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기타 자료 상세보기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제주도의 미래

담당부서 어문연구과 등록일 2001. 5. 23. 조회수 8079
첨부파일 총 0건 (0 MB) 전체 내려받기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제주도의 미래

박창원(국립국어연구원 어문규범연구부장/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무식한 자들의 용기(?)있는 발상     제주도를 홍콩과 비슷한 국제 자유 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자 한다는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국제 자유 도시와 영어의 공용어화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필자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러한 계획은 인간이나 민족의 삶에 언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했을 경우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대단히 무식하고 짧은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자들이, 제딴에는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라고 착각하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용기로 입안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 언어와 민족의 존재적인 상관성(1)     제주도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은 <언어는 민족의 생존 자체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반기 일본이 우리 나라를 지배하던 시절 일본은 한국인의 얼을 없애고, 한국인을 일본인화하기 위해 한국어 말살 정책을 편 것을 안다. 일본이 이러한 정책을 편 것은 언어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민족 정신을 살리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언어의 존재 여부가 민족의 생존 여부와 직결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역사적인 사실이 증명한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은 아득한 옛날 본래 하나의 단일한 민족이었는데, 이들이 다른 종족으로 갈라지게 된 것은 다른 지역에 오래 살면서 언어가 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언어의 상이함이 민족의 상이함으로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예도 있다. 한때 중국의 중심부를 차지하여 중국을 지배하던 만주족이 한족에 동화되어 민족 자체가 거의 소멸되어 버렸는데,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것은 만주족이 그들의 언어를 잃어 버리고 중국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 언어와 민족의 존재적인 상관성(2)     제주도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은 <언어가 민족의 생존 양식과 사고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처할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하면 된다.' 혹은 '안 되면 되게 하라.'라는 말은 한다. 이것은 언어가 주술적인 마력을 가지고 있어서 언어의 사용 자체가 인간의 정신작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언어학자들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고 방식이 달라진다'고 한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면 영어식의 사고를 하게 되고, 이것은 행동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영어를 외국어로써 사용하는 것과 공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양적인 차이가 아니라 질적인 차이를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 영어의 공용어화로 인한 단기적인 폐해     제주도에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자는 안대로 한국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첫째, 영어를 모르는 도민은 개인적으로 정체성을 잃게 되고 존재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될 것이다. 공용어를 모르는 무식한 도민을 양산하게 되고, 이 무식한 도민은 개인적인 자아 실현에 치명적인 타격를 입게 되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서 영어를 사용하는 도민과 영어를 사용할 줄 모른는 도민간에 위화감이 조성될 것이다. 그리하여 영어를 사용하는 도민은 그들끼리 어울리고 영어를 사용할 줄 모르는 도민 역시 그들끼리 어울려 제주도민은 분열될 것이다.     셋째, 영어를 모르는 도민을 위해 영어를 전 도민에게 교육하기 위해서는 교사와 교육 시설을 위한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여, 이것은 제주도민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육지의 지원이 필요하고, 육지의 재원이 제주도에 과다하게 투자되기 때문에 육지의 경제적인 사정에 막심한 타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 영어의 공용어화로 인한 장기적인 폐해     계획대로 제주도에서 영어의 공용어가 완성되어 장기화되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초래될 것이다.     첫째, 초기에 높아지는 듯하던 제주도의 국제적인 위상은 제 자리 걸음을 하게 되거나, 오히려 낮아질 것이다. 영어가 공용어인 제주도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관광객의 숫자가 약간 많아질 가능성이 있고, 국제적인 회의의 횟수도 늘어날 것이고, 국제 무역도 더 활성화될 것이다. 그러나 로마에 관광객이 많은 것이 로마에 가면 영어도 통하기 때문이 아니고, 스위스에 국제 회의가 많은 것 역시 스위스에서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일본의 국제무역이 많은 것이 일본에서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국제적인 위상을 '언어'로 해결하려는 발상은 발전적인 투자를 저해하여 제주도를 제 자리 걸음의 상태로 머물게 하여 오히려 이전의 상태보다 못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영어가 공용어인 미국과 호주, 인도, 필리핀 등의 국제적인 위상이 국가마다 다른 것은 그것이 언어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둘째,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것이 장기화될 경우 한국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사람들과 한국어만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다른 민족이 되어 버릴 것이다. 언어의 이질성이 민족의 이질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많은 종족의 소멸과 새로운 종족의 출현은 모두 언어의 존재 여부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육지의 사람들은 그들의 세금을 투자하여 제주도를 다른 민족으로 만들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투자가 아니라 파괴적이고 망국적인 투자인 것이다.
◎ 정책 입안자의 대오각성     현재보다 미래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긍정적인 것을 살리고, 부정적인 것을 수정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의 긍정적인 요소를 파괴하거나 미래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발상의 전환이란, 아니함만 못한 것이다. 발상을 전환하기만 한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정책입안자들은 대오각성하여 미래의 발전을 가져올 건전한 발상의 전환을 하기 바란다.


최종 수정일: 2015. 3. 2.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