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부여의 과정과 방향
1. 머리말
지명의 제정, 변경 또는 지명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경우 공무원이 아닌 전문 지식을 가진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이를 위해 현재 전국의 시·도·군구에는 사계의 전문가로 구성된 지명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으며 중앙 부처에는 건설부 산하에 중앙 지명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지명에 관한 실질적인 조사, 심의 및 의결은 각 지방 자치 단체의 지명 위원회에서 하고 중앙 지명 위원회에서는 최종적 의결을 한다 할 수 있다.2. 지명 위원회의 구성과 기능
2.1 서울특별시 지명 위원회의 연혁과 구성
지명 위원회는 측량법 제58조 ‘지명 위원회’를 근거로 각 지방 단체별로 조례를 제정, 이에 의하여 구성하였으며, 서울특별시의 경우 서울특별시 지명 위원회 조례 제정은 1981년에 하였으나, 실제 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1985년이다. 지명 위원회가 운영되기 전 서울시는 이미 1966년부터 학자, 법조인 및 언론인, 경제인 등 총 19명으로 이루어진 가로명 제정 위원회를 구성하여 서울 시내의 가로명, 교량명 등을 제정 또는 개정하다가 1985년 가로명 제정 위원회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통합한 지명 위원회를 구성는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2.2 지명 위원회의 기능
서울특별시 지명 위원회 조례상 규정된 지명 위원회의 기능은 첫째, 지명의 제정, 변경 또는 조정, 둘째, 서울특별시 내 일원의 지명에 관한 조사 및 자료 수집과 분석, 셋째, 기타 지명에 관한 주요 사항으로 구분되어 있다.3. 지명 위원회의 운영 방식
길 이름, 역 이름 등이 결정되기 위해서는 우선 사업 시행 부서에서 명칭 제정안을 작성하여 지명 위원회에 상정한다. 지명 위원회 운영 담당 부서에서는 지명 위원회를 개최하며 각 위원들은 해당 부서에서 의뢰한 안건에 대해 심의한 후 전체 의견을 모아 이름을 결정한다. 현재 서울시의 경우 지명 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업무는 내무국 행정과에서 담당하며 가로명·교량 및 터널 등 일반 차량 소통과 관련된 일체의 시설 명칭은 도로국 도로 계획과에서, 지하철 역명은 2개 기관이 각기 구분하여 담당하고 있는데 현재 운영 중인 역은 지하철 공사가, 건설 중인 역의 명칭은 지하철 건설 본부 내 설계 감리실에서 맡고 있다. 또한 공원 명칭은 도시계획국의 공원과에서 담당하고 있다. 도로 개설, 교량 건설, 지하철 건설, 공원 조성 등을 맡은 각 부서에서는 주민의 의견을 듣거나 관련 문헌을 참조하여 제정안을 작성하며 지방 자치제가 실시된 이후에는 주민의 대표 기관인 구의회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한다.4. 지명의 제정 원칙 및 정착 과정
4.1 지명의 제정 원칙
현 지방 자치 단체 조례상 규정되어 있는 지명 위원회 운영 조례에는 지명의 제정 원칙이 명시되어 있는 사항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역사성, 보편성, 편의성에 바탕을 두고 시대의 변화와 상황에 따라 다음과 같은 원칙에 의해 제정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① |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적 또는 사건, 문화재 명칭 사용. |
② | 민족의 추앙을 받는 인물의 명칭 사용. |
③ | 한자어 또는 외래어는 가급적 피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우리말, 토박이말 사용. |
④ | 지역적 특성을 살리고 주민에게 친근감이 가는 말 사용. |
4.2 지명의 정착 과정
가로명 등 지명이 제정되면 관보 또는 시보에 의해 고시되는데 지하철 역명의 경우 영업을 개시함과 동시에 고시된다. 이러한 공식적 절차 외에 일반인들이 새로운 지명이나 길 이름, 역 이름을 인지하게 되는 것은 통상 언론 매체에 의해서인데 최근에는 신문, 방송뿐 아니라 관공서에서 발간하는 각종 간행물에 의해서도 활발히 소개되고 있다. 시 또는 구 발행의 각종 홍보물 및 신문, 반상회보, 구지(區誌) 등이 대표적인 매체이다.5. 서울의 길 이름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길 이름 등은 통상 해당 지역 동명과 역사적 사건 또는 인물, 문화적 유산 등을 감안하여 짓게 마련이다. 그 시대의 특수 상황 또는 시민 정서 등이 반영되는 예도 종종 있게 된다. 길 이름, 역 이름 등은 거의 해마다 제정 또는 개정되지만 그 중 서울의 가로명이 처음 지어진 1946년에서 최근까지의 대표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5.1 1946년에서 1966년까지
◦ 서울의 길 이름이 공식적으로 행해진 것은 1946년이었는데 이때는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직후여서 민족 정서를 고려한 이름이 많이 지어진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즉 해방 당시 일본식으로 명명된 동네 명칭 등을 우리 식으로 다시 환원하면서 시내 대표적인 가로의 이름을 지었는데 이때 지어진 것이 세종로, 종로, 신문로, 을지로, 태평로, 남대문로, 충무로, 퇴계로, 충정로, 의주로, 원효로, 한강로 등 총 12개 가로이다. 이 중 종로, 신문로, 태평로, 남대문로, 의주로, 한강로 등 6개 가로명은 옛 이름을 그대로 딴 것이고 또다른 6개 가로명은 각각 세종 대왕, 을지문덕, 충무공 이순신, 퇴계 이황, 충정공 민영환, 원효 대사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이들은 우리 역사상 중요한 인물일 뿐 아니라 충무공, 민영환 등은 직접 일본과 관련이 있으며 퇴계 이황도 사상적으로 일본에 영향을 끼친 인물로써 민족적 정서를 고려한 결과라 할 수 있다.첫째, | 행정 구역 명칭과 분리 제정함. |
둘째, | 그 대상을 관리청 도로 이상, 즉 10m 이상 도로로 함. |
셋째, | 가로의 시발과 종점도 현 행정 구역에 관계없이 제정, 즉 여러 구에 걸친 가로라 할지라도 하나의 이름으로 지음. |
넷째, | 명칭은 역사적, 문화적, 전통적인 것을 존중하여 민족 문화를 상징하거나 민족의 추앙을 받는 인물의 이름 또는 생활화된 지명을 선택함. |
다섯째, | 원칙적으로 ‘로’로 통일하고 ‘로’와 구분할 필요성이 있을 때에는 ‘가’를 붙일 도 있음. |
5.2 1972년에서 1984년까지
◦ 1972년 다시 41개의 길 이름이 새로 지어져 서울은 107개의 가로명을 갖게 되었다. 서울시의 팽창과 개발, 새로운 도로의 개설 등 여건의 변화에 따라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신규 가로명의 제정과 기존 가로명의 개정 또는 노선 조정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72년대는 길 이름에 일련 번호가 부여된 것이 특징이며 그때 당시 시가지가 미처 조성되지 않은 영동 지구의 영동1로, 영동2로 등을 비롯하여 관악1,2로, 강변 1~5로 등 지금은 동1·2로 외에 없어진 일련 번호식의 가로명이 이때 거의 지어졌다.첫째, | 현행 가로명은 시민 편의를 위해 가급적 존치하되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에는 개정함. | ||
둘째, | 가로명 제(개)정에 있어서, | ||
◦ | 도시 및 가로의 특성과 기능 부각. | ||
◦ | 가급적 아름답고 유서 깊은 순수 우리말 사용. | ||
◦ | 익히기 쉽고 부르기 쉬운 명칭 선택. | ||
◦ | 가로명 앞말은, | ||
· | 관행으로 사용하는 명칭이나 중심 지명을 활용하여 시민의 편의 도모. | ||
· | 역사적 인물의 호, 향토 사적명을 활용, 시민의 역사 의식을 함양. | ||
· | 전래된 옛 지명, 이름 있는 지형·지물명을 활용, 가로의 특성 부각. | ||
◦ | 가로명 뒷말은, | ||
· | 간선일 때는 ‘로’, 지선일 때에는 ‘길’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함. 단, 앞말이 순수 우리말이거나 발음이 어색할 경우는 예외. | ||
· | 도로 폭이 50m 이상일 때는 ‘대로’로 명명하되 4대문 안은 ‘대’자를 생략. | ||
셋째, | 가로 구간에 있어서는, | ||
◦ | 가로의 연장, 교통의 흐름, 지리적 위치, 가로 성격 등을 고려. | ||
◦ | 가급적 도심은 소구간화하여 가로의 특성을 살리고 외곽은 장구간화하여 연계성 유지. | ||
넷째, | 기점, 종점에 있어서는, | ||
◦ | 도로 원표(세종로 광장 중앙)를 기준으로 도심 쪽이 기점, 외곽이 종점이 되게 함. | ||
◦ | 한강상 교량이 기점, 종점이 되는 경우에는 교량 남단을 기준으로 함. |
5.3 1985년 이후
건설부의 지명 위원회 구성 요구에 따라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기존의 가로명 제정 위원회의 기능을 통합한 서울특별시 지명 위원회를 발족하고 1985년 10월 10일 처음으로 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때의 위원은 총 11명으로 그 구성원은 가로명 제정 위원회에 속하였던 위원들이 재구성되었으며 대부분 당시의 위원들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6. 지명 결정에 영향을 주는 외적 요인들
지명 제정 또는 개정은 서울시 자체적인 계획 수립하에 행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나 때로는 외부 기관의 요청이나 청원에 의해서 바뀌기도 한다. 그러한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지역 주민을 비롯해 대학, 단체, 문중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6.1 ‘서울’을 세계로, 세계를 ‘서울’로
가로명 제정 배경을 살펴보면 이따금씩 외교 문제 등의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영향을 받아 제정하게 된 대표적인 경우가 강남의 테헤란로, 강변도로 중 대건로, 양천구 목동의 빠리 공원이다.6.2 대학과 지하철역
서울 시내에는 34개의 대학이 있으며 지하철역은 현재 운행 중인 지하철과 건설 중인 지하철을 통틀어 162개가 된다. 이 중 대학 명칭을 쓴 역은 총 19개소이다. 지하철역 명칭 제정에 있어서 대학 명칭 사용은 가급적 자제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사용하는 것이 기본 방침이었으나 지하철 2호선의 서울대 입구, 교대 등이 전례가 되어 지하철역 주변 사립 대학에서 지하철 역명에 자기 학교명을 쓸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였다. 당초 서울대 등의 명칭을 사용할 때에는 행정동, 법정 동명은 이미 인근 역에서 사용하였고 지역 여건상 뚜렷한 특징이 없어 부득이하게 학교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현재 19개 역에 이르게 된 것이다.6.3 애향심과 지역 이기주의
대학 뿐 아니라 지역 주민이 기존 길 이름 또는 역 이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개정을 요구하는 사례 또한 빈번해졌다. 특히, 1991년 지방 의회 발족 이후 구의회 또는 시의회를 통한 청원이 잦아졌는데 이는 지방화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사실을 지명 위원회 차원에서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기 고장에 대한 애착심이라는 긍정적인 면과 지역 이기주의라는 부정적인 면을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7. 맺음말
지명 또는 길 이름 등은 위치를 알려 주고 장소를 표시하는 고유 기능을 가진 것으로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함께 숨쉬는 생명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지도상이나 표지판에서 글자체로 박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들로 하여금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고 문화와 역사를 생각하고 조상들의 생활 방식까지도 생각하고 느끼게 해 주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지명을 살리고 오늘의 아름다운 지명을 보존하며 시민에게 편리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길 이름 등을 바로 짓고, 사라져 가는 옛 지명을 보존하는 한편, 잘못된 지명을 고쳐 나가는 지명 위원회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성을 더한다고 할 수 있다. 지명 위원회가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전문 지식을 갖추고 역사, 문화 의식이 투철한 지명 위원의 선정은 물론, 내 고장의 역사를 지키고 보존하려는 차원 높은 주민 의식과 담당 공무원의 사명감이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참 고 문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