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의 이해

숫자의 띄어쓰기(1)

 

이선웅(李善雄) / 서울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간혹 일반인들이 ‘98’을 ‘아흔 여덟’으로 적을지 ‘아흔여덟’으로 적을지에 대해 물어 올 때가 있다. 숫자의 띄어쓰기에 관해서 현행 ‘한글 맞춤법’ 제44항은 수는 ‘만(萬)’ 단위로 띄어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 단위로 띄어 쓰는 예는 다음의 (1가, 1나)와 같다.

(1) 가. 삼천이백사십삼조 칠천팔백육십칠억 팔천구백이십칠만 육천삼백오십사
나. 3243조 7867억 8927만 6354
다. 3,243,786,789,276,354
라. 삼천 이백사십삼조 칠천팔백육십 칠억팔천구백 이십칠만육천 삼백오십사
마. 삼천 이백 사십 삼조 칠천 팔백 육십 칠억 팔천 구백 이십 칠만 육천 삼백 오십 사

위의 예에서 (1다)처럼 숫자만을 쓰면서 쉼표를 넣는 경우에는 세 자리씩 끊어 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만약 국어에서 그에 맞춰 띄어쓰기를 한다면 수사 단위가 흐트러진다. 말하자면 (1라)와 같은 띄어쓰기는 인정하기 어렵다는 뜻인데, 왜냐하면 국어에서는 ‘(일), 만, 억, 조, …’ 단위로 수를 읽기 때문이다. 한편 십진법 단위로 띄어 쓰자는 주장은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해도 실제로는 (1마)와 같은 띄어쓰기가 되어 한눈에 보아도 비효율적일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위의 규정에서는 긴 숫자가 예시되어 있으나 짧은 단위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곧 (1가)에서 ‘육천삼백오십사’ 부분도 띄어 쓰지 않았는데, ‘98’을 ‘구십팔’ 혹은 ‘아흔여덟’으로 쓰지 않고 ‘구십 팔’이나 ‘아흔 여덟’으로 쓰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는 아주 당연한 듯이 보이나 실제로 일반인들이 자주 틀리는 사항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은행이나 거래 계약서 등에서 금액을 적을 경우에는 변조 등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붙여 쓰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이 경우 금액 뒤에 붙는 의존 명사인 ‘원’까지 붙여 쓸 수 있다. 다음 (2가)와 (2나)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2) 가. 일반적인 경우: 돈을 일억 삼천만(1억 3천만) 원 빌렸다.
나. 은행/계약서: 일억삼천만원(정)

한편 다음 (3)에서 보듯이 우리말 숫자가 아닌 아라비아 숫자 다음에 바로 단위성 의존 명사인 ‘원’이 나오면 붙여 쓸 수 있다.

(3) 7890 원 (원칙) / 7890원 (허용)

위 (3)에서 ‘7890 원’은 단어별로 띄어 쓴다는 띄어쓰기 규정을 그대로 따른 것인데, 우리의 띄어쓰기 관용에 따르면 아라비아 숫자 뒤에서는 이런 원칙적 방식보다는 ‘7890원’처럼 붙여 쓰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는 다른 단위성 의존 명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아래의 (4가)가 그러한 예이다.

(4) 가. 10개, 35명, 9미터, 600근, 1그램, 3년 6개월 20일간
나. 10 개, 35 명, 9 미터, 600 근, 1 그램, 3 년 6 개월 20 일간
다. 열 개, 삼십오(서른다섯) 명, 구 미터, 육백 근, 일 그램, 삼 년 육 개월

(4나)는 (4가)보다 ‘원칙적’이지만 실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4가)처럼 적고 있다. 한편 (4다)는 숫자를 우리말로 쓴 경우인데, 이때에는 붙여 쓸 수 없다. 다시 말해 ‘열개’와 같이 적지는 못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