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1세기의 한글】

현대의 한글 글자꼴

안상수 /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1.

  한글의 나이는 이제 올해로 550살 되었다. 이것은 라틴 알파벳이나 갑골문자에서 비롯된 한자의 역사 3천 년에 비하면 어린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한자나 영문 글자의 나이를 쉰 살로 잡는다면 한글의 나이는 10살에 해당될 것이고, 그것을 백 살로 본다면 한글의 나이는 스무 살에 해당할 것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그만큼 미숙한 것을 뜻할 수 있고, 또한 그만큼의 가능성을 머금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구나 한글 글자꼴을 얘기할 때 바로 이 나이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한글이 세계적인 글자임에도 한글의 글자꼴은 왜 이리 다양하지 못한가?”라는 질책 섞인 물음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우선 현대의 한글 글자꼴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는 한글 글자꼴의 상황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글 글자꼴 상황은 시간적인 면과 공간적인 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시간적인 관점이란 한글 글자꼴을 세계의 여러 글자꼴 가운데 두고 역사적으로 비교해 보는 것이 하나이고, 공간의 시점이란 현재 세계 글자꼴이라는 공간 속에서의 한글 글자꼴을 보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인구 58억 명 중에서 한글을 쓰는 사람은 남북한 모두 합쳐 7천만 명이지만, 영문 글자를 쓰는 이들은 유럽과 아프리카, 북미와 남미, 오세아니아, 그리고 아시아 일부 국가 등 약 25억 명의 사용자들이 세계를 덮고 있으며, 한자를 쓰는 중국과 일본의 인구 만도 13억 명이나 된다. 이에 비하면 한글은 어떠한가? 영문의 3-4퍼센트, 한자의 10퍼센트 정도가 한글의 사용자라고 대충 계산할 수 있다. 물론 수치적으로만 한글의 상황을 계산할 수야 없겠지만, 현실적인 한글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3억 명이 우리보다 5배 이상이 긴 세월 동안 한자 글자꼴을 발전시키는 가능성과 20억 명의 인구가 우리보다 5배 이상이나 긴 세월동안 영자 26자의 꼴을 발전시키는 것, 그리고 7천만의 한글 사용자가 한글꼴을 600년 동안 다듬어 발전시킨다는 것을 비교해보자. 그것은 시간적으로나 물량적으로 한글꼴은 다른 나라의 글자꼴에 비해 (특히 선진국에서 쓰는 라틴 알파벳과 오랜 역사를 지닌 한자에 비해) 그 절대 노력의 투입량이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으며, 그 만큼 우리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 역사가 짧고, 그 쓰는 사람이 작다는 것은 글자꼴을 말하는데 그 종류나 개발 저변이 다른 글자에 비해 뒤쳐진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2.

  한글 글자는 24자로 되어 있다. 홀소리 글자 10자, 닿소리 글자 14자가 그것이다. 이에 비해 영자는 26자이고, 가나는 50자, 한자는 수천 자이다. 그러나 한글이 과연 24자일까? 이것은 따져 봐야 한다. 본디 한글은 28자로 시작하였지만 신문법에 의해 4자를 버리고 24자로 정착하였다. 그러나 글자꼴로 보자면 그것은 쪽자가 24자라는 것이지 그 형태는 한글 24가지 쪽자가 조합되는 상황, 즉 그것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경우의 수 만큼이나 많다. 신문법에 의한 24자만이 아닌 고어까지 합치면 문제는 그 글자의 수효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이것은 모두 네모틀 글자꼴을 전제로 한 것이다. 글자가 네모틀 속에 들어가야 하니 그 모양은 정해진 네모틀의 시각 질서에 맞춰져야 하고, 그러기 때문에 글자의 조합 수효만큼이나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가’ 자와 ‘기’ 자의 기역은 얼핏 보아 같아 보이지만 그 형태는 다르다. ‘ㅣ’와 ‘ㅏ’자의 형태가 정해진 네모틀 속에서의 시각 질서를 위해 균형을 잡아야 하는 관계로 기역자의 형태가 미세하게 변하는 것이다. 그러니 네모틀의 개념으로라면 한글 글자꼴의 수효만큼이나 글자꼴 디자인이 필요한 것이다. 대개 이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사진식자기 시대에 한글 글자꼴 디자인은 흔히 쓰이는 1,600여 자 정도를 직접 그리고, 나머지는 별도로 만든 쪽자를 통해 서로 조합하여 나머지 경우에 대비하였다. 물론 현대 한글살이에서 많이 쓰이는 한글 글자야 대개 2,500자 정도라고 하지만, 글자살이 규모라는 것은 늘 늘어나기 마련이고, 옛 한글을 다루는 이들처럼 전문적인 분야로 들어가면 그 수효는 많이 불어난다.
  

3.

  또한 우리는 한글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글과 같이 한자, 영자, 일본 가나도 같이 사용하며, 수식이나 화학 기호, 약물(約物) 등도 같이 쓰고 있다. 결국 한글 글자꼴의 문제는 반드시 한글 글자꼴 그 자체로 국한된 것만은 아니고, 그 주변 글자도 넓게 보아 한글의 글자꼴의 영역 속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한글로 조판되어 있는 문자에서 영문이나 한자의 글자꼴이 어색하다면 그것은 곧 한글의 글자꼴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한글 글자꼴은 단순히 한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오늘날 우리의 글자 생활 환경은 점점 기계화되고 있다. 그 주역은 타자기에서 컴퓨터로 옮아온 지 오래다. 커다란 탁상 컴퓨터에서 이제 점점 소형화되어 휴대용 컴퓨터의 확산이 눈 앞에 닥치고 있다. 꼭 만년필을 주머니에 꼽고 다니듯 컴퓨터를 휴대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계화되는 글자 환경은 역시 글자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대개 글자꼴은 글자를 쓰는 도구의 영향을 결정적으로 받는다. 한글의 경우 붓의 사용으로 말미암아 오늘의 바탕체는 형성되었다. 필기 도구에 따라 서양 문화를 딱딱한 글씨 문화, 동양을 가리켜 부드러운 글씨 문화로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글자 생활은 붓 보다는 볼펜이나 기계화된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우리의 글자 모습은 이러한 필기 도구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게 될 것임은 뻔하다.
  
  컴퓨터의 등장은 우리의 언어 환경을 국제화·정보화 속으로 밀어 넣고 있고, 인터넷 등의 발달은 정보의 양을 급증시키고 있다. 정보의 양이 많아지고 다양화된다는 것은 곧 다양한 글자꼴이 요구된다고도 볼 수 있다. 다양한 문화적인 발전과 언어 환경의 국제화는 외국 글자꼴의 영향을 받기도 할 뿐만 아니라, 외국이나 혹은 다른 어떤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적합한 글자꼴이 점점 더 많이 필요해질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한글 글자꼴의 변화가 적다고 하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어떤 다양하고 특정한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글자꼴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5.

  그렇다면 한글의 글자꼴을 보기로 하자. 한글의 본디 글자꼴은 기하학적이었다. 그것은 한글 창제 당시 한자만을 사용했던 글자 환경으로 본다면 가히 혁명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거의 유일한 필기 도구인 붓에 기인한 형태로서 한자에 비한다면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한글꼴은 매우 현대적인 형태 특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형태는 어떤 면에서 문화적 도발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원리적이고 현대적인 형태는 한자의 구조와 그 필기 도구인 붓으로 말미암아 네모틀로, 그리고 유연하게 변해 갔다.
  

6.

  한글 글자꼴의 놀라운 점은 시스템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한글은 초성 17자, 중성 11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글 초성 17자는 아(어금니), 설(혀), 순(입술), 치(이), 후(목구멍) 다섯 자를 기본으로 그 기본꼴에 줄기를 더하여. 덧붙임(ㄱ>ㅋ, ㄴ>ㄷ>ㅌ, ㅁ>ㅂ>ㅍ, ㅅ>ㅈ>ㅊ, ㅇ>ㆆ>ㅎ)과 변형(ㄱ>ㆁ, ㅈ>△, ㄴ>ㄹ), 연서(ㅱ, ㅸ, ㅹ, ㆄ), 병서(ㄲ, ㄸ, ㅃ, ㅆ, ㅉ, ㆅ, ㅥ, ㆀ; ㄳ, ㄵ, ㄶ, ㄺ, ㄻ, ㄼ, ㄽ, ㄾ, ㄿ, ㅀ, ㅄ, ㅧ, ㅨ, ㅪ, ㅬ, ㅭ, ㅮ, ㅯ, ㅰ, ㅲ, ㅳ, ㅶ, ㅷ, ㅺ, ㅻ, ㅼ, ㅽ, ㅾ, ㆂ, ㆃ; ㅩ, ㅫ, ㅴ, ㅵ) 등으로 그 꼴이 디자인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매우 용의주도한 것으로서 한글꼴 디자인에 기본으로 삼아야 하는 사실로 두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또한 홀소리 글자의 구성 원리를 보면 닿소리 글자의 구성 원리와 비슷한데 다만 상형(象形)의 대상을 바꿨을 뿐이다. 초성자는 구체적 발음기관을 대상으로 따온 반면, 홀소리 글자는 추상적 개념을 상형의 대항으로 삼은 점에 차이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초성자는 한자의 상형자의 구성 원리와 같고, 중성자는 지사(指事)자의 구성 원리와 같다고 하겠다.1) 즉, 기본형인 ㆍ(하늘), ㅡ(땅), ㅣ(사람)을 두고, 그 기본 글자를 둘씩 결합하여 초출(初出)자 ㅗ, ㅏ, ㅜ, ㅓ를 만들고 여기에 ㆍ를 더하여 재출(再出)자 ㅛ, ㅑ, ㅠ, ㅕ 네 자를 만들었다. 더 나아가 2자 합용인 ㅘ, ㅚ, ㅝ, ㅟ, ㅢ, 3자 합용인 ㅙ, ㅞ, ㅒ, ㅞ, ㆇ, ㆈ, ㆉ, ㆊ, ㆋ, ㆌ 등을 만들었다. 얼마나 체계적인 발상인가?
  

7.

  놋쇠활자, 납활자 시대에서 사진술의 등장은 사진식자 시대를 열었고, 이어서 컴퓨터의 등장은 활자의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탈 시대로 바꿔 놓았다. 글자 생활의 기계화. 이제껏 글자를 디자인하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다름 아닌 네모틀의 문제였다. 똑같은 네모틀 공간에서 획의 다소에 관계없이 똑같이 보여야 한다는 제한 때문에, 또 수 천 자나 되는 활자 원도를 일일이 그려내어 한 자 한 자의 조형적 표현을 세련되게 하는 비결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것은 천부적인 재능과 십수 년의 전문적인 수련을 통해야만 그 비결을 터득하게 되고, 또 한글을 완성형 수대로 전부 손으로 그려내야 하기에 거기에 드는 노동력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컴퓨터로 인한 글자꼴 개발 도구의 발달은 글자 디자인에서 편집과 데이타의 응용을 손쉽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가’자를 쓰고, ‘가’자를 복사하여, ‘ㅏ’의 곁줄기를 떼어 내고 다시 ‘ㅣ’자를 만들거나, ‘ㅏ’의 곁줄기를 떼어 반대편 쪽에 붙인 다음 그것을 수정하여 ‘ㅓ’자를 만드는 것이 컴퓨터 시대에 글자꼴을 디자인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과거 납활자 시대나 사진식자 시대에 활자 원도를 일일이 손으로 베껴 한 자 한 획을 그려야 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고도의 프로그램 지원으로 두께를 일괄적으로 두텁게 한다든지, 경사진 ‘빗김’꼴(斜體), 그림자꼴, 윤곽선꼴 등을 만든다든가 하는 것은 명령 키 하나 만으로 가능하게 되었으니 그 개발 속도는 상당히 빨라졌고, 또 앞으로도 빨라질 것이다.
  
  이같이 기술의 발달로 글자 디자인의 개발 환경은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며, 그 속도가 빨라지고, 예전에 어려웠던 일이 많이 해결되었기에 글자꼴 디자인에 섯불리 손대기를 꺼려하던 디자이너들이 많이 참여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더우기 탈네모틀의 조합형적 글자꼴 디자인이 대두되고 그 확산속도도 빨라지게 됨은 전에 없던 많은 글자꼴의 탄생이 속속 이어지고 앞으로 대거 새로운 글자꼴의 탄생이 예견된다.
  

8.

  그러나 아쉬운 것은 현재까지도 글자꼴에 대한 저작권이 법에 의해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글자꼴을 디자인하는 것은 엄연한 창작 행위이며, 그에 따라 생산된 글자꼴이란 창작물임에도 불구하고 글자꼴은 아직 지적 재산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만든 글자꼴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불법 복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러한 환경은 뜻 있는 신진들의 진출을 더디게 하는 요인도 제공하게 되어 넓게 보아 한글 글자꼴 발전에 걸림돌로 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오늘날 한글 글자꼴의 발전을 위해 저작권의 보호는 시급하다고 본다.
  

9.

  현대 한글 글자꼴에서 예상할 수 있는 개발 방향은 앞서 지적한 바 대로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전개될 것이다. 하나는 기존의 네모틀 글자꼴에서의 발전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네모틀에서 벗어난 탈네모틀 글자꼴로의 발전이 그것이다. 네모틀 한글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자연스럽게 한자의 골격과 필기 도구인 붓의 영향으로 그 꼴이 완성형 형태로 형성되어 온 결과이고, 탈네모틀 한글은 글자 기계, 곧 타자기와 컴퓨터의 출현 이후 한글꼴의 특성 구조를 합리적으로 파악하여, 거꾸로 그 결과를 조합형의 형태로 글자 디자인에 응용한 꼴이라 볼 수 있다.
  

      9.1. 탈네모틀 글자꼴 (그림)

  탈네모틀 한글꼴은 한글의 제자 원리에 기초한 것으로, 쪽자가 어울려 구성되는 원리를 따라 조합 구성적인 디자인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탈네모틀 글자는 네모틀 글자에 비해 앞으로 여러 가지 새로운 모색이 예상된다. 예를 들어 지금 현재 나와 있는 탈네모틀 글자꼴들은 이른바 ‘빨래줄’ 글씨들이 많다. 곧 윗선을 맞춘 채 아래가 들쭉날쭉한 글자꼴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는 윗선 맞추기, 중심선 맞추기, 아랫선 맞추기 등으로 그 구조의 변화 실험이 예상된다.
  
  또한 그 구조에서 각 쪽자의 위치 변화의 묘도 예상된다. 이를 테면 필자가 개발한 ‘안상수체’의 경우 받침의 위치는 홀소리 글자의 정중앙 아래에 온다는 원칙이 적용되어 있다. 그러나 그 받침을 닿소리 글자와 홀소리 글자가 합쳐진 민글자 가운데 밑으로 오게 한다든가 하는 것은 그 변화의 한 예에 속한다. 따라서 글자 내부의 쪽자 위치의 변화는 글자꼴의 인상을 다르게 하며, 이러한 구조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한글 글자꼴이 실험될 것이라고 본다. 구조의 변화의 극단은 풀어쓰기에 있을 것이다. 필자는 풀어쓰기 역시 한글 글자꼴 표현 가능성의 범주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탈네모틀 한글 글자꼴은 전통적 네모틀 글자꼴에 익숙해진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경함을 초기에 주었으나 이제 보편화되어, 글자의 독서 흐름에 리듬을 주어 가독성과 변별력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9.2. 네모틀 글자꼴

  네모틀 글자꼴의 경우 모든 일반 사람들의 전통적인 취향에 맞는 글자꼴이며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다듬어진 글자꼴이기에 그것의 발전은 계속되리라 보며 글자꼴의 기본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글자꼴의 세부 관점으로 본다면 바탕체와 돋움체 계열에서 그 변화의 폭이 커질 것이며, 광고 제작 등 특수한 분야의 사용 목적을 위한 글자꼴들이 개발될 것이다. 돌기의 변화나 줄기의 표현이나 그 굵기의 변화 등을 이용하여 다량의 글자꼴들이 개발되리라 보며 컴퓨터의 도움으로 그 글자꼴 개발의 강도가 세어질 것이다.


10.

  독일 사람 허버트 바이어나 얀 치홀트, 화란인 빔 크로웰은 영문 글자꼴에 대한 실험적 디자인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그림 참조) 우리는 어떤 면에서 한글에 대한 새로운 실험에 인색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글이라는 글자를 지나치게 한글을 옭아 맬 필요는 없다고 보며 가능성의 시각을 한껏 펼쳐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한글이 시스템적으로 완벽한 조형과 구조를 지닌 것은 그것을 펼쳐 갈 수 있는 장점이 된다. 따라서 한글의 꿈의 각도를 넓혀 놓아야 하는 것이다.
  
  외솔 선생은 영어의 ‘L’ 발음을 ‘ㄹㄹ’로, ‘F’ 발음을 ‘ㅍ’ 아래쪽에 방점을 찍어 표기한 적이 있다. 또한 이현복 교수는 한글의 소리 표현 기호로서의 탁월함을 인정하여, 한글꼴을 기본으로 한 만국 발음 기호를 만들기도 하였다. 한글 글자꼴의 관점에서 보아 이러한 전진적인 실험의 예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른 한 가지 미국의 예로 이니셜 티칭 알파벳(Initial Teaching Alphabet)이 있다.(그림) 그것은 처음 영어를 배우는 어린이를 위한 특수한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한글꼴도 이러한 예에 비추어 특수한 목적을 위한 글자꼴을 개발할 수도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한글을 처음 배우는 어린이를 위한 한글 글자꼴이라든가 또는 고속도로 표지판 용 특수문자라든가 하는 것은 그 예에 속할 것이다.
  

11.

  한글 글자꼴을 발전시키는 것은 곧 우리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글자란 바로 그 나라 문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글자에 의해 담겨지고 계승되면 발전한다. 일종의 문화의 형식 매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글 글자꼴의 개발은 무엇보다도 우리 문화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글 글자꼴의 발전은 새로운 시각의 개발과 미래 지향적인 실험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기초 기반적인 연구와 투자는 물론이지만,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제시하는 글자꼴 연구에 대한 일련의 노력이 줄기차게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글의 나이에 걸맞는 젊은 에너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안상수체>. 안상수. 1985


2. <이상체>. 안상수. 1991


3. <미르체>. 안상수. 1992


4. <마노체>. 안상수. 1993


5. 학생 작품(손익원). 1995


6. 학생 작품(정영웅). 1995


7. 얀 치홀트(Jan Tschichold)의 영문 알파벳 디자인(1926~1929)


8. 허버트 바이어(Herbert Bayer). 음절에 대한 음성기호 디자인(1959).
미래의 알파벳 발달의 언어학적 가능성이 글자꼴 결합에 의해 생성되는 소리를 나타낼 수도 있는 이음글자(ligature)의 창안을 통해 모색하였다.


9. 빔 크로웰(Wim Crouwell)이 텔레비젼 스크린을 위해 만든 영문 알파벳 디자인(1966). 신선하고 냉담한 아름다움이 있다.


10. 이니셜 티칭 알파벳(Initial Teaching Alphabet).
처음 영문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위한 특수 알파벳. 각 글자는 발음기호 모양으로 병형되었다.

참 고 문 헌

유창균(1969), “문자론”, 국어학 개설, 한국어문학회 편, 서울:형설출판사.
현대의 한글 글자꼴 129
현대의 한글 글자꼴 131
현대의 한글 글자꼴 133
현대의 한글 글자꼴 135
현대의 한글 글자꼴 137
128 새국어생활 제6권 제2호(’96년 여름)
130 새국어생활 제6권 제2호(’96년 여름)
132 새국어생활 제6권 제2호(’96년 여름)
134 새국어생활 제6권 제2호(’96년 여름)
136 새국어생활 제6권 제2호(’96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