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1세기의 한글】

문자 생활과 한글

정동환 / 협성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 머 리 말

  온 세계 인류가 쓰고 있는 말은 3천여 가지가 되고 글자는 60여 가지가 되는데, 누가, 언제 만들었으며, 어떻게 만들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글자는 우리 한글밖에 없다. 얼마전 미국의 과학 잡지 ‘디스커버’ 6월호에서 한글을 극찬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글은 ‘세계에서 과학적인 글자’이며 쓰기에 있어서도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어 한반도의 문맹률을 매우 낮추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글자를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글자인 ‘한글’만으로 문자 생활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이 있었다.
  우리 겨레는 글자가 없었을 때에 오랫동안 중국의 글자인 한자를 빌려 써 왔다. 그 이후에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여 우리 민족은 비로소 독창적인 우리의 글자를 갖게 되어 겨레의 역사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 우리의 문자 생활이 한자에 의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우리의 글자인 한글과 남의 글자인 한자의 이중적인 문자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리의 문자 생활에는 한자(한문)만 쓰는 방법, 한글에다 한자를 섞어 쓰는 방법, 한글만 쓰는 방법이 있었다. 세상이 열리고 민주 사회로 나아감에 따라 한자(한문)만 쓰는 방법은 대중들의 문자 생활에서 없어졌으며, 지금은 한글에다 한자를 섞어 쓰는 방법, 한글만 쓰는 방법이 함께 쓰여지고 있다.1)
  이 글은, 우리 문자 생활의 흐름을 통해 한글이 어떠한 위치에서 어떻게 쓰여 왔는지 살펴보고, 인쇄 매체를 통한 문자 생활과 개인의 필요에 따른 문자 생활로 나누어 분석함으로써, 문자 생활의 실태를 파악하여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2. 문자 생활의 흐름

  문자 생활의 모습은 문자 정책이 달라질 때마다 자주 바뀌곤 했다. 문자 생활의 흐름을 알아보기 위해서 광복 후 문자 정책의 변천을, ‘한자 사용 폐지’ 결의, ‘한글 전용법’ 공포, ‘한자 일부 사용’ 채택, ‘임시 제한 한자 일람표’ 제정, ‘한글 전용 적극 촉진에 관한 건’ 의결 및 ‘한글 전용 실천 요강’ 시행, ‘한글 전용 특별 심의회 규정’ 마련, 초등·중등 한자 섞어 쓰기, ‘한글 전용 계획’ 의결 및 ‘한글 전용 촉진 7개 사항’ 지시, 초등·중등 학교 교과서 한글 전용, 한문 교육 보강, 중·고교 교과서 한자 병용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한자 사용 폐지’ 결의
  광복 후 미 군정청 학무국은 1945년 11월에, 사회 각계 지도자 80여 명으로 ‘조선교육심의회’를 구성하였는데, 주로 조선 교육이 나아가야 할 교육의 지표를 세우고 각종 교육 문제를 협의하였다. 10개 분과 위원회 가운데 ‘교과서분과위원회’에서는 문자 정책에 대하여 토의하였는데, 교과서에 사용되는 글자에 대하여 “한자 사용을 폐지하고, 초등·중등 학교의 교과서는 전부 한글로 하되, 다만 필요에 따라 한자를 도림(괄호) 안에 적어 넣을 수 있다.”고 결의하였다.
  이에 교과서에서의 한자 폐지안이 미 군정청 학무국에 보고되었고, 1945년 12월 8일 미 군정청은 ‘조선교육심의회’의 결의를 존중하여 한글 전용에 대한 사항을 공표하였다.2) 이 때부터 각 학교의 모든 교과서는 한글 전용에 가로 글씨로 나오게 되었는데, 이것이 광복 후 우리 나라 최초의 한글 전용에 대한 공식 조치였다.
   (2) ‘한글 전용법’ 공포
  조선어 학회(한글 학회)에서는 ‘한글 전용법’의 제정을 위하여 ‘한글 전용법 제정 촉구 건의서’, ‘한글 전용법 제정 촉구 성명서’ 등을 발표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1948년 9월 29일 국회의원 139명이 연서한 ‘한글 전용법안’이 국회 문교후생위원회에 제출되었고, 국회 제78차 회의에서 재석 131명 중 86 대 22로 ‘한글 전용법’이 가결되었다. 이에 정부는 1948년 10월 9일 한글날에 국회의원과 관민·학생 다수가 참석한 자리에서, ‘한글 전용법’(법률 제6호) 공포식을 성대히 베풀었다(한글 학회, 1971:422~423). 이리하여 한글 전용은 법적인 명분을 갖추게 되었고, 교과서는 한글 전용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3) ‘한자 일부 사용’ 채택
  1949년 11월 25일 25명의 국회의원은 “국민학교 졸업생들이 신문·잡지를 읽을 수 없으니, 국민학교 교과서에 간이 한자를 쓰고, 신문·잡지에는 한자를 제한하여 쓰도록 하자.”는 요지의 ‘한자 사용 건의안’을 국회에 발의하였다. 더욱이 1950년 5월 국무회의에서는 한자 쓰기에 대한 토의를 하여 한글 전용법을 버리고 “각의에 따라 한자를 섞어 쓰기로 하라.”는 통첩을 내려, 관공서 관계의 한글 전용 촉진 운동은 중단 상태에 이르렀다. 따라서 문교부는 조사·검토한 후 1951년 9월 신학년도부터 사용되는 4학년 이상의 교과서에 ‘교육 한자 1,000자’를 도림 속에 넣어 교사들의 교수에만 이용되도록 하였다.
  
   (4) ‘임시 제한 한자 일람표’ 제정
  문교부는 국어특별심의위원회 한문분과위원회의 심의와 임시 총회의 결정을 거쳐 ‘교육 한자’에 신인정 한자 300자를 추가하여 1,300자로 된 ‘임시 제한 한자 일람표’3) 를 1957년 11월 18일 제정하였다.
  
   (5) ‘한글 전용 적극 촉진에 관한 건’ 의결 및 ‘한글 전용 실천 요강’ 시행
  1956년 10월 9일 510돌 한글날에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여 무엇보다도 신문·잡지가 순 한글로 찍혀 나와야 한다고 담화를 발표한 데 대하여, 한글 학회는 환영을 표시하고 한글 전용법 등 ‘단서’ 삭제를 골자로 한 ‘한글 전용 실현 방안’ 건의서를 대통령에게 내었다. 그 뒤 1957년 12월 6일 제117회 국무회의에서 ‘한글 전용 적극 촉진에 관한 건’4) 이 의결되었다. 이에 국무원 사무처는 대통령 담화문과 함께 ‘한글 전용 실천 요강’5) 을 1957년 12월 29일 시달했으며, 이를 1958년 1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내무부는 ‘한글 전용 실천 요강’에 따라, 1958년 8월 21일부터 27일까지를 ‘한글 간판 권장 운동 기간’으로 정하고, 한글 간판 써 붙이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해 짧은 시일 안에 중국 음식점을 제외한 상가의 간판을 거의 한글로 갈아 써 붙이게 했다. 또 문교부는 전국 중·고등 학교장에게 학생들의 한자로 된 모표, 단추 등을 한글로 고치라는 권고를 하고 한글만 쓰기를 촉구했다.
  
   (6) ‘한글 전용 특별 심의회 규정’ 마련
  5·16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는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1962년 3월부터 모든 간행물에서 한글 전용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였으나 반대 여론에 부딪혀 미루었다. 이에 1962년 2월 5일 문교부 안에 ‘한글 전용 특별 심의회’6) 를 설치하고, 1962년 4월 17일에 ‘한글 전용 특별 심의회 규정’을 마련하였으며, 1963년 7월까지 주로 한글 전용을 위해 어려운 한자말이나 외래어를 쉬운 말로 바꾸는 심의 활동을 하였다.
  
   (7) 초등·중등 학교 교과서에 한자 섞어 쓰기
  문교부는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1963년 12월 15일 교육 과정을 전면적으로 개편하고, 국민 학교 4학년 이상 초·중·고교 국어과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 쓸 계획을 세웠다. 문교부가 20년간 한글만을 써 오던 교과서를 갑자기 한자를 섞어 쓰게 계획한 것은 국민 학교의 제2차 교육 과정 중 국어과 4학년 ‘읽기’에 “일상 생활에서 쓰는 한자·숫자·로마자와의 구별을 안다.”는 목표에 따른 것이다. 이에 문교부는 1964년 7월 연차적으로 개편되는 교과서에 국민 학교 600자, 중학교 400자, 고등 학교 300자 모두 1,300자의 상용 한자를 단계적으로 넣도록 하였다. 따라서 국민 학교 국어과 교과서는 1965년 3월부터, 중등 학교는 1966년 3월부터 한자 섞어 쓰기를 실시하였다.
  
   (8) ‘한글 전용 계획’ 의결 및 ‘한글 전용 촉진 7개 사항’ 지시
  한글 전용·한자 혼용 찬반 여론으로 복잡한 상황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국무총리에게 연차적으로 한글 완전 전용이 이루어지도록 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하여, 약 5개월 동안 문교부, 문화공보부, 총무처 등 관계 기관이 공동 작업을 했다. 이에 1968년을 제1차 연도로 하여 1972년까지 한자를 완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한글 전용 5개년 계획안’을 만들어 1968년 3월 14일 국무회의에 제출하였는데, 1968년 5월 2일 국무회의에서는 ‘한글 전용 계획’이란 이름으로 고쳐 의결한 뒤 정부안으로 발표했다. 그후 1968년 10월 25일 박 대통령은 국무총리 및 관계 장관으로부터 공동 보고서인 ‘한글 전용 추진 계획’을 보고 받고, ‘한글 전용 촉진 7개 사항’을 지시하였다. 이 지시는 1970년도부터 입법·사법의 모든 문서에 한글 전용을 실시하라는 강력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법원행정처도 ‘등기·호적 사무의 한글 전용 기본 방침’을 수립했다.
  
   (9) 초등·중등 학교 교과서 한글 전용
  1968년 10월 25일 ‘한글 전용 촉진 7개 사항’ 지시에 따라, 1968년 11월 ‘교육 한자’ 1,300자가 폐지되고 교과서 한자 혼용은 1970년 3월 1일부터 한글 전용으로 바뀌어 1975년 2월까지 계속되었다.
  
   (10) 한문 교육 보강
  1970년 1월 1일부터 법규 문서를 포함한 모든 공문서와 등기·호적이 모두 한글 전용을 하게 되자, 한자 혼용을 주장하는 측은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측과 맞서 치열한 논쟁을 했다. 이에 문교부에서는 한글 전용 정책의 보완으로서 한문 교육을 보강하여, 중학교에서는 1972년 9월, 고등 학교에서는 1974년 12월 종전까지 국어과에 포함되었던 ‘한문’을 독립 교과로 신설하였다. 더욱이 1972년 8월 17일에는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1,800자를 제정 공포하였다.
  
   (11) 중·고교 교과서 한자 병용
  문교부는 1974년 7월 11일 중·고교 국어과 교과서에서 한자를 병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고, 1975년 3월부터 중·고교 국어과 교과서(중학교 900자, 고등학교 1,800자)에서 한자를 병용하였다. 그 이후 중학교의 국어, 도덕, 고등 학교의 국어에서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를 병용하여 지도하고 있고, 국민윤리, 정치경제, 사회문화, 인문지리, 국토지리, 국사, 세계사, 체육, 미술, 가정, 가사 등의 교과서에는 약간의 한자를 병용하고 있다.
  
  문자 생활의 흐름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 나라 문자 정책의 변천을 살펴보았다. 위에서 제시한 내용을 분석해 보면, 우리는 한자 병용, 한자 혼용, 한글 전용을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일관성 없는 문자 생활을 해 왔다.
  광복 후 4년 동안 초등·중등 학교의 교과서는 한글 전용이었는데, 1951년 9월부터 1965년 2월까지 초등 학교 4학년 이상의 국어과 교과서에서는 한자가 병용되었고, 1965년 3월부터 1970년 2월까지 초등 학교 4학년 이상의 국어과 교과서에서 한자가 혼용되었다. 1970년 3월 1일부터 1975년 2월까지 초·중·고교 국어과 교과서는 모두 한글 전용이었고, 1975년 3월부터는 중·고교 국어과 교과서에서 한자 병용이 이루어졌다. 또 교육부는 초등 학교에서 한자를 폐지하는 대신 중학교에서는 1972년 9월, 고등 학교에서는 1974년 12월 ‘한문’을 독립 교과로 편성하였다. 그후 제5차 교육과정(1990.3.1.시행)과 제6차 교육과정(1996.3.1.시행) 확정 고시를 전후하여, 초등 학교 교과서의 한글 전용·한자 병용·한자 혼용에 대하여 논란이 많았으나, 정부는 ‘한글 전용 정책과 한문 교육 강화 정책의 병행’7) 이라는 방침을 지켜 초등 학교 교과서는 한글 전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동안 학교 교과서의 한글 전용·한자 병용·한자 혼용은 학교 교육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자 생활과 연결되어 격렬한 논쟁을 벌여 왔다. 그러나 광복 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문자 생활은 어떠한가? 세상이 열리고 민주 사회로 나아감에 따라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우리말을 가장 자유롭고 완벽하게 적을 수 있는 글자는 한글이라는 것과 한글은 조직적이고 과학적이어서 읽고 쓰고 기계화하기에 간편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한글은 대중화, 속도화, 정보화, 기계화로 치닫게 되어 신문, 잡지, 문학 작품 등 출판물이 한글 전용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제는 한글 전용이, 초·중·고등 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출판물에 한글 전용을 실시해야 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로 정책의 방향이 바꾸어져야 한다고 본다.
  

 3. 인쇄 매체를 통한 문자 생활

  정보 시대에 접어들면서 각종 책·간행물·신문·공문·광고 등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인쇄 매체를 통해 읽는(보는) 문자 생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의 문자 생활과 가장 밀접하다고 생각하는 신문, 정기 간행물, 소설·교양 서적을 중심으로 한글이 어떻게 쓰여 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3.1. 신문에서의 ‘한글’

  신문은 나라 안팎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새로운 정보를, 공정하고 신속하게 전달하는 인쇄 매체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 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정보도 얻고 사회 여러 분야의 안목도 넓혀 비판 의식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신문을 읽는 것이 하루의 일과 중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글·한자의 이중적인 문자 생활이 신문에는 어떻게 나타났으며, 더욱이 ‘한글’은 어느 정도 쓰였는지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고 본다.
  1883년 10월 1일에 창간된 우리 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 순보’는 한문만으로 발간되었는데 갑신 정변으로 정간되고, 1886년 12월 21일에 나온 ‘한성 주보’는 처음으로 한글을 섞어 쓴 특기할 만한 신문이었다. 인쇄 시설과 기계를 마련하면서 한글 활자도 구입하여 한글을 섞어 쓴 것은 개화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성 주보’에 씨앗을 뿌린 한글 신문의 열망은 1896년 ‘독립 신문’의 발간에서 그 꽃을 피운다. ‘독립 신문’은 “우리가 이 신문을 모두 한글로 쓰는 것은 남·녀, 상·하, 귀·천이 모두 보게 함이오, 또 구절을 떼어 쓰는 것은 알아보기 쉽도록 함이다.”(창간호의 논설)라고 하여 정보의 보급을 강조하였으며, 매체로서 쉬운 글인 한글만 쓰기를 실천하였다. 1898년 9월 ‘황성 신문’이 개화 독립을 주장하면서도 한자 혼용으로 돌아가고, 1910년 한글 신문이던 ‘제국 신문’의 폐간과 함께 한글 신문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후 일제의 문화 정책에 의하여 1920년부터 창간하게 된 ‘동아 일보’, ‘조선 일보’는 ‘황성 신문’의 한자 혼용을 그대로 따랐고, 사회면만 한글을 썼으며, 한글 신문은 해외에서 발간되는 몇몇 신문에서만 명맥이 유지되었다.
  광복 이후 1948년 한글 전용법이 공포되었지만 신문은 한자 혼용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시대의 요청에 따라 점차 부분적으로 한글만으로 된 신문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신문 체제에 있어서도 세로짜기에서 가로짜기로 바꾸어 가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1945년에 발간한 ‘호남 신문’은, 1947년 8월 15일부터 최초의 가로짜기 신문으로 체제를 바꾸고, 제2면 사회·지방 기사는 거의 한글을 써서 당시에 비판의 여론도 많았다. ‘호남 신문’의 편집 체제는, 1956년 11월 한자 혼용으로 되돌아가긴 했지만 한글 전용·가로짜기 시대를 앞당기는 획기적인 창안이었다.
  1953년 6월 15일 발간한 ‘연세 춘추’를 시작으로, 대학 신문은 한글 전용·가로짜기에 큰 역할을 하였는데 1971년 ‘중대 신문’이 참여한 이후 현재 몇 개 신문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대학 신문이 한글 전용·가로짜기를 하고 있다. 대학 신문은 전문인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있었으나, 일간 신문이 한글 전용·가로짜기 체제로 나가도록 하는데 숨은 공로자 노릇을 했다.
  1980년대에 접어 들면서 신문은 엄청난 전환기를 맞았다. 1985년 6월 22일 한글 전용·가로짜기의 새로운 체제로 탈바꿈한 ‘서울 신문’, ‘스포츠 서울’이 젊은 독자층을 끌어들이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고, 1988년 5월 ‘한겨레 신문’이 다시 한글 전용·가로짜기로 창간함으로써 한글 신문 시대는 커다란 획을 긋게 된다. 이 기운은 다시 이어져, 1995년 10월 9일 ‘중앙 일보’가 전면 가로짜기로 신문 체제를 바꾸면서 한국 신문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오랫동안 한자 혼용을 주장하고 있는 가장 보수적인 일간 신문도, 광복 이후 1948년부터 1996년 현재까지 한글과 한자를 어떤 비율로 사용하여 왔는지를 살펴보면, 다음 <표 1>과 <표 2>8) 에 나타난 바와 같이 1996년에 와서는 거의 한글 전용 신문에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표 1> 신문 기사 제목의 한글과 한자 사용 비율 변화
       연도  
    면       글자
1948 1953 1958 1963 1968 1973 1978 1983 1988 1993 1996
정치면 한글  4.3  7.9 13.8 25.2 43.2 42.6 42.5 66.0 71.1 78.2 81.5
한자 95.7 92.1 86.2 74.8 56.8 57.4 57.5 34.0 28.9 21.8 18.5
경제면 한글 16.0 24.1 37.4 64.3 74.9 34.3 55.2 90.0 73.6 88.7 93.8
한자 84.0 75.9 62.6 35.7 25.1 65.7 44.8 9.2 26.4 11.3  6.2
사회면 한글 16.7 33.8 51.2 45.3 55.9 52.2 60.4 75.0 76.1 85.4 91.2
한자 83.3 66.2 48.8 54.7 44.1 47.8 39.6 25.0 23.9 14.6  8.8
문화면 한글 15.4 22.1 29.4 23.5 51.8 50.9 71.1 72.1 82.2 91.1 96.7
한자 84.6 77.9 70.6 76.5 48.2 49.1 28.9 27.9 17.8  8.9  3.3
종  합 한글 13.1 18.9 27.4 29.1 46.1 45.2 57.3 70.0 75.8 85.9 90.8
한자 86.9 81.1 72.6 70.9 53.9 54.8 42.7 30.0 24.2 14.1  9.2


 
<표 2> 신문 기사 내용의 한글과 한자 사용 비율 변화
       연도  
  면
          글자
1948 1953 1958 1963 1968 1973 1978 1983 1988  1993  1996
정치면 한글 30.2 37.7 39.6 58.4 72.7 70.7 91.7 90.8 89.8  93.1  95.4
한자 69.8 62.3 60.4 41.6 27.3 29.3  8.3  9.2 10.2 6.9 4.6
경제면 한글 50.2 51.8 31.8 45.3 55.9 69.5 93.8 97.0 98.1  98.3  98.5
한자 49.8 48.2 68.2 54.7 44.1 30.5  6.2  3.0  1.9 1.7 1.5
사회면 한글 97.3 96.7 93.8 78.2 94.0 95.3 98.1 98.2 97.2  97.6  98.0
한자  2.7  3.3  6.2 21.8  6.0  4.7  1.9  1.8  2.8 2.4 2.0
문화면 한글 95.9 97.6 75.7 78.7 85.9 89.4 98.8 98.9 99.7  99.6  99.8
한자  4.1  2.4 24.3 21.3 14.1 10.6  1.2  1.1  0.3 0.4 0.2
종  합 한자 31.6 25.7 36.3 30.1 18.1 18.8  4.4  3.8  3.8 2.8 2.1

  우리 나라 신문의 자취를 ‘문자 생활’에서만 본다면, 전에는 못 배운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배운 사람과 잘 사는 사람만을 신문의 독자로 생각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가장 중요한 신문의 사명을 저버린 행동이었다. 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문 기사 제목과 내용의 한글·한자 사용 비율을 합쳐 보면 한글이 94.4%나 된다. 한글 전용과 가로짜기에 대한 국민들의 여망을, 이제 신문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와 있는 것이다.


       3.2. 정기 간행물에서의 ‘한글’

  광복 이후 최초로 창간된 ‘조선 주보’로부터 1950년까지, 정기 간행물은 231종으로 기록되어 있고, 1960년대에 이르러 문학지, 여성지, 대중지, 학생지, 종합지, 계간지, 전문지, 종교지 등의 다양한 정기 간행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무려 1천 400여 종이 되었다고 한다(이중한, 1995:59). 이 때 정기 간행물의 편집 체제는 모두 한자 혼용·세로짜기였기 때문에, 제목도 대부분 한자로 되어 있었다.
  1978년부터 컴퓨터 조판 기술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납으로 만든 활자를 쓰던 종래의 인쇄 기술에서 벗어나려고 출판업계가 노력을 하였다. 그 결과 1981년 금성출판사, 동아출판사 등이 컴퓨터 조판 시설을 도입하면서 컴퓨터 제작 시스템(CTS) 방식의 본격적인 컴퓨터 출판 시대가 열린 것이다. 조판 시설의 컴퓨터화는, 한글 세대가 독서의 중심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시작된 한글 전용·가로짜기 추세와 맞물려, 전통적인 출판 제작·편집 기술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출판 공정의 컴퓨터화가 실현됨으로써 1980년대부터 한글 전용·가로짜기의 정기 간행물이 급격히 늘어났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각종 기업체에서는 회사 홍보와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하여 ‘사보’를 출판하기 시작했다. ‘사보’는 처음부터 한글 전용·가로짜기로 출판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발 맞추어 표지의 이름을 한자로 내던 곳에서도 한글로 바꾸기 시작했다. 국회 도서관 정기 간행물실에서 표지의 이름을 중간에 한자에서 한글로 바꾼 것을 대표적인 것만 살펴보면, 다음 <표 3>에 나타난 바와 같이 많이 나타남을 실감할 수 있었다.
  
<표 3> 책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다가 한글로 바꾼 정기 간행물
책 이 름 발행한  곳 책이름을 
한글로 바꾼 때
내     용
편집  형태 문자  표기
 기업 경영  한국생산성본부   1992년  7월 가로짜기 한자 혼용
 광고 정보  한국방송광고공사   1993년  1월 가로짜기 한자 혼용
 신용 경제  산업경제연구원   1993년  1월 가로짜기 한자 혼용
 비파괴검사학회지  비파괴검사학회   1993년  1월 가로짜기 한자 혼용
 생산 기술  생산기술연구원   1993년  4월 가로짜기 한자 혼용
 에너지 관리  에너지관리공단   1993년  7월 가로짜기 한글 전용
 월간 북한 동향  통일원   1993년 10월 가로짜기 한자 혼용
 공장 관리  한국표준협회   1994년  1월 가로짜기 한글 전용
 광업 진흥  대한광업진흥공사   1994년  1월 가로짜기 한글 전용
 사목  천주교중앙협의회   1994년  1월 가로짜기 한글 전용
 표준화  한국표준협회   1994년  1월 가로짜기 한글 전용
 선진 사회  (주)선진사회   1994년  1월 가로짜기 한글 전용
 주간 북한 동향   통일원   1994년  1월 가로짜기 한글 전용
 주간 조선  조선일보사   1994년  3월 가로짜기 한자 혼용
 소방 안전  한국소방안전협회    1994년  5월 가로짜기 한글 전용
 원가 정보  산업관계연구원   1994년 10월 가로짜기 한글 전용
 생산성 리뷰  한국생산성본부   1995년  1월 가로짜기 한자 혼용
 문예 중앙  중앙일보사   1995년  2월 가로짜기 한자 혼용
 전기 기술 동향  한국전기연구소   1995년  2월 가로짜기 한글 전용
 국립 공원  국립공원관리공단   1995년  3월 가로짜기 한글 전용
 사학  사립중·고교장회   1995년  3월 가로짜기 한글 전용
 안전 보건  한국산업안전공단   1995년  3월 가로짜기 한글 전용
 비상기획보  비상기획위원회   1995년  3월 가로짜기 한자 혼용
 어선  한국어선협회   1995년  5월 가로짜기 한자 혼용
 의류 산업  한국의류산업협회   1995년  6월 가로짜기 한자 혼용
 마사춘추  도서출판 21세기   1995년  7월 가로짜기 한글 전용
 과학 교육  시청각교육사   1996년  1월 가로짜기 한글 전용
 교육 진흥  교육진흥연구소   1996년  1월 가로짜기 한자 혼용

  1992년도부터 정기 간행물의 표지 이름을 한글로 바꾸기 시작했으며, 1993년도부터는 더욱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표지 이름의 한글화는 내용의 한글화와 직결되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이다. 표지 이름을 한글로 바꾸면서 내용의 편집 형태도 세로짜기에서 가로짜기로 바꾸었으며, 한자 사용을 많이 줄여 가고 있었다. 위에 제시한 28권의 정기 간행물 가운데, 15권이 한글 전용이고 13권이 한자 혼용인데, 한자 혼용은 주로 제목의 핵심어와 사람 이름·땅이름이 대부분이었다. ‘월간 북한 동향’(통일원)은 표지 이름이 한자였을 때는 내용에 한자가 매우 많았는데, 1993년 10월에 한글로 바꾸면서 내용을 대부분 한글로 표기하고 제목의 핵심어 정도만 한자를 쓰고 있다. 한자를 많이 쓰던 정기 간행물이 한글로 표기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1995년 이후에 각 기업체에서 나오는 ‘사보’는 99% 한글 전용·가로짜기를 하고 있음을 볼 때, 문자 생활의 방향은 이미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3.3. 소설·교양 서적에서의 ‘한글’ 

  1970년 후반부터 소설을 비롯한 문학 작품의 출판물에서 한자가 급속도로 사라져 가고 한글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먼저 출판사 이름을 토박이말로 만들어 한글로 적기도 하고, 한자말로 되어 있는 출판사 이름도 표지에는 한글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향에 힘을 입어, 작품 제목을 한글로 하거나 한글로 바꾸는 출판사가 많았는데, 1970년에는 한자 제목이 108종에 한글 제목이 60종으로 한자가 우세하였으나 1979년에는 한글 제목이 50종에 한자 제목이 35종으로 한글 제목이 우세한 쪽으로 뒤바뀌었다(한국 일보:1979.10.16.). 1970년에는 ‘사냥꾼의 수기’, ‘외투’, ‘목로 주점’ 등 흔히 쓰이는 낱말도 한자로 하였는데, 1970년대 후반에는 ‘세계 문학의 산책’, ‘한국 선현 위인 어록’ 등도 한글로 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달라진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출판사 이름과 책 제목이 한글로 바뀌어지면서, 소설이나 에세이집 등의 내용이 한글만 쓰기로 발전하였고, 세로짜기에서 가로짜기로 편집 체제를 바꾸기 시작했다. 문학 작품들은 대개 한글 전용으로 일관하였으며, 역사 소설 등에서도 한자를 최소한 줄여 괄호 안에 묶어 놓고 말았다. 편집 체제에 있어서 1974년에는 세로짜기가 70% 가로짜기가 30%였는데, 1979년도에는 가로짜기가 60% 세로짜기가 40% 정도로 바뀌어 갔다(신우식, 1985). 1960년대에 탐구당이 세로짜기로 내놓은 문고 ‘탐구신서’를 1978년부터 가로짜기로 내놓고, 1970년대 초 범우사에서 내놓은 소설 ‘심야의 정담’은 세로짜기로 되어 있었는데 1979년도에 다른 출판사로 넘어가면서 한글 제목에 가로짜기로 내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것은 성공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1975년에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소설·교양 서적에 한글이 97%로 거의 전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박준황, 1975).
  1990년대 접어들면서 교양 서적 가운데 특히 소설에 있어서는 한글 전용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전문 서적의 경우도 한글 전용이 늘어나고 한자 사용은 줄이고 있으며,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이들도 한글 전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그 열기는 가속화되리라고 본다. 교보 문고가 선정한 ’96(1월-3월) 소설 베스트셀러 20선을 중심으로 한글과 한자의 사용 실태를 살펴보면, 다음 <표 4>와 같다.
  
  <표 4> ’96 소설 베스트셀러 20선의 한글과 한자의 사용 실태
책   이  름 지 은 이 출 판 사

내     용

편집형태 문자 표기
 1 좀머씨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스 열린책들 가로짜기 한글 전용
 2 천년의 사랑 양귀자 살림 가로짜기 한자 병용
 3 마음 가는 대로 수산나 타마로 고려원 가로짜기 한글 전용
 4 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스 열린책들 가로짜기 한글 전용
 5 희망 (상) 양귀자 살림 가로짜기 한글 전용
 6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 소담출판사 가로짜기 한글 전용
 7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가로짜기 한글 전용
 8 새의 선물 은희경 문학동네 가로짜기 한글 전용
 9 오렌지 정정희 세계사 가로짜기 한글 전용
10 삼국지 이문열 민음사 가로짜기 한자 병용
11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을까? 박완서 웅진출판 가로짜기 한글 전용
12 고등어 공지영 웅진출판 가로짜기 한글 전용
13 외딴방 신경숙 문학동네 가로짜기 한글 전용
14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월러 시공사 가로짜기 한글 전용
15 잃어버린 세계 마이클 크라이튼 김영사 가로짜기 한자 병용
16 소피의 세계 요슈타인 가아더 현암사 가로짜기 한자 병용
17 남자의 향기 하병무 밝은세상 가로짜기 한글 전용
18 연어 안도현 문학동네 가로짜기 한글 전용
19 푸르른 틈새 권여선 살림 가로짜기 한글 전용
20 아리랑 조정래 해냄 가로짜기 한자 병용

  위의 ’96 소설 베스트셀러 20종류 가운데 15종류는 한글 전용이고 5종류는 한자 병용이다. 5종류 가운데 3종류는 철학 용어 등 부득이한 경우에만 2% 정도 병용하였고, 역사 소설을 포함한 2종류는 사람 이름이나 땅이름 등에서 8% 정도 병용하였다. 다시 말해 한자 혼용·세로짜기 세대가 퇴조하고 한글 전용·가로짜기 세대가 주 독자층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더 이상 간과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더욱이 문학 작품의 주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20~30대는 한자보다 한글에 익숙해 있고 세로 편집보다는 가로 편집에 길들여져 있는 세대들이다. 시대적인 흐름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다.
  

  4. 개인의 필요에 따른 문자 생활

  옛날 사람들은 읽어 알아야 할 지식의 양이 지금보다 다양하지 못했기 때문에, 글을 쓰고 인쇄하는데 빠르게 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되는 대로 붓으로 쓰고, 시간이 있는 대로 목판에 새겨 인쇄를 하면 되었다. 더욱이 지식은 일부 양반들만이 가지고 있으면 되었다. 양반들은 생활을 위해서 일할 필요가 없었고, 글방에서 글(한자·한문)만 배우면 되었던 것이다. 양반들은 한글이 만들어진 뒤에도, 거리감을 갖고 신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반 백성들이 접근하기 힘든 한자와 한문을 고집해 왔다. 이때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중 문자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문자 생활은 한자·한문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이지만, 한글이 적기에 편하다는 것을 느낀 일부 양반들은 일기·편지 등 개인적인 문자 생활을 한글로 해 왔다.
  붓으로 쓰던 시대가 가고 펜으로 쓰는 시대가 왔다. 펜으로 원고를 쓸 때에 보통 한 시간에 약 10장(200자 원고지) 정도 쓸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원고를 써야 50장 정도 쓰기가 어려웠고 100장 정도 쓰면 초인적인 힘을 가졌다고 부러워했는데, 한자가 많으면 시간이 더욱 많이 걸렸다. 이러다 보니 펜으로 글을 쓰는 속도가 생각하는 속도를 따르지 못했다. 좋은 생각을 머리 속에 떠올려 놓아도 미처 쓰기 전에 잊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펜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자연히 글씨체에 관심을 갖게 되어, 글을 쓰는 이에게 또 하나의 부담을 갖게 하였다. 취직할 때는 자필로 이력서를 써야 했고, 글을 청탁해 오면 원고지에 또박 또박 써 넣어야 했으며, 석·박사 학위 논문도 정해진 원고지를 메꾸기 위해 여러 달을 뜬눈으로 새워야 했다. 한글과 한자(한문)를 써야 하는 이중 문자 생활에 글씨체와 내용에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돌파구를 찾아 낸 것이 ‘문자 생활의 기계화’이다.
  펜으로 쓰던 시대가 가고 타자기를 치는 시대가 왔다. 타자기의 속도는 치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서 다섯 배나 열 배 정도 빨랐으니, 50장의 원고라면 30분이나 1시간이면 충분했다. 타자기는 거의 말의 속도를 따라갈 정도였으니 타자기를 빠른 속도로 칠 수 있다면,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찍을 수 있었다. 한 장에 많은 글이 들어가기 때문에 원고 앞뒤의 연관을 찾아보기가 편리하고 종이를 4배 정도 절약할 수 있었으며, 세미나 준비 자료나 청탁 받은 원고 정리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타자기는 군대·법원·검찰청·경찰·행정 관청의 사무 처리를 신속히 처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문자 생활에 타자기를 활용하면서 기계화에 걸림들이 되는 한자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타자기를 치던 시대가 가고 컴퓨터를 치는 시대가 왔다. 컴퓨터는 이제 행정 관청이나 기업은 물론 사회 모든 분야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수단으로 등장했으며, 각 가정에도 거의 마련이 되어 개인이 필요한 문자 생활을 컴퓨터로 하고 있다. 이력서·자기 소개서·각종 연구 논문·대학에서의 과제물·보고서·편지 등 모든 것들이 컴퓨터로 작업이 되고 통신에 의해서 곧 상대방에게 전달이 된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글을 손으로 쓰던 시대는 지나가고 문자 생활의 기계화 및 자동화가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이다.
  문자 생활의 기계화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한자이다. 한자를 한 글자 치려면 컴퓨터 자판을 한 번 눌러서 한자를 모두 들어오게 하고 적당한 한자에 깜박이(커서)를 맞추어서 자판을 또 눌러야 한자가 나온다. 한글만을 칠 때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이다. ‘컴퓨터에서의 한글 전용문과 한자 혼용문의 입력 시간 비교 실험’(한글 새소식 제260호, 1994)에 의하면, 한자말을 반 정도 한자로 바꿔 입력했을 때 한글만을 입력했을 때보다 3배, 한자말을 모두 한자로 바꿨을 때는 5배나 더 걸렸다. ‘한자 사용에 관한 전 국민 전화 여론 조사 보고서’(극동조사연구소, 1994)에 의하면, 컴퓨터 사용을 할 때 한자 사용 정도를 질문한 결과, ‘사용한다’가 32.7% ‘사용하지 않는다’가 67.3%로 3명 중 2명 정도가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많은 컴퓨터 사용자들이 컴퓨터를 사용할 때 한자 사용을 불편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21세기에는 보통 사람이 다루는 정보량은 사람의 정보 수용 능력의 한계에 도달하게 되어 필요한 정보를 솎아 내기에도 힘든 상황이 된다. 이러한 초를 다투는 정보 경쟁 시대에,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이중적인 문자 생활을 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으로 본다. 문자 생활은 일반 사람들의 필요에 의하여 간단하고 편리하며 합리적인 방향으로 물이 흐르듯 자연히 흘러가는 것이지 누구도 강제로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5. 맺음말

  이 글은 우리 문자 생활의 흐름을 통해 한글이 어떠한 위치에서 어떻게 쓰여 왔는지 살펴보고, 인쇄 매체를 통한 문자 생활과 개인의 필요에 따른 문자 생활로 나누어 분석함으로써, 문자 생활의 실태를 파악하여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광복 후 학교 교과서의 한글 전용·한자 혼용은 문자 생활과 연결되어 격렬한 논쟁을 벌여 왔는데, 정부는 ‘한글 전용 정책과 한문 교육 강화 정책의 병행’이라는 방침을 지켜 오고 있다. 그러나 점차 우리말을 가장 자유롭고 완벽하게 적을 수 있는 글자는 한글이고, 한글은 조직적이고 과학적이어서 읽고 쓰고 기계화하기에 간편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어 문자 생활의 흐름이 한글 전용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인쇄 매체를 통한 문자 생활의 실태를 살펴본 결과, 오랫동안 한자 혼용을 해 온 보수적인 일간 신문이 94.4% 정도 한글을 활용하고 있고, 정기 간행물과 소설·교양 서적이 99% 이상 한글 전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한글만 쓰기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개인의 필요에 따른 문자 생활은 붓·펜·타자기 시대가 가고, 이제는 컴퓨터 시대를 맞이했다. 개인의 문자 생활에서 누구나 복잡하고 불편하며 불합리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평소 문자 생활을 통해 한글이 가장 간단하고 편리하며 합리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강요해도 한글로만 생활을 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21세기 정보 경쟁 시대를 맞아, 문자 생활을 기계화해야 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때, 문자 생활에서 한글은 장점이 많이 있는 반면에 한자는 여러 면에서 단점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일반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 문자 생활의 방향이 이미 결정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남은 문제는, 한글을 바르게 적고 한글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한글을 바르게 적기 위해서 ‘한글 맞춤법’을 연구하고 익히는 데에 노력해야 할 것이고, 한글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한글 글자판에 관련된 코드 논쟁이 빠른 시일 안에 합리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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