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의 지명]

지명의 전래와 그 유형성

이돈주 / 전남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Ⅰ. 서설

  1.1 인간은 아득한 옛날부터 어떤 형태로든 집단을 이루어 공동 생활을 영위한 과정에서 펼연적으로 서로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오히려 그 언어에 의해서 인간의 집단 생활은 굳은 결속이 가능하였고 마침내 그러한 집단들이 하나의 민족 공동체로 발전한 나머지 긴 역사를 통하여 저마다 특유한 문화를 형성하고 후세에 그 유산을 물려주었을 것은 생각하기 어렵지 않다.
  인간은 거의 본능적으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대하여 무언가 명칭을 부여하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긴요한 것은 사람마다의 인명과 호칭어이고 다음으로는 생활 공간의 배경이 되는 땅이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지명이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물론하고 오랜 역사를 통하여 자기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온 귀중한 언어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지명이란 각 시대와 각 민족의 정신문화의 특성을 표현한 것이므로 그들의 문화생활과 각 문화 지역에 속하는 발전상을 반영하여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 나라 한 지방의 전래 지명은 사람이 살아온 과정에서 생성된 온갖 전설과 역사, 문화, 민속 등의 정보가 깔려 있어서 그 지방의 특수한 자연환경과 생활사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 문화유산이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언어의 본질이 자의적인 음성 체계인 것만은 사실이지마는 특히 고유 명사로서의 지명은 일반 언어와는 달리 애초의 명명 과정에서 배의성(motivation)이 강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이때문에 한 고장의 전래 지명에는 그 고장 사람들만이 경험한 애환과 특유의 정서가 담겨 있으므로 향토성이 매우 짙어서 구심적인 특징을 가진다.
  그러나 일반언어가 신생·성장·사멸을 되풀이하듯이 지명도 오랜 역사를 통해 전승되어 오는 동안 그 이름도 변하고 없어지고 또 새로운 이름이 지어지곤 한다.
  지명은 방언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공통어에서는 찾기 어려운 옛말이 어느 지방의 방언 속에 화석화하여 매장되어 있는 경우를 우리는 허다히 경험한다. 지명어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양자는 우리말의 보고를 찾고 또 변천 역사를 추적하는 데에 자못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여 주는 점에서 우리말 연구자들에게는 더욱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지명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지명학(toponomy)이란 연구자의 관심과 시각에 따라 기타의 학술 분야에도 뺄 수 없는 보조 학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전래 지명을 전반적으로 연구 검토한다면 문헌 기록이 영성한 사항에 대해서도 의외의 수확을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호칭되고 있는 전래 지명들을 자세히 보면 그 지역 주위의 자연 환경 곧 산천·초목·암석·고개 등의 명칭에서 온 것,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샘·못·다리·성(城)·학교(향교)·서당·시장·창고·주막·정자·제조소·상점 등과 관련된 것, 신앙의 흔적인 신당·장승·입석·지석·불탑이며, 서원·재실·비석·가로·유적 등에 따른 것과 그 밖에 지역의 위치·형태·풍수지리·직업·취락 발생의 신구, 또는 외래 종교(불교·유교·도교)의 영향에서 유래한 것 등 다양하기 짝이 없다.
  이런 수많은 단편적인 지명들을 통하여 우리는 선대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고, 자연·인문 지리 환경을 돌이켜 볼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외래 문화의 영향, 전란의 자취, 문화 전반의 발달 정도, 그 지방의 특산물 등 향토사의 대략을 재구성해 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1)
  가령 우리나라에는 현재도 ‘불당골[불땅골]·불당동·불당재·불당치’등과 같은 전래 지명이 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또 ‘불대산’이라는 산 이름도 있다. 이 중에 지금은 그 자취가 인멸된 곳일지라도 옛적에는 그곳에 부처님을 모신 불당(佛堂)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명명된 지명이었을 것이다. 또 ‘사창(私娼)·창고지·창곡·창골·창동’등과 같은 지명은 조선 시대에 창고가 있었던 곳임을 추정하게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여산조에는 군입산(軍入山)이라는 산 이름이 나오는데 그 연유는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징벌할 때에 여기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지명의 유연성은 다 열거할 필요조차 없다.
  이러한 예로 미루어 보아서도 지명학은 국어학뿐 아니라 지리·민속·역사·고고·사회·정치·경제학은 물론 설화·구비 문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관심을 끌기에 족한 보조 과학이 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

  1.2 외국에서는 일찍부터 지명에 관심을 가졌다. 한 예로 영국의 경우 지명을 탐색하기 시작한 것은 L. Taylor, Names and Places(1864)부터였고, 1923년에는 Brad-ley, Skeat 등이 영국 학술원의 후원을 얻어 영국 지명 학회(English Place-name Society)를 창설하였다. 그 뒤 수많은 학자, 교사, 학생 또는 도서관 근무자들까지 이 학회의 사업에 적극 협조한 결과, 해당 지역의 지리·역사·고고학 혹은 방언의 연구에 뜻하지 않은 공헌을 남겼다고 한다(S. Potter, 1975:156 참조).
  그러나 현대에 들어 오면서 우리나라의 지명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논문은 일본 학자 시라토리(百鳥庫吉, 1895)가 아닐까 여겨진다.
  그 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명 연구의 필요성이 강조되기는 이희승(1932)에서였다. 그는 여기에서 우리말 연구를 위한 자료 중에 “고어를 충실히 또 풍부히 제공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곧 ‘지명’이다. 그 지명은 그 토지와의 고착성이 가장 강하여 용이히 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온 ‘達·買·呑’ 등의 옛말을 현재의 지명을 토대로 고찰한 바 있다. 이것이 계기가 되었음인지 1937~1946년까지 ‘조선말 지명’이라는 제호의 간단한 조사 보고가 ‘한글’지에 32회에 걸쳐 실려 나옴으로써 각 지방의 우리말 지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였으나 자료의 수집에 그쳤을 뿐 체계적 연구 단계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광복 이후 지금까지의 지명 조사 연구는 꽤 다양한 편이어서 간단히 규정하기는 어려우나 연구 대상이 되는 자료의 선택 면에서 (1) 문헌 위주 (2) 현지 조사 위주 (3) 지명학의 일반론 등 크게 세 갈래로 대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2) 어쨌든 1960년대 이후로 우리 학계에서는 지명에 대한 관심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3)
  강병륜(1989:437)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발표·간행된 지명이 연구 논저 수는 1960년대에는 21편이었던 것이 1970년대에는 74편, 1980년대에는 108편으로 증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최범훈(1969)에서는 지명학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하였으며 졸고(1971)에서는 ‘지명 유형학’의 가능성을 추구한 바 있다. 흡사 방언을 연구하는 방언학이 존재하듯이 세부적으로는 지명어의 대상 연구 분야를 지명학으로 설정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본다. 이철수(1980)에서 지명을 하나의 명칭 과학의 분야로 정립코자 한 뜻도 여기에 있으려니와 이철수(1982)에서는 ‘지명 언어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설정하기도 하였다.


Ⅱ. 지명의 형성과 의미변화

  2.1 어느 나라이든 국명·지명의 명명 배후에는 대개 그럴 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메소포타미아는 meso + potamia의 결합으로 ‘河中의 땅’이라는 뜻이요, 인도는 인드라(因陀羅)라는 신의 이름을 딴 것이며, 중국의 중화(中華)는 ‘중앙 문명의 지역’를 자칭한 바와 같다. 고구려는 원래 산골 사이에 세워진 나라로서 ‘수릿골·솔골(首邑·上邑)’의 뜻에서 도시명 내지 국명으로 화했다는 견해(이병도, 1956:12)가 옳다면 이 또한 우연히 붙여진 이름이 아님을 알 것이다.
  그런데 지명은 오랜 시기를 통해 전승되어 오는 동안 자연적으로 혹은 인위적으로 생기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유연성을 상실한 경우도 많겠지만 지명어의 음운 형태의 변화로 말미암아 본래의 어원을 찾기 어렵게 변형되어 버린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다변적인 의미 교체로 인하여 가공적인 어원을 부여하여 엉뚱하게 새로운 지명으로 발전한 예도 허다하다.
  앞에서 지명도 신생·성장·사멸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원인은 다음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2 발음의 부정확성과 음운 교체

  잘 아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고대 지명은 본시 순수한 우리말로 호칭되었다. 이 점은 ‘삼국사기’ 지리지의 표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자 문화가 물밀듯 들어오게 되자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이르러 전국의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종래의 우리말 지명을 모조리 중국식 한자 지명으로 개칭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지명은 고유어 지명과 한자어 지명이 공존하거나4) 전자가 오히려 소멸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점차 우리의 지명은 한자어 지명이 우세하게 되었고, 고유어로 호칭되는 지명마저 어떻게든 한자로 표기하려는 관습에 길들어져 왔다. 그것은 과거 오랜 역사를 통하여 행정상의 문서가 한자 지명을 요구한 데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선인들의 한자 선호 의식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낯선 외지인들에게는 향토인들끼리 호칭하는 우리말 지명보다는 의도적으로 한자어 지명을 대려고 하는 경향이 매우 짙은 게 현실이다. 이때문에 고유어 지명은 원심성을 가지지 못하고 그 고장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소지명이 너무도 많다.
  그런데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고유어 지명은 구두로만 전승되어 온 나머지 애초에 명명된 유래를 잘 알지 못하고 부정확한 발음으로 전수한 과정에서 음운·형태 등에 변화가 생길 것은 당연하다.5) 이런 현상이 누대를 거쳐 되풀이되면 자연히 원래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새로운 지명어가 형성되고 설상가상으로 거기에 견강부회한 통속 어원을 부여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하여 본래의 지명이 엉뚱하게 변화하거나 미화되는 일이 허다하다.
  예를 들어 전북 이리에 배산(杯山)이라는 산이 있다. 작은 산이기는 하나 기암괴석에 울창한 송림이 덮여 있는 명소이다. ‘익산군지’ 산악조에 의하면 ‘배산’은 상·하 이봉인데 각기 그 이름이 다르다고 하였다. 즉, 상봉인 동봉은 연주(聯珠)산, 백(柏)산, 척(尺)산, 옥성(沃城)산이라 하고, 하봉인 서봉은 우령대(禹靈臺), 우락암(訏樂巖)이라 함이 그것이다. 군지에서는 이들에 대하여 그럴 듯하게 설명을 붙여 놓았다. 곧 산줄기가 울퉁불퉁 뻗은 것이 마치 구슬을 꿰어 놓은 듯하여 연주산, 울창한 송림이 하늘을 가리어 사시절 변함이 없기에 백산, 암석이 층층으로 몇천 척이 되어 보이게 서 있어 마치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다 해서 척산, 옛적 옥야(沃野)현 때의 주봉이기에 옥성산, 금쟁반 위에 옥잔을 놓은 것 같기에 배산, 하우(夏禹)씨가 9년 동안 여기에 앉아서 치수를 했기에 우령대, 반석이 널리 깔려 만인이 앉아 즐길 만하기에 우락암이라 했다는 것이다. 명소라고는 하지만 하나의 작은 산 이름이 7개나 있는 셈인데 한자의 뜻에서 연기한 설명일 뿐 황당한 부회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부회는 비단 이곳만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이런 이름들이 붙게 되었을까. 이리(裡里)가 속한 땅은 백제 때는 소력지(所力只)현이라 하였는데 경덕왕 때 옥야현으로 개칭되었다. 위 산 이름의 열쇠는 상기한 옥성산이다. 이것은 옥야현의 성산(城山)이란 뜻이다. 고대에는 적의 침범을 대비하여 주·군·현의 치소 부근이나 요새 지역에 성을 쌓는 일이 예사였다.6)
  이렇게 볼 때 지금의 ‘배산’에 성을 쌓았음직하므로 애초의 산 이름은 잣뫼(城山)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의 ‘잣뫼’를 한자의 자석을 빌려 표기한 과정에서 ‘柏山·尺山·杯山’의 명칭을 낳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원명으로 생각되는 ‘잣뫼’는 소멸되고 지금은 배산[잔메]으로 통하고 있다. 그리고 ‘우령대, 우락암’도 실상은 우리말의 ‘*우렁대, 우락바우’를 한자로 취음한 경우라 생각한다.(류재영, 1982:337~338)7)


      2.3 문자의 교체

  역사적으로 볼 때 지명의 변천 요인으로서 표기 문자의 바뀜에는 다음 세 가지 방식이 있지 않은가 싶다.

          2.3.1 의미의 유사성으로 말미암아 표기 문자가 교체된 예

보기 : 大山縣→翰山縣→鴻山縣
  ‘홍산현’은 현재 충남 부여군 홍산면인데 백제 때에는 ‘대산현’이었던 것을 신라 경덕왕이 ‘한산’으로 고쳤고, 고려 초에는 ‘홍산’으로 개명된 것이다. 이 경우‘翰’이 ‘大’를 의미하는 음차자이므로 차치하고라고 ‘大’와‘鴻’은 공히 ‘크다’는 뜻이므로 유사한 훈차자로써 문자가 교체된 것이 아닌가 한다.


          2.3.2 한자음이 같은 이유로 표기 문자가 교체된 예

보기 : 漆田→七田里(전남 진도)
  현재 ‘七田里’는 진도군 의신면에 속한 리의 이름인데 우리말로는 ‘옻밭’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곳은 옻나무가 많기 때문에 ‘漆’자를 썼던 것이라고 하는데, 자획이 복잡하여 동음의 ‘七’자로 바꾼 데서 본뜻이 숨겨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예는 전남 보성군 벌교읍의 칠동리라는 지명에서도 볼 수 있다. 현재 이곳은 ‘七洞’이라 표기하고 ‘치럭굴’로 일컫기도 한다. 이는 본래‘漆(옻)+앗(‘밭’의 변이형)+굴(洞)’의 구성임에 틀림없다.8) 그런데 ‘칠앗굴’→‘치럭굴’로 와전된 것이다. 이 경우도 ‘漆’을 간편하게 ‘七’로 음기한 예이다.


          2.3.3 피휘(避諱) 또는 미화의 동기로 문자가 교체된 예

  정덕본 ‘삼국사기’ 지리지 지명 표기자 중에는 무()자가 많이 등장한다. 예컨대 ‘州, 安鄕, 尸伊’등이 그것인데 이들 표기의‘’는 모두가 ‘武’자에서 한 획이 빠져 있다. 이것은 단순한 오각이 아니라 고려 2대 임금 혜종(재위:943:945)의 휘가 ‘武’였기 때문에 이 글자를 정자로 Tm기를 피하려 한 것이다. 이른바 피휘결획에 해당한 것으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9)
  이 같은 ‘武’자의 결획자가 마침내 정(正)자로 오인되어 지명 표기가 달라진 예가 있다. ‘삼국사기’(권 36) 중 백제 지명‘古良夫里縣’은 신라 경덕왕 때 ‘靑正縣’으로 개명된 듯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이 靑武縣‘의 잘못임은 ’고려사‘(권 56), ’세종실록‘(권 149), ’신증동국여지승람‘(권 19)에 다 靑武縣이라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10)
  이밖에 지명 표기자를 바꾼는 동기에는 미화 의식의 작용을 들 수 있다. 예컨대 광주시 광산구 평동 지역에 ‘옥밭거리’라는 곳이 있다. 본래 나주군 평리면 지역인데 백제 때는 복룡(伏龍)현 지역이었다. 이때 이곳에 옥(獄)이 있었으므로 ‘옥밭거리’라는 칭명이 전래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함을 계기로 옥동(玉洞)으로 고쳐졌다. 이것은 바로 ‘獄’자의 이미지가 좋지 않음으로 이를 미화하여 ‘玉’자로 교체한 것이 아닐까 한다.


      2.4 행정 구역 병합에 따른 개칭 지명

  두 개(또는 그 이상)의 지역을 병합하여 행정을 구역을 개편한 과정에서 각 지명의 표기 문자를 합하여 새로운 지명이 명명될 경우에 본래의 지명 의미가 달라진 예는 너무도 흔한 일이다.
보기 : 함풍(咸豊)현·모평(牟平)현→함평현
  현재의 전남 함평(군)은 조선 시대의 위의 두 현이 통합되면서 생긴 지명이다. 1914년 일제가 행한 우리나라의 행정 구역 개편은 지명의 전승에 일대 변혁이 이루어진 계기가 되었다. 이때에 특히 면 단위 지역 이하의 행정 구역명은 종래의 지명이 온전히 남은 것이 없을 정도로 이른바 혼태(blending)식 지명이 새로이 생겨나게 되었음은 잘 아는 사실이다.11)


      2.5 동음 견인에 의한 지명 의미의 변화

  이것은 고대 지명어를 현대어 또는 한자로 표기할 때 생기는 유연성 혹은 의미의 변화가 초래된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이러한 사례를 동음 견인에 의한 지명의 민간 어원적 해석이라고 보고자 한다.
  이 점은 특히 지명의 유연성을 논의할 때 신중히 다루어야 할 사항이다., 한 예를 들면 강원도 영월군에 ‘두무치’라는 마을이 있다. 이것을 ‘杜舞峙’로 기록하고 ‘뒷산이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다.12)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그 본뜻이라 보기 어렵다. 이것은 오히려 ‘두마·두모·두미’ 등을 포함하여 {둠}형 지명의 변이 형태로서 ‘圓·四圍’의 뜻에서 생긴 지명이라 생각된다.
  이와 같이 지명의 교체·소멸·신생 과정은 다양한 원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해당 지역의 역사, 지리, 풍속, 전설 등을 자세히 조사하지 아니하고 어느 한 시대에 나타난 지명을 공시적 태도에서 획일적으로 판단한다면 의외의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이 지명이라 하겠다.


Ⅲ. 지명의 소재와 유형

  이제 우리나라 전래 지명의 특징이 어떠한가를 살펴보기 위하여 지명어의 소재와 그 유형을 들어보고자 한다.


      3.1 「산(山)」을 소재로 한 지명

  지명어의 소재 중에서도 자연 지리와 유연성을 가진 것이 가장 많은 듯하다. 우리나라는 총면적의 약 7할 이상을 산지가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대의 우리 민족이 특히 산·골을 배경으로 의식주 해결을 비롯한 경제생활을 영위하기가 편리하였기 때문에 여기에 촌락을 이루었던 사실도 하나의 원인이 될 것이요, 우리 민족의 원시 신앙 중 산악 숭배 사상이 ‘~산’계 지명을 많이 낳게 한 또 하나의 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필자는 졸고(1968)에서 남한 9개도의 군·읍·면·리명을 대상으로 하여 19,529개의 지명 표기 한자를 낱낱이 조사하여 이를 통계로 제시한 바 있다.13)
  그 결과 총 한자 수는 1,496자였다. 이 중에 1회밖에 쓰이지 않은 것이 422자로서 29.5%를 차지하고, 50회 이상의 출현 빈도를 가진 용자는 136자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50회 이상의 출현 용자 중에서도 지리적 환경과 관련된 33개 한자가 9,499회나 사용되어 전체(35,517회)의 26.7%를 점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 한자 지명의 한 특징을 알려 주는 증거로 삼을 만하다. 이 중 몇 가지 예를 출현 빈도 순서로 들어 참고로 삼고자 한다.
山(195:1,312)14) 谷(9:1049) 巖(10:504) 村(1:413) 城110:296)
田(13:368) 坪(52:314) 洞(7:369) 亭(19:294) 陽(88:96)
川(26:553) 浦(27:226) 林(36:183) 峴(60:181) 井(24:190)
湖(10:181) 院(69:105) 堂(45:113) 基(23:132) 橋(22:127)
泉(29:112) 島(13:104) 垈(9:108) 峰(7:94) 池(44:70)
峙(2:87)        

  이와 같이 상기 지명 중에서도 ‘山’자는 가장 높은 빈도를 보여 준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현재 전래하고 있는 우리말 지명만을 예시하고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각종 지리지의 지명과 현재의 한자 지명은 제외하기로 하겠다.15)
  ‘산’에 대응한 우리말 지명은 대개 ‘뫼·메·미’의 형태로 전래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의 산 이름이 아니고 리·동(里·洞), 촌락의 명칭인 만큼 이미 ‘산’의 본뜻을 벗어나 지명 접미어의 형태로 굳어진 것이라 하겠다.
1) ~뫼, ~메
팔뫼~八山(경남 합천)16), 꽃뫼(충북 청원), 자리뫼~(강원 강릉),
별메~星山(전남 함평), 한메~大山(전남 해남), 성메~城山(전남 담양),
비들메~橫山(전남 나주), 도르메~回山(전북 남원)
   
2) ~미
개미~浦山(전남 진도), 잣미~山城里, 달미~達山(충북 보은),
갈미~葛山(강원 삼척), 시르미~甑山(전북 정읍), 자리미~鰲山(전북 김제)

  그리고 삼국 시대 고구려계 지명에서 ‘山·高’의 뜻에 해당되는 달(達)계 지명이 있는데 현재도 강원도 지방에는 ‘~달’형의 지명이 전래하고 있다.
어달~於達(명주), 박달~朴達(인제), 사달~士達(명주), 강달미, 안달곳~(영월), 샘달꼴~(화천), 응달말~(경기 여주)
  ‘달’을 ‘達’로 표기한 것은 후대의 취음 한자일 뿐 원래는 ‘산’을 칭한 옛말로 여겨진다. 현대어의 ‘양달·응달’도 원의는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3. 2 「골(谷)」을 소재로 한 지명

  ‘산’과 ‘골’은 서로 표리 관계에 있는 지리적 조건이거니와 한자 지명에서도 ‘谷’은 ‘山’ 다음의 높은 빈도를 차지하고 있다.
1) ~골/~굴
쇳골~金谷(전남 담양), 수무골~二十谷(전남 담양),
학골~鶴谷里(강원 횡성) 범골~虎谷(경남 거제)
  현재‘~골’이 붙은 지명의 기원은 적어도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나는 골짜기(谷)의 뜻에서 유래한 것이요, 또 하나는 ‘洞’을 지칭한 ‘고을’의 축약형이다. 후기 중세 국어에서도 ‘골’은 ‘谷·洞·州’와 동음어였음은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절골~寺洞(전남 광산), 안골~內洞(전남 담양), 맛골~麻洞(전북 옥구),
밤골~栗洞(경기 용인), 감골~枾洞(경북 문경)
2) ~실
삭실~狸谷, 밤실~栗谷(전남 장성), 너부실~廣谷(전남 광산),
지실~芝谷(전남 담양), 다라실~月谷(전남 화순)
  위의 ‘~실’은 ‘谷’에 대당되는 지명어인데‘골·실’의 기원 문제는 여기에서 논하지 않겠으나 적어도 분포상의 차이는 있는 듯하다. 현재 전남 지방에서 필자가 조사한‘~실’형 지명은 200여 개에 달하는 데 ‘골’은 도서·내륙 지방에 많이 나타난 반면 ‘실’은 산간 지방에 훨씬 우세하다.17)
3) ~단, ~둔, ~돈
청등단~靑嶝(전남 진도), 내단~內屯(강원 정선), 숫둔~炭谷(강원 인제),
곰둔~熊屯(강원 횡성), 단돈~丹頓里(충북 제천)
  여기 ‘~단’계 지명은 현재 전래 지명어에만 잔존하고 있는 희귀어인 바 ‘삼국사기’의 고구려계 지명에서 ‘呑·旦·頓’으로 적힌 지명어의 유흔이다. 일본어의 tani(谷)와도 비교되는 지명어이다. 이 형태의 지명이 특히 강원도 지명에 많이 나타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18)


      3. 3 「재·고개(城·峙·峴·岸·嶺·岑 등)」를 소재로 한 지명

1) ~재
한재~大峙, 옷재~漆峙(전남 담양), 곰재~熊峙, 새재~鳥城(전남 보성),
되재~胡峙(전남 장흥), 소재~牛峙(전남 광산)
   
2) ~고개
돌고개~石峴(전남 함평), 몰고개~馬峴(남 광양), 탑고개~塔峴里(강원 고성),
덕고개~德峴里(강원 명주), 땅고개~(전남 해남)
   
3) ~기
다래기~月也里(전남 광산), 먼애기~遠浦(전남 진도), 마지기~梅橋里(전북 익산),
뽀래기·뽀르기~甫玉里(전남 완도)
   
4) ~지
고래잣지~鯨村, 솔오지~松湖里(전남 진도), 갈마지~(전남 장성),
아라지~阿提里(전북 부안), 너러지~(전북 익산)
   
5) ~치/~티
솔치~松峴里(전남 무안), 독치~仁智里(전남 진도), 물치, 배치,
삽치~(전남 장성), 상북치~上北里(전북 장수)
  위에서 1), 2)는 별 문제이지만 ‘~기/~지’도 역시 ‘城·嶺’에 대당된 고대 국어의 잔재로 보아 여기에 제시하였다. ‘삼국사기’의 백제계 지명에 쓰인 ‘只·己·支’ 등의 음차자는 바로‘기·지’와 연맥된 것이라고 본다. 5)의 ‘치’도 한자어‘峙’의 취음이라기보다 오히려 ‘~지’의 유기음화형이 아닐까 한다. 한편‘치’의 역유추형으로 여겨지는 지명 접미어에 ‘티’가 있다. 충북 지방의 혈티~血峙, 직티리[핏재, 피티]~稷峙里(단양), 송티[솔재]~松峙(괴산) 외에도 ‘지름티, 큰티, 솔티, 밤티’ 등의 지명이 전래하고 있다. 이‘티’가 왜 비구개음화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는 속단을 보류한다.


      3. 4 「바위·돌(巖·石)」을 소재로 한 지명

  현재의 전래 지명 중에는 바위를 소재로 형성된 것이 많은데 한자 지명에 있어서도 ‘巖’의 선·후음절 간의 비율은 10:504로 나타난다. 이 점은 지명의 구성 성분상 암석류가 피수식어적 지명 접미어로 쓰이고 있음을 말해 준다.
1) ~바위
꽃바우~花巖, 아홉바우~九巖, 갓바우~笠巖(전남 담양), 빌바구~星巖(전남 고흥),
범바구~虎巖(전남 완도), 선바구~立巖(전남 고흥)
2) ~돌
눈돌~臥石(전북 남원), 너븐돌~廣石里(경기 양주),
선돌~立石里(충남 예산), 옥돌내~(경기 파주)
  그러면 ‘바위’가 지명어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암 괴석에 대한 우리 민족의 민속 또는 원시 신앙과 적으나마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다. 한국 민속의 원시 신앙에는 산악 숭배뿐만 아니라 수목 숭배, 암석 숭배, 기타의 애니미즘 또는 샤머니즘이 있다는 사실이다. 수목 숭배는 신목(神木)·간(竿) 따위의 예를 들 수 있고, 암석 숭배는 입석, 거석에서 그 신앙을 찾게 되는데 이러한 숭배 사상은 알타이 족과 옛 아시아 족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바위에 관련된 많은 전설이 전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요컨대 우리 선조들은 갖가지 형상의 기암괴석을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 희자한 나머지 마침내 많은 지명에까지 인용된 것이라 생각한다.


      3.5 「숲·초목(樹林·草木)」 등을 소재로 한 지명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삼천리금수강산이라 자칭하여 왔다. 선인들이 남겨 놓은 시가·시조 등에는 울울창창한 자연의 모습을 그린 것이 많은 데서 그들의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현재의 전래 지명 중에는 수림·초목을 소재로 삼은 지명이 많다. 그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수목 숭배라는 원시 신앙도 한 몫을 했겠지만, 설사 신앙과 무관한 경우라도 특정의 수림·초목·화초가 그 고장의 주위에 무성할 때 이것이 곧 지명의 소재가 되었으리라는 점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19) 아래에 이들을 묶어 몇 가지 예만 들어 보자.
숲징이~林亭(전남 담양), 숲실~林谷(전남 광산), 섭밭몰~薪田里(전남 보성), 솔섬~松島(전남 완도), 배나무골~梨木洞(경기 수원), 감냉기~柿木(전북 고창), 밤나무골~栗木(경기 양평), 머우실~梧谷里(전북 부안), 개금말~榛子里(전북 익산), 자귓골~(충남 공주), 버드실~柳谷(전남 나주), 살구물~杏村(충남 홍성), 꽃대~花竹(전남 보성), 꽃다리~花橋(전남 여천), 꽃밭~花田(경북 상주)

      3. 6 「물(江·川·溪·池·泉·井·灘)」을 소재로 한 지명

  물은 인류의 생활과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불가결의 자연적 요소이다. 고대 문명국들이 모두 수원이 좋은 지리적 환경을 배경으로 발달하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이것이 우리의 지명 소재로 흔히 쓰이고 있음은 기이한 일이 아니다.
1)
물골~水洞, 물목~水項里(강원 평창), 물안실~內水里(경남 산청),
물맹이~水望里(전북 정읍), 물것~水村(전북 남원)
   
2)
삼지내~三川里(전남 담양), 깐치내~鵲川(전남 보성), 말그내~淸川(전남 무안),
비끼내~橫川(충남 청양), 밥날~食川(전북 옥구)
   
3)
못기미~池里(전남 완도), 못골~池洞(전남 광산), 못안~池內里(경기 여주),
연못~蓮池洞(경기 안성), 방죽안~防築里(충남 논산)
   
4)
방울새암~鈴泉里(전남 장성), 샘골~井洞(전북 익산), 샘내골~泉川里(경기 화성),
샘기미~(전남 완도), 한우물~大井(충남 천원)
   
5) 여울
여울목~灘項(경기 여주), 여울매기~灘項洞(충북 단양),
열개~灘洞里(전남 신안), 쇠녀울~金灘(전북 남원)

      3.7 「들·벌판·터」 등을 소재로 한 지명

  다음으로는 ‘들’이나 ‘벌판’을 소재로 삼은 전래 지명을 들어 보자.
  필자가 조사한 행정 구역의 한자 지명에서 이와 관련된 한자의 통계를 보면 예외 없이 후음절의 비가 높은 것을 알려 준다.20) 이것은 ‘들’이나 ‘벌판’이 소재가 된 지명들은 대개 그것의 지리적 특성이나 주위의 환경이 수식어가 되어 명명되는 유형임을 알게 한다.
1) ~들
구렁들~九村里, 봇들~洑坪里(전남 해남), 새밭들~新田(전남 강진),
한밭들~大田里(전남 영광), 꽃밭들~花田里(충남 예산),
큰덜~(충남 공주), 가느드루~(강원 정선)
   
2) ~밭
갈밭~葛田里(전남 담양), 진밭~長田(전남 강진), 밤밭~栗田(충북 괴산),
띠앗~茅田里(강원 명주), 개앗~浦田里(충북 제원)
   
3) ~벌, ~불, ~부리
황산벌~(강원 영월), 큰벌~大坪(강원 정선), 밤벌~(경기 양평),
건너불~(강원 삼척), 바람부리~風村(강원 영월)
   
4) ~울21)
장자울~長者里(전남 광산), 밤메울~栗村里(전남 곡성), 모래울~沙谷里(강원 철원),
두미울~杜日里(강원 평창), 배울~梨谷(충남 천안), 물지울~茂谷(강원 원주), 버리울~牟谷里(강원 홍천),
배울~梨洞(충남 청양), 자라울(자래울)~(경기 포천)
  등의 예들이 참고된다.


      3.8「지형·지세」의 특징을 소재로 한 지명

  지명의 명명에 있어서 지형 지세의 특징은 기본적인 소인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Webster's Gographical Dictionary(pp. XXX~XV)에 각국 말을 벌여 놓은 지리 용어 가운데 ‘big, great, high, little, small, long, low, lower’ 등의 낱말이 나온다. 이것들은 지형·지세의 특징을 꾸미는 형용사로 생각된다.22)
  가는골~細谷(강원 정선), 곧은골~直洞(강원 평창), 너부실~廣谷(광주 광산), 긴섬~長島(경남 의창), 긴여울~長灘里(경기 연천) 등의 예가 그러하다.
  물론 전래 지명과 현지의 지형·지세 사이에 모두 필연적 관계가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명 명명의 한 유형으로 판단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줄 안다.
1) ~구지, ~고지
대꾸지~大串, 나리구지~羅里(전남 진도), 문꾸지~間串(전남 고흥),
질구지~深井(전남 곡성), 돌방구지~石坊洞(경기 파주), 가매구지~(강원 영월),
입고지~入高地(강원 명주)
  이상의 ‘구지·고지’는 결론부터 말하면 해안선에 육지가, 또는 평야에 산기슭이 불쑥 나온 철(凸) 지형에 붙여진 지명어로서 ‘串·岬(岬:陸地之陵入海中者)에 해당한 것23)이다.
2) ~구미, ~기미, ~금, ~그미
상목구미~香木里, 유토구미~柳吐里, 가마구미~加用里(전남 진도),
대구미~大口味, 샘구미~泉口里, 봇낭구미~, 가마구미~, 선창구미~(전남 완도),
큰구미(귀미), 돌구미~石穴(강원 삼척), 절터구미~(강원 양구),
고락기미~洞井, 임기미~漁村, 연못기미~(전남 고흥), 모래기미~(전남고흥),
갓지미~邊村(전남 여천), 모지미~馬村(전남 신안),
공서금~, 생끔~(전남 고흥), 청석금~, 한박금~, 오천금~(전남 완도),
작그미~作錦(전남 여천), 갱그미~(강원 명주)
  위의 ‘~구미’계 지명은 혹은 ‘금, 끔, 그미, 구미, 귀미, 기미, 지미’등의 변이형을 가진다. 전남 지방을 조사한 경험에 의하면 이 형태의 지명은 거의 도서·해안 지방에 분포되어 있고 내륙 지방에서는 거의 드문 것이 특징이다. 대체로 바다에 연한 땅이나 또는 하천 곁의 후미진 곳을 칭한 지명어로 생각된다.24)
3) ~목
노리목~獐項(전남 담양), 말목~馬項(전남 완도), 미리목~龍項里(강원 평창),
늘목~於項(경남거창), 돌목~石項里(경북 문경),
새목~馬項, 비들목~鳩項(전북 무주), 황새목~(강원 횡성)
  위의 ‘목’은 마치 현대어의 ‘길목’이 큰 길에서 좁은 길로 갈라져 들어가는 어귀나 길의 중요한 통로가 되는 곳을 가리키는 것과 의미가 상통한다. 그것은 동물의 목의 생김새와 중요한 기능을 유사 지각에 의하여 지명에까지 원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4) ~벼랑
챙별~(전남 완도), 구정베리~九井(강원 영월), 장독 벼루~, 벼루재
~硯峙(강원 흥천), 꽃베루~(강원 철원), 자구벨~(경북 안동)
  위의 지명들은 원래 벼랑(崖)을 가리킨 말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흔히 한자로 연(硯)자를 대용한 예가 있으나 실상은 근대 국어에서 두 낱말이 동음어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 밖에 지리적 환경을 나타낸 지명도 있다. 예컨대 사방이 산이나 골짜기 또는 바다·하천에 의하여 둘러싸인 지역을 암시하는 지명으로 ‘둠’계 지명이 있다.
둠골~, 두무굴~(전남 완도), 두묵굴~(전남 신안), 둠말~(전남 고흥), 두무실~(강원 고성), 두모실~(경남 거제)
  또 합수(合水) 지역의 환경을 연상케 하는 지명도 있다.
아울치(합수머리)~(강원 춘천), 아우라치~幷川(강원 흥천), 합숫거리~(경북 울진), 옹기말~(강원 홍천), 모듭내~合川(충남 청양)

      3.9 「위치」를 소재로 한 지명

  지명의 명명 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위치를 나타내는 한정어로는 ‘동·서·남·북, 고·저, 상·하, 좌·우, 전·후, 내·외, 평·곡······’ 등 여러 가지를 예견할 수 있다.
동볏테~東伐里, 서볏테~西伐里(전북 익산), 앞골~, 뒷골(강원 인제), 뒷개~後浦(경북 성주), 웃돌목~, 아랫돌목(강원 정선), 샛말~間村(강원 영월), 성밑~城下(강원 강릉), 양짓말~陽村(충북 청원), 음달말~陰村(충북 음성), 높은봉~(충북 중원), 냇가~川邊里(강원 평촌), 가상골~邊洞(전남 보성)

      3.10 「동물」의 이름을 소재로 한 지명

  전래 지명 가운데 흔히 동물의 이름이 소재가 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대개 세 가지의 까닭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첫째, 지형이 어떤 동물의 생김새와 비슷한 데서, 둘째, 그러한 동물들이 해당 지역에 많이 서식한 적이 있으므로, 셋째, 동물과는 무관할지라도 자의적으로 붙여진 지명을 생각해 볼 만하다.
쇠섬~牛島, 개머리~大頭, 범바구~虎巖(전남 완도), 괴섬~猫島(전남 여천), 곰재~熊峙(전남 보성), 소리섬~鳶導, 노루미~(강원 횡성), 배암섬~(경남 사천), 배암골~蛇洞(전북 정읍), 삭실~狸谷(전남 장성), 여시기미~(전남 고흥), 황새골~(경남 사천)

      3.11 「자연 자원·생산물」을 소재로 한 지명

  전래 지명 중에는 모두 그런 것은 아닐 터이지만 그 지방에서 나는 자연 자원이나 제조업의 생산물을 소재로 삼아 명명된 유형도 세울 만하다.
은골~銀谷(강원 평창), 감자골~(강원 영월), 지사울~瓦洞(전북 완주), 지와말~瓦(전북 김제), 갓점~笠店(전북 익산), 놋점~錬店(전북 정읍), 붓골~筆洞(전북 정읍), 돗골~(전북 남원), 수꼴~酒谷(전북 옥구), 옹구막~(전남 광양)

      3.12 「유물·유적」을 소재로 한 지명

  이것은 어느 고장에 설치된 특수 건물이나 유물 또는 공동 시설, 관청 따위가 소재한 적이 있어 명명된 경우이다. 시시로 변경 가능성이 있는 지표에 비하여 언어란 쉽사리 변개되지 않으므로 특히 역사·고고학의 연구에 지명이 길잡이가 될 유형이라고 본다.
곳집말~庫村(강원 영월), 탑골~塔洞(전남 영암), 절골~寺洞(경북 영일), 절터왓동네~(제주 구좌), 불당말~佛堂里(경기 안성), 미륵골(전북 남원), 능골~陵谷(경기 용인), 관골~官洞(강원 철원), 창말~倉村(전북 고창), 장터~場基(경북 영덕), 은고방~銀庫(전북 무주), 불무실~治谷(전북 진안), 비석골~(경남 진양), 둔터~屯基(전북 김제), 역말~驛村(충남 홍성), 애통이~倭塜里, 무덤실~墳洞(경북 의성), 방하실~(전북 진안), 옥밖거리(전북 임실), 향교골~校洞(강원 춘성), 성안~城內洞(충북 영동), 옥터~(경남 사천)

      3.13「신앙·관습」에서 생긴 지명

  전래 지명은 인간 생활에서 생긴 신앙과 관습 등을 반영해 주기도 한다. 특히 우리 민족은 고래로 풍수지리설에 민감하여 고장 이름을 명명할 때에도 이것이 심리적으로 크게 작용하였고 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는 전래 지명 중에 ‘명당’(명당골, 명당구지, 명당꼬지, 명당동, 명당리)이 들어간 지명이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또 ‘갈마(渴馬)골’이라는 지명도 많은 편인데 따지고 보면 명당(明堂)의 혈(穴)이 마치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渴馬飮水) 자리와 같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라 하겠다.
  한자 지명에서 용(龍)자가 많이 쓰인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뿐 아니라 우리 민족이 옛날부터 지켜온 토속 신앙과 특히 불교의 영향이 지명에 반영되어 있는 예도 하나의 유형이 될 수 있다. 굳이 예를 열거할 필요도 없이 현재의 전래 지명 가운데 ‘당(堂)·당산’을 소재로 한 예가 허다하다. ‘당메, 당꼴, 당산등, 당산리, 당산밑, 당산기미, 당살미, 당고개, 신당굴, 안신댕이, 할미당, 선황당, 서낭당…’ 등이 그러한 예이다.
  또 우리는 현재까지도 시골의 마을 어귀에 세워진 ‘장승’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이정표의 구실 외에도 악귀의 침입을 막아 주는 일종의 마을 수호신이라 한다.
  ‘장승몰, 장성백이, 장싱꼴, 장싱이’와 같은 지명이 바로 ‘장승’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것이다.


      3.14 기타

  지명의 명명 소재는 위에서 말한 내용 외에도 세분하면 여러 유형이 있을 것이다. 그 중의 하나는 한 나라 한 지방의 개척자라든가 영웅, 애국자, 성현, 공로자 등의 위업을 기리기 위하여 그들의 명호를 딴 지명(을지로, 세종로)을 뺄 수 없다.
  이 밖에도 지명은 실지의 유연성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풍부한 상상력에 의해서 표현된 시적인 지명도 있고(한자 지명의 ‘白雲洞’ 따위), 행운과 부귀를 갈망하는 인간의 염원이 서린 지명도 있을 것이지만 다 열거할 수 없으므로 본고에서는 이 정도로 끝맺고자 한다.


Ⅳ. 맺음말

  지금까지 우리나라 전래 지명을 중심으로 지명어의 소재와 그 유형이 어떠한가를 살펴보았다. 지명의 범위는 크게 자연 땅 이름과 인공 땅 이름으로 나눌 수 있다. 한글 학회 ‘한글 땅 이름 큰사전’에 의하면 자연 땅 이름으로 ‘강·개·고개·골·곶·나루·나무·내(개울·개천·도랑)·너설·논·늪·들(벌)·만·모래톱·산모롱이(부리)·못·바위·밭·버덩·산(산맥)·섬·소·숲(풀갓)·약물터·여울·폭포·해수욕장·해협(바닷골)’을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인공 땅 이름으로는 ‘고적·공원·광산·굴·길·놀이터·농장·종·다리·당(서낭당)·동상·뚝·마을·묘문(홍살문)·물문·미륵·배수장·보·봇들·비행장·빨래터·수원지·양수장·양어장·염밭·온천·우물·운동장·시장·저수지·절’ 등을 망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는 우리말로 전래되는 마을 이름를 주 대상으로 하여 지명 일부를 살펴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부분적으로나마 이 글을 끝맺음에 있어서 다음 다섯 가지 사항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1. 지명은 일반 언어의 기호성과는 달리 실제 대상과의 유연성을 가진 것이 많으므로 지명 유형학은 물론 외국의 지명 소재나 유형과도 대조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25)
2. 지명의 소재는 자연환경이나 지리에 관계된 용어가 가장 많지만, 그 밖에 인간의 생활과 직결된 인문적 용어도 있다.
3. 지명의 연구는 국어학은 물론 민속·민족·역사·고고·사회학, 설화·구비 문학 등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방증 자료를 제공해 준다. 그러므로 어느 한 분야의 연구만으로는 본질적 해명이 불가능하다.
4. 지명은 공통어에서 찾기 어려운 희귀어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옛말의 고증은 물론 국어사의 연구에도 중요한 재료가 된다.
5. 지명은 언어(방언) 지리학의 연구에도 생생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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