 함께 피란 간 사이에 소실되어 이에 대한 꿈은 산산이 무산되었고 4년간에 걸친 제1차 속담 수집 사업도 수포로 되고 말았다.


5. 제2차 속담 수집

  필자는 6·25 전쟁으로 알거지가 되어 간고한 생활이 연속되었기 때문에 한동안 속담 수집에 손을 대지 못하였다가 1970년에 들어서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나마 다시 속담 수집을 재개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과거의 경험을 교훈으로 살려서 보다 적극적이고 계획적이고 조직적이고 수집하기로 하였다.
  (1) 먼저 가족들을 총동원시켜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을 때 흔히 들을 수 있는 속담은 물론이고 직장이나 거리에서 듣는 속담도 메모해 올 것과 소설이나 잡지를 읽었을 때 발견되는 것도 메모해 오도록 조직망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온 가족들이 합심하여 꾸준히 모아 주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필자 칠순 때 당시 국민학교 6학년인 외손녀가 이영실 편 “속담 풀이”(대일 출판사, 1982)를 선물로 사 줄 정도로 온 가족들이 속담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2) 친지들에게도 속담 수집에 협조하여 줄 것을 부탁하여 매월 모임이 있거나 수시로 만났을 때 알려 주도록 하였더니 가까운 친구들 중에는 종종 전화로 알려 줄 속담이 있으니 어느 다방으로 나오라고 하여 다방에서 몇 개의 속담을 들으면서 환담을 나누는 경우도 많았다.
  (3) 필자는 요업 기술자인 관계로 국내 요업 공장을 1년에 4~5개씩 교대로 돌려 가면서 기술 지도를 하기 때문에 이 공장 종업원 중에서 속담을 잘 쓰는 사람을 물색하여 이들로부터 적지 않은 양의 속담을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4) 일요일이나 쉬는 날에는 노인정이나 노인 놀이터를 찾아다니며 군중 속에서 직접 수집하였다.
  여기서 말하고 넘어갈 것은 처음에는 노인들이 많은 곳에 참석하여 그들이 어쩌다가 흘리는 속담을 수집하였는데 이것은 노력과 시간에 비하여 수확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노인들이 모인 장소에 찾아가서 인사를 한 다음에 속담을 수집하러 왔으니 속담 좀 알려 달라고 하였더니 속담을 아는 것이 없다고 하며 사양하였다. 이것은 어느 한 곳에서만 당한 것이 아니라 두서너 번이나 당한 경험이었다.
  이들은 아마 속담이라고 하니까 고상하고 어려운 말인 줄로 알고 사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 자신이 군중 심리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반성하면서 군중 속에서 그저 들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군중 속에서 속담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전술로 바꾸게 되었다.
  또한 속담을 수집하는 장소도 여러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보다는 2~3명씩 모여서 조용히 환담하는 곳을 찾아가 인사를 하고 낯을 익힌 다음에 속담을 유도하도록 하였다.
  여기에 모이는 노인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은 점심도 걸러 가면서 이야기하다가 일찍이 집으로 돌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후 필자가 탑골 공원에서 속담을 수집한 경험을 하나 소개하기로 한다.
  날씨가 따뜻하거나 더울 때는 언제나 탑골 공원에는 노인들로 만원이다. 여기에 모이는 노인은 어쩌다가 오는 노인도 있지만 대부분이 자주 나오는 노인들이다.
  공원 한두 군데서는 언제나 구변이 좋은 노인이 큰 목성으로 옛이야기나 시국 이야기를 구수하게 하고 그 주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재미있게 듣고 있는가 하면 변두리 의자에는 2~5명씩 소인조로 앉아서 정답게 이야기하는 곳도 많다.
  필자는 소인조로 가서 인사를 한 다음 한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다음에는 남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나도 한 마디 하겠다고 하면 그들이 박수로 맞이하게 된다. 이때 필자는 짧고 재미있는 유머한 이야기에 속담을 섞어 가면서 한 마디 하면, 재미가 있으니 더 해 달라고 한다. 이때는 더 재미있는 우스개 이야기에 보다 많은 속담을 섞어 가면서 2~3개 더 이야기를 하여 주면 이들과 갑자기 친근해지면서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점심 때가 되었을 때는 공원 안 매점에 가서 빵과 우유를 사 가지고 가서 하나씩 나누어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이렇게 분위기를 부드럽게 조성한 다음에 속담 수집에 협조하여 달라고 부탁하면서 먼저 이야기 중에서 인용한 속담에 대한 뒤풀이도 하고 새로운 속담도 실례를 들어 가면서 부탁한다.
  이렇게 유도하였더니 속담이 하나 둘씩 꼬리를 물고 나오게 되었다. 이때 필자는 재미있는 속담이든 아니든 메모를 하면서 참 재미있는 좋은 속담이라고 찬사를 하면서 상대방의 사기를 높여 주었다. 이날 속담을 생각하여 두었다가 만나는 날 많이 알려 달라고 부탁을 하고 헤어진다.
  다음 약속한 날 만나게 되면 구면이 되어 한층 분위기도 부드럽게 될 뿐 아니라 준비된 속담을 듣게 되므로 짧은 시간에 많은 수확을 얻게 된다.
  이날도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하다가 헤어질 때는 또 만나는 날을 정하고 헤어진다. 이런 식으로 그들과 4~5차례 만나게 되면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속담은 모두 수집할 수 있게 되므로 이번에는 다른 노인들과 사귀면서 먼저와 같은 방법으로 수집하였는데 전라남도 곡성이 고향인 김 모 씨로부터 500여 수나 수집하기도 하였다.
  (5) 필자는 여행 과정에서도 속담을 수집하기 위하여 통일호 기차를 주로 이용한다. 통일호 차는 노인들에게 운임 50%를 감해 주기 때문에 노인들이 가장 많이 타게 된다. 통일호를 탈 때는 지정 좌석에 앉지 않고 차내를 다니면서 이야기를 잘할 노인을 찾아서 그 옆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사정을 하여 내 차표 좌석과 바꾸어 앉는다. 이렇게 하여 그 노인과 한 좌석에 앉아 가면서 속담을 유도하여 수집하기도 하였다.
  (6)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속담에 관한 단행본이 꼬리를 물고 출판되기 시작하였다. 즉 최근학 편 “속담 사전”(경학사, 1962), 이기문(李基文) “속담 사전”(민중 서관, 1962), 이일선(李一善) “한국 속담집”(서문당, 1972) 등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속담집이 시판되었기 때문에 쉽게 입수하였를 뿐 아니라 서점에서 구하지 못하는 것은 도서관에서 수집하였다.
  이와 같이 서적을 통하여 수집된 속담은 중복된 것을 제외하면서 원고지에 올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손쉽게 단시일 내에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상과 같이 속담 수집을 생활화하여 2차 속담 수집을 1982년에 마감한 결과 총량 25, 500여 수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말 속담 큰사전”이라고 책명으로 1983년 서문당(瑞文堂)에서 출판하게 됨으로써 근 40년간의 노고에 대한 보수를 한꺼번에 받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6. 제3차 속담 수집

  제3차 속담 수집 계획을 수립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1) 아직도 수집되지 못한 속담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많이 남아 있어서 이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으며
  (2) 우리말 속담이라면 전국적으로 수집된 속담이 수록되어야 하는데 이제까지의 것은 거의가 남한의 속담만 수록되어 북한의 속담은 수록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으며
  (3) “우리말 속담 큰사전”을 출판할 때 상스러운 속담은 도덕적으로 불미한 영향을 끼칠까 봐 1, 000여 수를 뺀 것이 있고 제주도 속담 중에서는 방언을 풀지 못한 것 300여 수와 난해 속담 200여 수 합계 1, 5000여 수를 남겨 둔 것이 있어서 이것들을 증보판에 넣고 싶은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으며
  (4) 필자가 고령이기는 하나 아직 더 수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10년 동안을 목표로 하고 수집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수집 방법에 있어서는 2차 수집 때와 같은 방법을 쓰되 2차 때에 비하여 책에 수록된 속담을 발굴하는 데 비중을 더 할애하기로 하였다.
  이러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서는 먼저 국립 중앙 도서관을 비롯하여 시내 각 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도서 목록 중에서 속담에 관한 단행본은 물론이고 속담에 관한 학술 논문, 신채속담(新採俗談), 속담 풀이 등이 수록된 책들에 대한 목록을 작성한 다음 이것을 하나 하나 체크해 가면서 국·시립 도서관 및 시내 각 대학교 도서관에서 복사하여 수집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어서 이화여대 국문학과 이 교수에게 의뢰하여 아르바이트하는 신재화(申材和) 양을 소개받아 신 양과 분담하여 수집하였다. 신 양은 1992년 졸업할 때까지 각 대학교 도서관을 순회하면서 열심히 속담에 관한 문헌을 복사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필자도 여가 있는 대로 각 도서관에서 속담에 관한 문헌을 복사하는 한편 매월 2~3일간은 시내 서점을 순회하면서 신간 속담책이 발견되는 대로 구입하였다.
  이 외에도 각 국어 대사전과 흥부전(興夫傳)을 비롯한 고전 소설 등에서도 적지 않은 양의 속담을 수집하였다.
  북한 속담을 수집하기 위하여 평안북도 정주(定州)가 고향인 곽 모 씨(郭 某 氏)와 속담에 대한 이야기 끝에 자기 고향 군지(郡誌)인 정주군지(定州郡誌)에도 속담이 수록되었다는 말을 듣고 다음날 국립 중앙 도서관에 가서 북한의 각 군지를 보았더니 속담과 수수께끼가 수록된 것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서 손쉽게 북한 속담을 많이 수집하게 되었고 또한 평안남북도, 황해도, 함경남북도의 도지(道誌)에서도 속담을 수집하게 되었다. 따라서 남한의 각 군지와 도지에서도 남한 속담을 많이 수집하게 되었다.
  북한 속담을 더 수집하기 위하여 중국 교재용으로 쓰는 속담집을 구해 줄 것을 중국에 가는 심 교수(沈 敎授)에게 부탁하였더니 “조한성구속담사전”(朝漢成語諺語詞典)(對外經濟貿易大學 朝鮮語敎硏室編, 1986)과 “한국성구사전”(연변인민출판사, 1988)을 구해 주어 심 교수 덕분에 북한 속담을 예상 외로 많이 수집하게 된 데 대하여 심 교수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
  이상과 같이 10여 년 동안을 필자가 작성한 “한국 속담 관계 논저 목록”에 근거하여 주로 수집하였는데 이 목록에 수록된 총 491권 중에서 각 도서관에서 복사를 하였거나 시중 서점에서 입수한 것은 81%에 해당하는 398권이므로 나머지 19%에 대해서는 계속 추적 중에 있다.
  현재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속담학 서적에 대한 총 밑천은 107권인데 이 중에서 복사한 것을 제본한 것이 42권이다.
  1983년 이후 수집된 속담 수는 약 26,000여 수인데 여기에 1983년에 간행한 “우리말 속담 큰사전”에 수록된 25,700여 수를 합치면 51,700여 수로서 양자 간에 중복된 것은 1차적으로 정리했지만 아직도 다소 있을 것으로 보더라도 약 5만 수는 될 것으로 믿어진다.
  이제부터는 수집보다도 원고 정리에 몰두하면서 출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끝으로 우리나라 속담학의 기존 연구에서 못다 밝힌 것을 여기서 보완하기를 염원하면서 속담 수집으로 한평생을 즐겁게 지내 온 것을 큰 보람으로 느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