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에 대한 국어학적인 재인식 시도
1. 속담 연구로 가는 징검다리
자신의 모국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속담’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속담에 대한 여러 가지의 경험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속담이 국어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어학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학문 세계가 주는 삶의 의미와 일상적인 삶의 의미가 큰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2. 입말의 성격과 발전의 모습
말의 본질적인 기능은 하루하루의 삶에서부터 작동하고 있다. 굳이 되풀이할 필요가 없는 명제를 이렇게 앞머리에 두는 이유는 이 기본적인 시각에서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발걸음을 떼어 놓을 것인가가 국어학이 속담에 대한 재인식에 예정대로 닿을 수 있는지의 여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3. 굳어진 상투 어구
이와 같이 일정한 상투적인 말은 담화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끊임없이 재생산되면서 ‘공간적인’ 사용 범위가 상대적으로 넓어지고 또한 여러 번 비슷한 상황에서 되풀이되는 ‘시간적인’ 확대가 일어난다. 이리하여 극히 좁은 범위의 상황에서 몇몇 사람들이 인습에 따라 한때 사용하는 상투 어구에서부터 상대적으로 큰 집단이 장구하게 사용하는 상투 어구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로 문화적인 함의가 다른 어구가 형성된다. 이러한 상투 어구는 필연적으로 자꾸 ‘되풀이되어’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그 빈도가 높아질수록 사용된 표현은 아닌 것 같으면서도 늘상 함께 나타나다시피 하는 어구들이다.(1) | ① 앞으로 많이 부탁드립니다. | |
② 국민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
③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 ||
④ 어린이와 노약자를 보호합시다. | ||
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평생 해로하기를 바랍니다. | ||
⑥ 흡연은 폐암 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특히 임신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
(2) | ① 입을 다물다. | |
② 눈을 감다. | ||
③ 방귀를 뀌다. | ||
④ 새가 지저귀다. |
(3) | ① -에 대하여 | |
② -에도 불구하고 | ||
③ -을 무릅쓰고 | ||
④ -로 말미암아 |
(4) | ①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 | |
② 윤년은 평년보다 하루가 더 많다. | ||
③ 한국어와 영어는 그 계통이 다르다. |
(5) | ①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 | |
② 배가 터지게 먹었다. | ||
③ 호랑이 선생님 | ||
④ 뺑소니 운전자 | ||
⑤ 얼씨구 하며 기뻐한다. |
(6) | ① 사람을 한참 기다리면서 한 방향만 보고 있으면 꼭 눈이 빠질 것 같다. | |
② 음식을 많이 먹으면 꼭 배가 터질 것처럼 부르다. | ||
③ 학생들에게 엄격하고, 심하면 때리는 교사들의 별명은 으레 ‘호랑이’이다. | ||
④ 사고를 낸 운전자들 중에는 책임을 피하려고 그냥 도망치는 경우가 있다. | ||
⑤ 아주 좋은 일이 생기면 ‘얼씨구’ 하면서 기쁨을 나타낸다. |
4. 앎의 수단으로서의 굳어진 상투 어구
전형적인 상황에서 전형적인 말이 사용된다는 것은 우선 상황과 말의 긴밀함을 보여 주면서도 또한 사물을 보는 유사한 인식 방법, 달리 말해서 특정 대상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하는 ‘앎’이 유사해지기도 한다는 뜻이 된다. 그것은 대개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경험을 하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동일한 앎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작은 소집단 또는 좁은 범위의 지역 사회 등에서는 이와 같은 상투적인 표현이 일상적인 언어 행위의 많은 부분을 담당해 주고 있다. 그렇게 ‘함께 하는 앎’을 지녔기 때문에 그러한 집단에서는 상투 어구가 빈번하게 쓰이고 있으며 그러한 표현에 대한 의구심이나 반대를 나타내는 어구(곧 반대 담화)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간혹 어떤 반대 담화가 나타나면 대화에 상당한 혼선을 빚거나 대꾸조차 안 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만일 반대 담화가 기존의 지배 담화의 상투성을 파괴하는 데에 성공하면 그 반대 담화나 새로 형성된 대안적 담화는 새로운 지배 담화로서 새로운 상투 어구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하여 같은 앎에서 비롯된 가치관을 똑같이 표현하려는 가치 집단이 끊임없이 형성된다. 결국 상투 어구는 함께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면서, 함께 알고, 공동의 가치를 지니는 집단의 (역사적인) 생산물이다.5. 계급 문화의 산물로서의 속담
하나의 공동체가 오랫동안 공동의 삶을 엮어 오는 역정은 그 구성원들의 공동의 행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공동의 행위란 늘 우호적인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내부의 갈등, 불화, 투쟁, 화해 등을 어떻게 해결해 왔으며 어찌하다 해결에 실패를 하였는가 따위를 망라한 공동의 행위, 곧 우호적 행위와 적대적 행위를 모두 얼싸안는 개념으로서의 공동의 행위이다.5)(7) | ①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 |
②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 | ||
③ 그래도 지구는 돈다. | ||
④ 아는 것이 힘이다. | ||
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
(7) | ① 열 번 찍어 아니 넘어가는 나무 없다. | |
②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 ||
(8) | ① 늙어서 만난 사람이 더 정답다. | |
② 늙어서 된서방 만난다. |
(9) | ① 병 주고 약 준다. | |
② 달린 개가 누운 개 보고 웃는다. | ||
③ 과부 마음은 과부가 안다. | ||
④ 꼬리가 길면 밟힌다. | ||
⑤ 서울 가서 한양 찾는다. |
(10) | ① 길 닦아 놓으니까 [미친년/각설이 떼/똥개] 먼저 지나간다. | |
②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꽃이 붉어 보인다.] |
6. 속담의 오늘과 내일
여기서 속담은 오로지 지나간 시대의 산물뿐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 봄 직하다. 속담이 피지배 집단의 문화적 소산이라면 지금도 소외 집단 혹은 대중문화의 주변부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속담이 형성되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물음은 퍽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직 속담의 한 가지라고 가리키기는 어렵지만 비슷한 유형의 어구가 우리 사회의 뒷전에서 그리고 사사로운 담화의 영역에서 포착되고는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지만 한때 우리 사회에서 제일의 갑부로 알려졌던 이병철 씨의 이름자에 빗대어 “내가 무슨 돈병철 아들인가?” 하는 어구가 유행되기도 하였으나 우리의 경제 구조의 변화로 사라져 버린 것 같다. 비교적 생존력이 있는 듯한 신흥 속담류로는 예를 들어 “딸 낳으면 외국 여행하고 아들 낳으면 전방 면회 간다.”와 같은 색다른 어구들이 “딸 낳으면 비행기 타고, 아들 낳으면 고속버스 탄다.” 하는 종류의 변종과 함께 최근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결국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와 현실 사이의 간극 또는 격차 가운데 끼어 살고 있는 서민 또는 민중들에게 그들의 애환을 표현하며, 공적 세계에서 강조되는 가치와 자신들의 삶의 현실 사이의 틈바구니를 이해하는 정신적 동조자를 구할 수 있는, 새롭게 굳어진 상투 어구의 필요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