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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특집] 한글을 지켜 낸 사람들의 이야기
■ 제목: [광복절 특집] 한글을 지켜 낸 사람들의 이야기
■ 분량: 8분 12초
광복절 기념 기획 대담
한글을 지켜 낸 사람들의 이야기
홍유: 안녕하십니까? 진행을 맡은 홍유입니다.
홍유: 이번에 다뤄 볼 주제는요, 바로 한글을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인데요.
홍유: 이번 주제 같이 이야기 나눠 볼 두 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마크 피터슨: 저는 하버드대학교에서 공부했고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는데 브리검영대학교를 퇴직한 지 지금 6년 됐고요. 그 이후 (전화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어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홍유: 그리고 이사님이시죠. 한글학회에 소속되어 있으시면서 한국어와 한글을 연구하고 알리시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학회 소개에 대해서 간단하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한글학회란?
한글학회 이사 김슬옹
- 훈민정음학, 국어교육학 박사
-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 한글학회 이사
김슬옹: 저는 한글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슬옹입니다.한글학회는 그야말로 우리말과 글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활동과 우리말과 글에 담긴 역사 문화 가치를 빛내는 한글문화 운동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홍유: 이번 주제가 '한글을 지켜 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니까 영화 '말모이'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말모잉의 시작이 굉장히 궁금해요. 그래서 김슬옹 이사님께 먼저 말모이의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지 여쭤 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초의 한글 사전 말모이
김슬옹: 말모이는 1911년 주시경 선생님께서 처음 시작했거든요. 우리말과 글을 모아 놓은 사전이 있어야만 우리말과 말에 담긴 문화와 역사, 가치를 보존할 수 있다.
우리말과 글을 모아 놓은 사전이 필요
김슬옹: 그런데 안타깝게도 1914년에 주시경 선생님께서는 서른여덟의 나이로 돌아가셨고요.
주시경(1876~1914)
한국어와 한글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언어학자
[자료 출처: 한글학회]
'말모이'
최초의 현대적 우리말 사전의 원고
[자료출처: 국가유산청]
김두봉, 권덕규
1911년 주시경과 김두봉, 권덕규 등이 모여 '말모이' 집필 시작
[자료 출처: 한글학회]
하지만 편찬자들의 사망·망명 등으로 출판되지 못하고, 원고의 일부는 계명구락부에 전달
김슬옹: 1929년에 이극로 선생님께서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휘문고등보통학교의 '회중당']
1921년 '조선어연구회' 조직 확대
하지만 불합리한 시대 환경 속 사람의 힘만으로 완성할 수 없던 일
1929년 4월, '조선어연구회' 회원이 된 이극로
[자료 출처: 한글학회]
"문화를 촉성하는 방편으로는 문화의 기초가 되는 언어의 정리와 통일을 급속히 꾀하지 않은 수 없는 것이다. 그를 실현할 최선의 방책은 사전을 편성함에 있는 것이다."
-조선어사전편찬회' 취지서-
1929년 한글날 대회에서 '조선어사전편찬회' 구성
[자료 출처: 한글학회]
홍유: '말모이' 영화 보셨죠, 교수님?
마크 피터슨: 예, 최근에 봤습니다. (영화가) 나올 때는 못 봤고, 최근에 봤습니다.
홍유: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마크 피터슨:일제강점기에 한국어가 없어지려고 할 때, (한국어를 지키고자 했던) 운동을 새롭게 기억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국과 일본에 무너지지 않고, 독립된 한국어와 한글이 남아 있는 것은 아주 자랑스럽고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홍유: 지금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냐면 우리의 역사를 보면, 한국의 예로부터 외세의 참략을 굉장히 많이 받았잖아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잘 이어 나가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말, 한글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한글과 한국어의 보존, 우리의 역사를 이어 갈 수 있었던 이유
홍유: 지금의 한글학회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을 지키고자 했던 분들의 시작이 조선어학회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고요. 김슬옹 이사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영화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네다섯 분이 주요 인물이긴 하지만 그 인물들 말고도 정말 많은 분께서 도움을 주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역할을 하셨을까요?
김슬옹: 지금의 표준어만 싣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역의 사투를 다 실으려고 노력했고요.
각 지역 사투리를 모으기 위한 조선어학회의 두 가지 전략
김슬옹: 그리고 조선어학회에서 두 가지 전략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 당시 경성에 유학 갔던 젋은 학생들이 방학하면 고향으로 가잖아요. 그때 (학생들에게) 두 가지 역할을 부여하는 거죠. 한글을 가르치고, 그 지역의 사투리를 수집하고요. 근데 이거는 사람 중심으로 하다 보니까 한계가 있는 거죠.
1932년 조선어학회, 「한글」 창간
김슬옹: 그래서 조선어학회가 1932년에 한글 월간지를 창간해요. 매달 나오는 잡지에 광고를 싣는 거죠. 우리가 사전 편찬을 하는데 어휘 수집이 대단히 중요하다.
광고가 실리자마자, 전국 각지에서 보내 준 사투리
김슬옹: 광고가 실리자마자 전국 각지에서 수집을 해서 편지지에다 깨알 같이 적어서 보냈던 거죠.
사전편찬회와 조선어학회의 업무 분담
1930년 1월 6일
'조선어연구회', '조선어사전편찬회' 간사들이 모여 다음과 같이 합의
어휘 수집, 풀이, 편집에 관한 일 : 조선어사전편찬회
조선어 철자법의 통일과 표준어 조사, 선정에 관한 일: 조선어학회
조선어 사전 편찬원
이극로, 이윤재, 한징, 김선기
'조선어사전편찬회'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휘 수집
주로 방언은 「한글」의 독자들과 방학 때 고향으로 가는 학생들에게 의뢰,
이후 편찬원들이 분담하여 풀이
「한글」
[자료 출처: 한글학회]
김슬옹: 표준어 사정이 1936년에 끝나요. 기적적으로 그때 끝나는데, 끝나고 나서 우리말, 조선말 사용과 교육을 금지시켜요.
표준어 사전이 끝난 후, 금지된 우리말 사용과 교육
1936년 10월 28일
'조선어 표준말' 발표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수난 시작
조선 여학생의 일기장이 문제가 되는데......
"오늘 국어를 썼다가 선생님한테 단단히 꾸지람을 들었다."
-영생여학교 박영희 학생의 일기-
일제는 민족주의 의식을 교육한 교사 정태진과 그가 관여했던 '조선어학회'회원 33명 체포
[자료 출처: 한글학회]
정태진을 포함한 주요 회원들은 10월 1일 새벽을 기하여 일제히 검거
1945년 광복과 함께 옥중에서 풀려난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다시 모여 사전 편찬 업무 시작
하지만 우리말 사전 편찬에 필요한 사전 원고는 흔적조차 사라지고......
이때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원고가 발견된다.
바로, 서울역 운성부 창고
어버이 주신 입
겨례에서 받은 붓을
어이 거저 두랴
헛되이 쓰랴
내 오직 임을 위하여
고이 바치리
-정태진, '한 생각' 중-
[자료 출처: 한글학회]
마침내 1947년 한글날 「조선말 큰사전」1권 간행
[자료 출처: 한글학회]
1957년까지 총 6권의 「조선말 큰사전」으로 완간
[자료 출처: 한글학회]
홍유: 오늘 출연해주신 소감을 들어볼텐데 이사님부터 부탁드려보겠습니다.
김슬옹: 사전은 우리말과 한글의 꽃이자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전을 통해서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나누는 것이니까요.
우리말을 지키고자 한 사람들의 헌신으로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역사
김슬옹: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모이와 (한글을 지켜 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홍유: 이사님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홍유: 마지막으로 마크 피터슨 교수님도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마크 피터슨: 계속해서 (한국학을 공부한 지) 59년 됐는데 (한국의 역사, 문화 등에 관심이 많아)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홍유: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교수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두 분 오늘 출연 너무 감사의 말씀드리고요, 힘든 시간 속에서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대가를 바라지 않고 희생하셨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말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과 마음을 모은 우리말 사전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자 산물
[자료 출처: 한글학회]
한글을 지켜 낸 조선어학회 33명
한징, 이윤재, 장지영, 윤병호, 김종철, 권닥규, 이강래, 이병기, 이우식, 안재홍, 이극로, 최현배, 김윤경, 김도연, 신현모, 정열모, 이희승, 김양수, 장현식, 이인, 정인승, 김법린, 안호상, 정태진, 이은상, 서민호, 정인섭, 김선기, 이석린, 권승옥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크다."
- 영화 '말모이' 대사 -
[자료 출처: 한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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