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의 지명]

지명 부여의 과정과 방향

권 순 기 / 서울 시청 행정과


1. 머리말

  지명의 제정, 변경 또는 지명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경우 공무원이 아닌 전문 지식을 가진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이를 위해 현재 전국의 시·도·군구에는 사계의 전문가로 구성된 지명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으며 중앙 부처에는 건설부 산하에 중앙 지명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지명에 관한 실질적인 조사, 심의 및 의결은 각 지방 자치 단체의 지명 위원회에서 하고 중앙 지명 위원회에서는 최종적 의결을 한다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시·도 지명 위원회 중 하나인 서울특별시 지명 위원회를 중심으로 구 구성과 역할, 운명 방법, 지명 또는 길 이름 등의 제정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지명 위원회의 구성과 기능

      2.1 서울특별시 지명 위원회의 연혁과 구성

  지명 위원회는 측량법 제58조 ‘지명 위원회’를 근거로 각 지방 단체별로 조례를 제정, 이에 의하여 구성하였으며, 서울특별시의 경우 서울특별시 지명 위원회 조례 제정은 1981년에 하였으나, 실제 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1985년이다. 지명 위원회가 운영되기 전 서울시는 이미 1966년부터 학자, 법조인 및 언론인, 경제인 등 총 19명으로 이루어진 가로명 제정 위원회를 구성하여 서울 시내의 가로명, 교량명 등을 제정 또는 개정하다가 1985년 가로명 제정 위원회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통합한 지명 위원회를 구성는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 서울특별시 지명 위원회는 총 10명인데 그 구성원은 위원장과 부위원장 그리고 위원이다. 위원장은 부시장, 부위원장은 내무국장으로서 당연직이며 각 위원은 서울 시장이 위촉한 인사들로 관련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가진 외부 인사이다. 특히, 이 위촉된 전문 위원들은 향토 사학자, 지리학 교수, 민속학 교수, 도시행정학 교수, 역사학자, 언론사 논설위원, 소설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사계의 권위자들로서 서울시 시정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직·간접으로 시정 발전에 참여해 온 분들이 대부분이다.


      2.2 지명 위원회의 기능

  서울특별시 지명 위원회 조례상 규정된 지명 위원회의 기능은 첫째, 지명의 제정, 변경 또는 조정, 둘째, 서울특별시 내 일원의 지명에 관한 조사 및 자료 수집과 분석, 셋째, 기타 지명에 관한 주요 사항으로 구분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지명은 법정동, 행정동, 자연 지명(자연 부락명)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법정 동명이란 각 지방 자치 단체 조례에 규정되어 있는 동명이며 이러한 법정동은 행정 능률과 주민 편의를 위해 당해 지방 자치 단체의 조례가 정하는 바에 따라 하나의 동을 2개 이상의 동으로 운영하거나 또는 2개 이상의 동을 하나의 동으로 운영할 수 있는데 이렇게 행정 운영상 구분지어 둔 동을 행정동이라 한다. 예를 들면, 서울 종로구의 종로 1·2가동은 청진동, 서린동, 수송동 등 16개의 법정동을 묶어 하나의 행정동을 획정한 데 비해 서울 노원구의 상계동은 하나의 법정동을 10개의 행정동으로 구분한 것이다. 그 밖에 일반인들 사이에 불려지는 소지명인 자연 부락 명칭이나 산 이름, 강 이름 등 자연 지명이 있다.
  법정 동명 및 행정 동명의 제·개정은 지방 자치법에 의거 내무부의 승인을 얻어 지방 자치 단체 조례에 의하게 되어 있으며 그 밖의 지명은 지명 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개정 의결한 후 중앙 지명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고시하면 비로소 정식 지명으로 인정되게 된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서 행정 동명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명의 변동이란 거의 없는 실정이며 서울시 지명 위원회의 경우, 그 기능은 문자 그대로의 지명에 관한 심의보다는 가로명, 지하철 역명, 공원명, 교량명, 터널명 등 시설물 명칭에 관한 심의가 주가 되고 있다. 한편, 분구로 인해 새로운 지방 자치 단체가 형성되는 경우에는 그 지방 자치 단체의 명칭을 결정하기도 한다. 물론 이때에는 내무부의 사후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 예로 1988년 신설된 중랑구, 노원구, 양천구, 서초구, 송파구가 바로 지명 위원회의 심의를 받아 결정된 이름이다.


3. 지명 위원회의 운영 방식

  길 이름, 역 이름 등이 결정되기 위해서는 우선 사업 시행 부서에서 명칭 제정안을 작성하여 지명 위원회에 상정한다. 지명 위원회 운영 담당 부서에서는 지명 위원회를 개최하며 각 위원들은 해당 부서에서 의뢰한 안건에 대해 심의한 후 전체 의견을 모아 이름을 결정한다. 현재 서울시의 경우 지명 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업무는 내무국 행정과에서 담당하며 가로명·교량 및 터널 등 일반 차량 소통과 관련된 일체의 시설 명칭은 도로국 도로 계획과에서, 지하철 역명은 2개 기관이 각기 구분하여 담당하고 있는데 현재 운영 중인 역은 지하철 공사가, 건설 중인 역의 명칭은 지하철 건설 본부 내 설계 감리실에서 맡고 있다. 또한 공원 명칭은 도시계획국의 공원과에서 담당하고 있다. 도로 개설, 교량 건설, 지하철 건설, 공원 조성 등을 맡은 각 부서에서는 주민의 의견을 듣거나 관련 문헌을 참조하여 제정안을 작성하며 지방 자치제가 실시된 이후에는 주민의 대표 기관인 구의회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한다.
  소정 양식에 따라 작성된 지명 제정 또는 개정안에 대한 위원들의 심의는 통상 미리 배포한 자료를 기준으로 이루어지며 대부분 해당 사업 부서에서 제안한 안 중에서 선택하나 가끔씩 위원들이 직접 새로운 이름을 제안하여 그것이 결정되는 수도 있다. 이런 경우야말로 위원들의 전문성이 돋보이는 때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1993년 8월 말 개통된 지하철 3호선 연장선 중 강남구 대치동에 ‘학여울’이란 멋진 이름의 지하철역이 있는데 이 역 이름은 1991년 명칭 제정 시 상정된 안이 ‘탄천’이었다. 탄천은 서울 강남구의 동쪽에 위치하여 송파구와 경계를 이루는 하천으로서 총연장 35㎞의 한강 지류이다. 그런데 대치동의 지하철역이 위치한 지점은 양재천과 합류하는 지점으로서 오히려 양재천 쪽에 가까운 위치이다. 그래서 역 이름 심의 과정에서 위원 중 한 분이 탄선이란 이름 대신 ‘학여울’을 제안하였다. 예전의 이 주변 지역은 하천변으로서 수풀이 우거지고 주민이 거주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지역으로서 지리학적으로 보아 한강으로 흘러드는 탄천수가 이 지점에 이르러 완만히 흐르고 모래 등 퇴적으로 인해 물이 얕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있었을 것이며 당연히 학 등 각종 조류가 서식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대동여지도상 이 부근이 ‘鶴灘’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鶴灘’의 여울 鶴字를 우리말로 바꾸어 학여울이란 이름이 지어지게 된 것이다.


4. 지명의 제정 원칙 및 정착 과정

      4.1 지명의 제정 원칙

  현 지방 자치 단체 조례상 규정되어 있는 지명 위원회 운영 조례에는 지명의 제정 원칙이 명시되어 있는 사항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역사성, 보편성, 편의성에 바탕을 두고 시대의 변화와 상황에 따라 다음과 같은 원칙에 의해 제정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적 또는 사건, 문화재 명칭 사용.
민족의 추앙을 받는 인물의 명칭 사용.
한자어 또는 외래어는 가급적 피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우리말, 토박이말 사용.
지역적 특성을 살리고 주민에게 친근감이 가는 말 사용.

      4.2 지명의 정착 과정

  가로명 등 지명이 제정되면 관보 또는 시보에 의해 고시되는데 지하철 역명의 경우 영업을 개시함과 동시에 고시된다. 이러한 공식적 절차 외에 일반인들이 새로운 지명이나 길 이름, 역 이름을 인지하게 되는 것은 통상 언론 매체에 의해서인데 최근에는 신문, 방송뿐 아니라 관공서에서 발간하는 각종 간행물에 의해서도 활발히 소개되고 있다. 시 또는 구 발행의 각종 홍보물 및 신문, 반상회보, 구지(區誌) 등이 대표적인 매체이다.
  가로명, 지하철 역명 또는 교량명은 시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로 일단 새로운 명칭이 정해지면 주민들 생활에 금방 뿌리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기존 명칭을 개정한 경우에는 고쳐진 이름이 정착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듯하다. 그 예로 1992년 5월 종로의 파고다 공원을 우리말인 탑골 공원으로 바꾸었으나 최근 어느 신문에서 파고다 공원이라 쓴 예가 있으니 좀 더 많은 관심과 홍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1994년 11월 29일 서울 정도 600년 앞두고 각계 각층에서 서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서울 지방의 지명, 가로명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면서 이를 소개한 책자들이 풍성히 쏟아져 나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5. 서울의 길 이름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길 이름 등은 통상 해당 지역 동명과 역사적 사건 또는 인물, 문화적 유산 등을 감안하여 짓게 마련이다. 그 시대의 특수 상황 또는 시민 정서 등이 반영되는 예도 종종 있게 된다. 길 이름, 역 이름 등은 거의 해마다 제정 또는 개정되지만 그 중 서울의 가로명이 처음 지어진 1946년에서 최근까지의 대표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5.1 1946년에서 1966년까지

  ◦ 서울의 길 이름이 공식적으로 행해진 것은 1946년이었는데 이때는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직후여서 민족 정서를 고려한 이름이 많이 지어진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즉 해방 당시 일본식으로 명명된 동네 명칭 등을 우리 식으로 다시 환원하면서 시내 대표적인 가로의 이름을 지었는데 이때 지어진 것이 세종로, 종로, 신문로, 을지로, 태평로, 남대문로, 충무로, 퇴계로, 충정로, 의주로, 원효로, 한강로 등 총 12개 가로이다. 이 중 종로, 신문로, 태평로, 남대문로, 의주로, 한강로 등 6개 가로명은 옛 이름을 그대로 딴 것이고 또다른 6개 가로명은 각각 세종 대왕, 을지문덕, 충무공 이순신, 퇴계 이황, 충정공 민영환, 원효 대사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이들은 우리 역사상 중요한 인물일 뿐 아니라 충무공, 민영환 등은 직접 일본과 관련이 있으며 퇴계 이황도 사상적으로 일본에 영향을 끼친 인물로써 민족적 정서를 고려한 결과라 할 수 있다.

  ◦ 이후 1966년 11월 한양 정도 572주년 및 서울특별시 승격 20주년을 맞아 서울 시내 37개소의 가로명을 새로 짓게 되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가로명과 행정 구역 명칭이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이전 1946년의 가로명은 그 자체가 행정 동명이 되었지만 그것이 법적 근거를 둔 원칙은 아니었으므로 행정 구역에 구애를 받지 않고 길 이름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1966년 19명으로 구성된 가로명 제정 위원회에서 가로명 시안을 심의하였는데 1차 회의 개최 시 길 이름을 제정함에 있어서의 기본 방침을 의결하고 1개월 후 2차 심의를 통해 37개소의 길 이름을 의결하였다. 당시 1차 회의 때 기본 방침으로 정한 다섯 항목의 내용을 보면,
첫째, 행정 구역 명칭과 분리 제정함.
둘째, 그 대상을 관리청 도로 이상, 즉 10m 이상 도로로 함.
셋째, 가로의 시발과 종점도 현 행정 구역에 관계없이 제정, 즉 여러 구에 걸친 가로라 할지라도 하나의 이름으로 지음.
넷째, 명칭은 역사적, 문화적, 전통적인 것을 존중하여 민족 문화를 상징하거나 민족의 추앙을 받는 인물의 이름 또는 생활화된 지명을 선택함.
다섯째, 원칙적으로 ‘로’로 통일하고 ‘로’와 구분할 필요성이 있을 때에는 ‘가’를 붙일 도 있음.
  이때 정해진 대표적 길 이름이 마포로, 공항로, 대학로, 청계로, 삼일로, 미아로, 다산로, 효자로 등이다. 당시 새로이 명명된 37개의 길 이름을 분류하면 지명 관련이 가장 많은 21개, 인명 8개, 기타 역사 및 문화재 관련 등이 8개이다. 당시 새로 지어진 이름으로서 지금은 사라진 이름인 번영동로, 번영서로가 있다. 현재는 세운 상가, 대림 상가, 삼풍 상가로 연결되어 일방통행의 1차선 도로이지만 개발되기 전 서울의 상가 번영을 상징할 만한 대규모 상가라는 뜻으로 지어졌다 한다.


      5.2 1972년에서 1984년까지

  ◦ 1972년 다시 41개의 길 이름이 새로 지어져 서울은 107개의 가로명을 갖게 되었다. 서울시의 팽창과 개발, 새로운 도로의 개설 등 여건의 변화에 따라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신규 가로명의 제정과 기존 가로명의 개정 또는 노선 조정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72년대는 길 이름에 일련 번호가 부여된 것이 특징이며 그때 당시 시가지가 미처 조성되지 않은 영동 지구의 영동1로, 영동2로 등을 비롯하여 관악1,2로, 강변 1~5로 등 지금은 동1·2로 외에 없어진 일련 번호식의 가로명이 이때 거의 지어졌다.

  ◦ 1981년에 이르러 서울 시내에 가로명을 가진 도로는 모두 160개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때까지 몇몇 신설되는 가로에 대한 명칭 부여, 구간 조정 등이 간간히 있었으며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앞둔 서울시로서는 국제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서울을 찾는 외국인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1984년 대대적인 가로명의 정비를 하게 되었다. 즉, 그 때까지 서울의 도로로서 가로명이 없는 도로, 가로명이 있으나 실제 불려지는 이름과 다른것, 1로, 2로 등 특징 없이 일련 번호 부여식의 명칭, 부적합한 명칭 등 실제 이용 시민이나 외국인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가로명이 정비 대상이 되었다. 실생활에 있어서도 기점, 종점이 불분명하여 가로 표지판, 각종 지도 등에 가로명 표기가 없어 불편이 많기도 하던 때였다.

  그리하여 1983년 1월부터 1984년 10월 18일까지 1년 10개월 동안 기존 160개 가로명을 전면 재심의하는 한편 새로운 가로명을 제정하고 한강상 교량 명칭도 일련 번호식으로 부여된 것을 각 교량의 특성을 살려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 이때의 정비 원칙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현행 가로명은 시민 편의를 위해 가급적 존치하되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에는 개정함.
둘째, 가로명 제(개)정에 있어서,
도시 및 가로의 특성과 기능 부각.
가급적 아름답고 유서 깊은 순수 우리말 사용.
익히기 쉽고 부르기 쉬운 명칭 선택.
가로명 앞말은,
· 관행으로 사용하는 명칭이나 중심 지명을 활용하여 시민의 편의 도모.
· 역사적 인물의 호, 향토 사적명을 활용, 시민의 역사 의식을 함양.
· 전래된 옛 지명, 이름 있는 지형·지물명을 활용, 가로의 특성 부각.
가로명 뒷말은,
· 간선일 때는 ‘로’, 지선일 때에는 ‘길’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함. 단, 앞말이 순수 우리말이거나 발음이 어색할 경우는 예외.
· 도로 폭이 50m 이상일 때는 ‘대로’로 명명하되 4대문 안은 ‘대’자를 생략.
셋째, 가로 구간에 있어서는,
가로의 연장, 교통의 흐름, 지리적 위치, 가로 성격 등을 고려.
가급적 도심은 소구간화하여 가로의 특성을 살리고 외곽은 장구간화하여 연계성 유지.
넷째, 기점, 종점에 있어서는,
도로 원표(세종로 광장 중앙)를 기준으로 도심 쪽이 기점, 외곽이 종점이 되게 함.
한강상 교량이 기점, 종점이 되는 경우에는 교량 남단을 기준으로 함.
  위의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1984년 10월 각종 매체를 통해 244개 노선의 가로명 및 16개의 한강상 교량명 시안(試案)을 발표하여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였으며 각종 전문 기관에도 시안을 보내 그 의견을 청취하였다. 1개월 동안 접수된 여러 의견을 종합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의 회의를 거쳐 서울시는 1984년 11월 4일 총 244개의 가로명과 16개의 한강 상 교량 명칭을 고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명칭이 정비된 한강의 다리는 총 16개소로 대부분 이전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동작 대교 및 서강 대교는 신규 제정되었다. 이 중 변경된 것은 건설 순서에 따라 일련 번호식의 명칭이 붙여져 있던 제1 한강교, 제2 한강교, 제3 한강교를 각각 한강 대교, 양화 대교, 한남 대교로 바꾸고 서울 대교를 마포 대교로, 영동교를 영동 대교로, 금호 대교를 동호 대교로 바꾸었다.

  ◦ 위에서 본 바와 같이 1966년에서 1984년에 이르기까지 서울시는 가로명을 제정 또는 개정함에 있어 ‘가로명 제정 위원회’의 심의를 받아 왔다. 가로명 제정 위원회는 1985년 지명 위원회에 통합되기 전까지 서울 시내 각 가로가 제 이름을 갖고 시민에 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시민의 정서와 역사에 부합하는 244개의 가로명 제정과 16개의 한강 상 교량명을 짓는 업적을 남기에 되었다.


      5.3 1985년 이후

  건설부의 지명 위원회 구성 요구에 따라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기존의 가로명 제정 위원회의 기능을 통합한 서울특별시 지명 위원회를 발족하고 1985년 10월 10일 처음으로 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때의 위원은 총 11명으로 그 구성원은 가로명 제정 위원회에 속하였던 위원들이 재구성되었으며 대부분 당시의 위원들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지명 위원회는 1988년 신설된 5개 구청 명칭 외에 신설 가로명, 지하철 5~8호선 역명, 서울 시내 근린공원 명칭 등을 심의하였다.

  ◦ 이 중 1988년 새로 만들어진 5개구 즉, 중랑구, 노원구, 양천구, 서초구, 송파구의 명칭 제정 경위를 살펴보면, 1987년 서울시는 시내 17개구 중 동대문구, 도봉구, 강서구, 강남구, 강동구를 각기 둘로 나누어 구청을 신설하게 되어 새로 만들어지는 구청의 명칭을 제정하기 위해 그해 12월 21일 지명 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시안으로 상정된 각 구의 명칭을 보면 중랑구의 경우 ①면목구 ②용마구, 양천구는 ①신정구 ②신목구, 노원구는 ①상계구 ②노원구, 강남구는 ①반포구 ②신동구, 송파구는 ①잠실구 ②송파구가 상정되었다.
  각 위원들이 심사숙고한 결과, 중랑구는 구 경계를 이루는 중랑천의 명칭을 인용하여 결정하고 노원구는 행정 구역 명칭인 노원면을 인용하여 노원구라 하였다. 양천구 역시 옛 행정 구역 명칭인 양천현을 따서 지었으며 서초구는 지역의 중심 지역이며 어감이 좋은 서초를 따서 서초구로 결정하였다. 한편 송파구는 지역의 중심지이며 송파 나루, 송파 산대놀이 등의 연상으로 전통문화 의식을 고취하는 목적으로 지어졌다.   그런데 구 명칭 제정에 있어 주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기간이 사실상 부족하였던 까닭에 중랑구의 명칭에 대해서는 그 후 아쉬움을 표시하는 의견들이 가끔 신문지상 또는 책자 등에 표시되기도 했다.   그 까닭은 중랑천(中浪川)이 원래 중량천(中梁川, 中良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10년 이후의 지도에서부터 중랑천으로 표기되기 시작하는데 일설에 따르면 이는 중량의 일본식 발음이 어려워 보다 발음이 쉬운 중랑천으로 쓰다가 1987년 동대문구를 나누어 새로운 구를 만들면서 그 명칭 또한 ‘중랑구’로 된 것이다. 지명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며 순 우리말의 지명이 지도상 표기를 위해 인위적으로 한자 명칭으로 표기된 뒤 오히려 이전의 순 우리말 이름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일본인 편의 위주로 바꾸어진 지명이 40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문헌상 굳어지고 그 상태로 현재까지 사용된다는 사실은 아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식 명칭을 지명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우리말로 고쳐 쓴 예도 있는데 1987년 2월 5일 서울시는 지명 위원회를 개최하여 왜식 지명인 제1중지도, 제2중지도, 윤중제를 각각 노들섬, 선유도, 여의방죽 등 고유의 멋이 풍기는 이름으로 개정한 예가 그것이다.

  ◦ 지명 위원회 발족 이후 가장 두드러진 것은 현재 건설 중인 지하철 5호선~8호선 역명의 제정이라 할 수 있다. 5호선, 7호선, 8호선의 명칭은 1991년 7월 30일 심의, 결정하였으며 나머지 6호선의 명칭은 1992년 11월 5일 제정하였다. 서울의 제2기 지하철인 5호선에서 8호선까지의 지하철 정거장 수는 총 147개로서 옛 지명을 비롯해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가는 고개 이름, 산 이름, 문화재 명칭을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학여울, 당고개, 까치산, 밤섬, 애오개, 광나루, 굽은다리, 마들, 먹골, 독바위골, 서강, 녹사평, 한강진, 버티고개, 돌곶이, 살피재역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 또한 1993년 7월 23일은 1984년 이후 가장 많은 수의 신설 가로명을 제정하였는데 이때 가로명 36건을 비롯해 총 49개의 새로운 이름이 정해졌다. 이들 가로는 당시 건설 중인 도로로서 이때 역시 옛 지명 또는 순 우리말의 길 이름이 많이 지어졌으며 그 대표적인 이름이 살곶이길, 고랑길, 노해길, 해등길, 도당길, 마들길, 잔다리길, 모새미길, 호압산길, 방아다리길이다.

  ◦ 1993년 서울시는 그동안 개발 당시 행정 편의 위주로 명명된 근린공원 명칭을 정비하고자 현지 조사, 주민 의견 수렴 또는 공모 등을 통해 근린공원의 새로운 이름을 선정하였다. 그 대상을 서울 시내 총 218개소의 근린공원 중 불합리하거나 중복된 명칭, 일련 번호식의 명칭이 부여된 근린공원으로 하여 구청별 개정 대상을 파악한 후 각 구에서 선정한 명칭을 중심으로 1993년 12월 23일 지명 위원회 심의를 하게 되었다. 개정 대상으로 선정된 공원 명칭은 총 96개소였으며 대부분이 개발 당시의 명칭, 즉 가락 530블럭 근린공원, 중계 지구 제1 근린 공원의 형태로 이름지어진 것이었으며 개포 제1 근린공원~제17 근린공원 등 일련 번호 나열식의 명칭도 포함되었다. 또한 ‘근린공원’이란 명칭은 도시 공원법상 공원의 종류를 구분하는 용어로서 일반적으로 사용할 때는 ‘근린’자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지명 위원회에서는 지역별 특징을 살리는 한편 아름답고 고운 우리말을 사용한 공원 이름을 많이 선정하였는데 대표적인 공원 이름은 아래와 같다.
  달맞이 공원(옥수동), 느티울 공원(상계동), 갈말 공원(상계동), 가재울 공원(중계동), 한글비 공원(하계동), 삿갓봉 공원(중계동), 샛터 공원(성산동), 신투리 공원(신정동), 메낙골 공원(신길동), 검은돌 공원(흑석동) 등


6. 지명 결정에 영향을 주는 외적 요인들

  지명 제정 또는 개정은 서울시 자체적인 계획 수립하에 행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나 때로는 외부 기관의 요청이나 청원에 의해서 바뀌기도 한다. 그러한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지역 주민을 비롯해 대학, 단체, 문중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6.1 ‘서울’을 세계로, 세계를 ‘서울’로

  가로명 제정 배경을 살펴보면 이따금씩 외교 문제 등의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영향을 받아 제정하게 된 대표적인 경우가 강남의 테헤란로, 강변도로 중 대건로, 양천구 목동의 빠리 공원이다.
  첫째, 테헤란로의 제정 경위를 보면, 중동 진출이 한창이던 때인 1977년 6월 26일~30일 사이 이란의 테헤란 시장이 서울을 방문하였다. 이때의 행사 일환으로 서울 시내에 테헤란로를 지정하고 그 명명식을 갖는 행사가 계획되어 있었다. 당초 서울시에서는 여의도에 테헤란로를 지정하려다가 계획을 바꾸어 강남의 삼릉로를 개명하여 테헤란로로 지정하였다. 이 도로는 서초동에서 시작하여 삼릉 공원을 거쳐 삼성동까지 연결되는 폭 50m, 연장 3,200m의 큰 도로이다. 당시 양 도시의 가로명 교환 합의에 따라 이란의 테헤란 시내에는 ‘서울로’가 지정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 대건로의 제정 경위를 보면 1984년은 우리나라 천주교 창설 2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로서 103위의 성인(聖人) 선포를 위해 로마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기로 되었다. 이에 천주교측은 당시 강변4로를 ‘대건로’로 지정해 줄 것을 청원하였는데 강변4로는 한강 북단 강변로의 다섯 구간 중 네 번째 구간으로서 한강대교 북단에서 마포 대교 북단, 양화 대교 북단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은 한국 최초의 신부이며 순교 성인인 김대건 신부가 1845년 4월 마카오에서 귀국하였다가 페레올 주교를 영입코자 재차 상해로 출국할 때 제물포로 향하던 길이었고, 1846년 서해 탐험 때 마포에서 백령도로 출항하기 위해 일행과 함께 통과했던 길로서 이 길 옆의 절두산(切頭山)은 천주교 신자의 순교지이며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러한 사유로 폭 20m, 총연장 6㎞의 강변4로는 대건로로 개칭되게 된 것이다.
  세 번째, 1986년 새로 조성된 양천구 목동의 근린공원 중에 빠리 공원이 있다. 1986년은 한·불 수교 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파리시 의회에서 ‘서울의 광장’을 선정, 명명하자 이에 상응한 조치로서 서울시에서 목동에 새로 조성된 공원을 빠리 공원으로 지정, 명명하게 된 것이다. 1986년 제정 당시에는 파리 공원이라 하였으나 1993년 12월 근린공원 명칭 개정 시 현지 발음에 가까운 ‘빠리 공원’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이다.


      6.2 대학과 지하철역

  서울 시내에는 34개의 대학이 있으며 지하철역은 현재 운행 중인 지하철과 건설 중인 지하철을 통틀어 162개가 된다. 이 중 대학 명칭을 쓴 역은 총 19개소이다. 지하철역 명칭 제정에 있어서 대학 명칭 사용은 가급적 자제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사용하는 것이 기본 방침이었으나 지하철 2호선의 서울대 입구, 교대 등이 전례가 되어 지하철역 주변 사립 대학에서 지하철 역명에 자기 학교명을 쓸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였다. 당초 서울대 등의 명칭을 사용할 때에는 행정동, 법정 동명은 이미 인근 역에서 사용하였고 지역 여건상 뚜렷한 특징이 없어 부득이하게 학교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현재 19개 역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학교 명칭 사용에 있어서 두 개 대학이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경우 양측이 서로 자기 학교 명칭 사용을 요구하여 그 결과 병기(倂記)하기로 했던 지하철역 이름을 환원하는 소동을 빚은 적도 있다. 지하철 4호선 길음역의 경우 2㎞ 정도 떨어진 K대에서 ‘ㄱ대 입구’라고 병기해 줄 것을 수차례 청원하여 지명 위원회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길음역(ㄱ대 입구)’으로 개정하기로 결정하고 ㄱ대 측에 통보하는 한편 언론에 보도하였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ㄱ대보다 300m가량 가까운 ㅅ대측에서 ㄱ대보다는 ㅅ대가 가깝다고 주장하며 ㅅ대 명칭을 사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전문대, 고등학교까지 서로 자기 학교가 가깝다고 하여 결국 원래 명칭인 ‘길음역’으로 다시 환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6.3 애향심과 지역 이기주의

  대학 뿐 아니라 지역 주민이 기존 길 이름 또는 역 이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개정을 요구하는 사례 또한 빈번해졌다. 특히, 1991년 지방 의회 발족 이후 구의회 또는 시의회를 통한 청원이 잦아졌는데 이는 지방화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사실을 지명 위원회 차원에서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기 고장에 대한 애착심이라는 긍정적인 면과 지역 이기주의라는 부정적인 면을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대체로 개정을 요구하는 경우는 구 경계 또는 동 경계 지역이다. 통상 행정 구역 경계가 대로(大路)를 기준으로 획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지하철 노선 역시 이 대로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인접한 2개 지역 주민들이 서로 자기 구 또는 자기 동의 명칭 사용을 요구하고 나서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특정 지역 주민의 요구를 들어주면 그 상대 지역 주민이 불만스러워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서울의 각 지역 구석구석에 대해 소상한 지식을 갖고 있고 객관적인 입장에 선 지명 위원들이 심사숙고하여 각 지역 명칭을 골고루 사용하는 한편, 민원을 제기하는 주민들에게는 개정 취지를 설명하여 이해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문화재 명칭을 사용한 지하철역 주변 주민들이 동네 명칭을 사용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런 경우는 우리 문화재를 통해 역사·문화 의식을 함양하고자 하는 지명 위원들의 뜻과 지역 주민들의 지역 사랑 내지는 문화 의식 결여가 빚어 내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내 동네 이름도 중요하지만 서울시 전체의 안목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생각하고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기는 지역 주민의 의식이 필요하다 하겠다.


7. 맺음말

  지명 또는 길 이름 등은 위치를 알려 주고 장소를 표시하는 고유 기능을 가진 것으로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함께 숨쉬는 생명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지도상이나 표지판에서 글자체로 박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들로 하여금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고 문화와 역사를 생각하고 조상들의 생활 방식까지도 생각하고 느끼게 해 주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지명을 살리고 오늘의 아름다운 지명을 보존하며 시민에게 편리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길 이름 등을 바로 짓고, 사라져 가는 옛 지명을 보존하는 한편, 잘못된 지명을 고쳐 나가는 지명 위원회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성을 더한다고 할 수 있다. 지명 위원회가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전문 지식을 갖추고 역사, 문화 의식이 투철한 지명 위원의 선정은 물론, 내 고장의 역사를 지키고 보존하려는 차원 높은 주민 의식과 담당 공무원의 사명감이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참 고 문 헌

김기빈(1993), 600년 서울 땅 이름 이야기, 살림터.
김영상(1966), 서울특별시 가로명 제정 전말, 향토 서울 제29호.
서울특별시 (1986년), 서울의 가로명 연혁.
한글 학회(1966), 한국 지명 총람1(서울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