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요즈음은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사려면 '정육점'(精肉店)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이전에는 '푸줏간'으로 가야 했다. '정육점'이란 어휘가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1999)에서 '푸줏간'은 '쇠고기, 돼지고기 따위의 고기를 파는 가게'로, 그리고 '정육점'도 '쇠고기, 돼지고기 따위를 파는 가게'로 풀이되어 있다. 그래서 '정육점'과 '푸줏간'은 유의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푸줏간'이 '정육점'으로 대치되어 쓰이게 됨으로써, 이제 '푸줏간'은 사라질 위험에 처한 단어가 되었다.
'푸줏간'이 '푸주 + ᄉ + 간(間)'으로 분석될 것이라는 것쯤은 '방앗간, 기찻간, 마굿간' 등의 단어 구조를 떠올리면 금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ᄉ'과 '간(間)'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푸줏간'의 '푸주'는 원래 한자어였다. 15세기에 한자 '포주(廚)'로 쓰이었다. 그 한자음은 '포듀'이었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그러한 용례가 보인다.
그런데 이때의 '포듀'는 오늘날의 '고기 파는 가게'를 뜻하지 않고, '소나 돼지를 잡아 요리하는 곳'이란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그래서 '포듀'는 앞의 예문에서 보듯이 '포듀부억'으로도 사용되었다. '포'()는 '소나 돼지 등을 도살하는 곳', '듀'(廚)는 '도살한 고기를 요리하는 곳'이란 뜻이었다. 그래서 '포듀'는 '고기를 잡아 요리하는 곳'이었다. 『소학언해』에 보이는 ''와 '廚'의 주석문에서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가축을 도살하는 곳인 '도살장'과, 이를 사다가 요리하는 곳인 '음식점'이 따로 있는데, 예전에는 그것이 분업화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날처럼 고기만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란 뜻으로 쓰인 예는 19세기에 와서야 보인다.
이 '포듀'(廚)가 구개음화를 일으켜 '포쥬'가 되었다. 그리고 '포쥬'의 '쥬'가 '주'로 변화함으로써 '포주'로도 사용되었고, 한편으로는 '포'()의 음이 '푸'로 변화하여 '푸쥬' 또는 '푸주'로도 쓰이었다. '포'가 '푸'로 변화하는 시기는 19세기 말인 것으로 보인다. 「독립신문」에 '포주'와 '푸주'가 동시에 쓰이는 것으로 보아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한때 '포'가 '푸'로 쓰인 예로는 한자 '鋪'가 있다. 이 '포'는 '점포'의 '포'인데, 아마도 중국음으로 '푸'로 읽혔을 것으로 보인다.(鋪 역 푸 <훈몽자회(1527년)>)
결과적으로 15세기의 '포듀'가 오늘날 '푸주'로 어형이 바뀌었고, 그 뜻도 '고기를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로 변하였다.
그런데 이 '푸줏간'이 언제부터 '정육점'(精肉店)으로 변화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20세기 초기의 국어사전에는 '정육점'이 등재되어 있지 않다. 1960년대의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 바로 직전에 일본에서 들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일본어에서는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