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말 쓰기 운동】

말법 따로 말 따로
- 국어 사전이 쓸모 없게 돼 간다 -

배우리 / 한국 땅이름학회 회장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학교’와 ‘핵교’의 차이는 뭐냐?
‘학교’는 ‘다니는’ 곳이고 ‘핵교’는 ‘댕기는’ 곳이란다.
“학교 다니니?”
“핵교 댕기니?”
  위의 두 말 중의 어느 말로 해도 못 알아 들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표준말에 바탕을 둔 정상적인 말생활이라면 ‘핵교 댕긴다’는 말은 못 알아 들어야 할 것이다.
  작가나 시인들처럼 글을 쓰는 사람들도 글을 쓸 때는 거의 말법대로 쓰고 있으나, 실제 그들도 여느 사람들처럼 평상적인 말투에서는 ‘글 따로 말 따로’이다. 참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으냐 어냐

  앞으로 얼마 안 있어 말을 알아 듣는 컴퓨터가 나온다고 한다.
  컴퓨터 앞에서 ‘말’을 하면 그것을 컴퓨터가 ‘글’로 즉시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즉 ‘국어 연구원’이라고 말만 하면 그것이 바로 ‘국어 연구원’이라고 ‘글자화’해 놓는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이 두 손을 두들겨서 글자를 만들어 내는 컴퓨터의 자판도 필요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니 참으로 꿈만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컴퓨터에 대해서 그리 깊이 아는 바는 없지만, ‘말을 알아 듣는 컴퓨터’가 아주 편리하고 정확하게 이용되려면 보다 많은 노력이 따라야 하고, 깊은 연구가 전제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얼마 전, 가톨릭 의사회의 한 조찬 모임에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내 옆자리에서 두 의사가 무슨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언뜻 내 귀에 이런 말이 들려 왔다.
  “그 환자가 정상이 정상이 아니더라고······.”
  나는 이 말을 듣고 이 짧은 말 속에 두 번이나 들어간 ‘정상’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말’에 대해서 평소 따지기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나는 이 ‘정상’을 말의 뜻을 모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말한 사람에게 물으면 간단할 일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실례가 되는 것 같아 잠시 생각 끝에 알아 낸 말은 이것이었다.
  “그 환자가 증상(症狀)이 정상(定常)이 아니더라고······.”
  글로 써 놓으면 이 말을 못 알아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말로 하다 보니 이 말이 저것 같고, 저 말이 이것 같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여남은 해 전의 일이지만, 내가 있는 출판사에 한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
  어느 날, 점심을 함께 하게 되었는데, 이 친구가 나를 좋은 데로 모시겠단다. 어디냐고 했더니, ‘엄마 상가’라고 한다. 그 곳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로, 내가 어느 정도는 잘 아는 지역인데, 처음 들어 보는 ‘엄마 상가’라 어딘지 궁금했다. 그것을 묻는 나에게 이 친구의 대답.
  “엄마아파트 지하에 있심더.”
  엄마아파트? 거기서 한참 떨어진 곳에 ‘엄마 상가’가 있는 줄은 알지만, 이 ‘엄마아파트’는 알 수가 없어 또 물었더니, 바로 앞에 보이는 아파트를 가리킨다.
  “저예, 엄마아파트 보이지 않십니껴?”
  그러나, 그 아파트 건물에는 ‘엄마’가 아닌 ‘은마’라는 큰 글자가 씌어 있었다.
  ‘엄마’가 아니고, ‘은마’라고 지적하는 나에게 이 친구의 대답은 더욱 우스웠다.
  “예, 맞심더. 엄마아파트 아이고 엄마아파트라예.”
  이 친구가 또 다시 말한 대목에서도 ‘은마’와 ‘엄마’는 똑같이 발음되고 있었다.
  이 친구가 사는 곳은 서울 ‘응암동’인데, 늘 이를 ‘엉암동’이라고 했다. 서울에 그런 동이 있느냐 했더니 ‘언평구’에 그런 동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곳은 ‘정산동’ 근처라는 말도 했다. ‘은마’가 ‘엄마’로, ‘응암동’을 ‘엉암동’으로, ‘증산동’을 ‘정산동’으로 들리는 것이 내 귀가 고장나 그런 것이 아닌가 의심도 해 봤지만, 분명히 다른 사람도 그렇게 들린다고 하니 내 귀 탓은 아니었다.
  어느 택시 기사가 서울 중랑구 ‘묵동’에 갈 손님을 그 정반대쪽인 양천구 ‘목동’으로 안내해서 혼났었다는 이야기는 이런 식의 발음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은 틀림없는 듯했다.
  “내 언제 먹동이라캤나? 먹동이라캤지.”
  ‘묵동’도 ‘먹동’이 되고, ‘목동’도 ‘먹동’이 되니, 이를 가릴 능력이 컴퓨터라고 있겠는가? 그래서, 어느 컴퓨터 전문가는 말한다.
  말을 글자로 바꾸어 놓는 컴퓨터가 나오면, 그 때 우리 나라에선 경상도용 컴퓨터, 전라도용 컴퓨터······ 식으로 그 지방 특유의 발음 습관에 따라 컴퓨터가 이를 제대로 처리해 주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그렇다 하더라도 컴퓨터가 몹시 피곤할 것이고, 그것이 여의치 못하면 컴퓨터를 쓰는 이들 중에는 컴퓨터가 말을 제대로 못알아 듣는다고 고장 수리를 요청하는 일이 무척 많을지도 모른다.
  “이 보소. 이 컴퓨터 고장이 아이요? ‘승격’을 ‘성격’이라 해 놓고, ‘증거’를 ‘정거’라고 쳐 놓는데,······”
  표준말은 서울말을 표준으로 해서 정했다지만, 지금 서울에서 표준말을 쓰는 사람이 과연 몇 푼이나 되겠는가?
  

새 말도 생기고 새 뜻도 나오는데

  사투리나 발음도 문제지만, 국어 사전에도 없는 말들이 자꾸 나오는 데는 더 문제이다.
  ‘검은돈-흰돈’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말들이 새로 태어나 마구 쓰이고 있고, 오래 전부터의 일이긴 하지만, ‘그녀’와 같은 말들이 소설 같은 데서 아무런 문제 없이 쓰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돈세탁’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복지부동(伏地不動)’에서 태어난 ‘복지안동(伏地眼動)’같은 괴상한 말도 나왔다. ‘통치자금’이란 말도 과거엔 없었던 말이었다.
  ‘돈세탁’이란, 금융기관의 입출금 과정을 거치면서 자금의 이동 경로나 그 출처를 알 수 없게 하는 일을 말하는데, 마약 거래자들이 쓰던, 돈 거래 방식인 ‘머니 라운드링’이라 한 것을 우리 식으로 옮긴 것이라 하고, ‘복지안동’이란 공무원 등이 아무 일도 안 하면서 마루 바닥에 엎드려 상사의 눈치만 보느라고 눈을 요리조리 굴리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나온 말로, ‘복지부동’보다 더 심하게 꼬집은 말이라 한다. ‘통치자금’이란 말도 과거엔 없었던 말이고, ‘범털-개털’같은 말도 이즈음에 나온 말이다.
·꼴값한다(잘 생기지도 못한 제 모습대로 행동한다)
·노래방
·달동네
·대발이-소발이
·바램(바람-소망)
·발랑까지다(무서울 정도로 지나치게 약다)
·손국수
·쉰세대(‘신세대(新世代)’의 상대적인 뜻으로 통하는 말)
·열받다(화가 나다)
·열불나다(화가 나다, 몹시 급하다)
·오빠부대(인기인들을 따라다니며 함성지르며 응원하는 소녀들)
·존나게(매우. *‘□이 나올 정도로’의 뜻인 ‘□나게’에서 나온 말))
·징검다리휴일(하루씩 건너뛰어 이어 있는 휴일)
·짬뽕되다(섞이다)
·쫑코놓다(핀잔을 주다)
·찍싸다(일을 그르치다)
·컴맹(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
·토끼다(후딱 달아나다)
·표밭(선거에서 자신 또는 자기 당의 표가 많이 나오는 지역)
  이러한 새 말은 음식 이름에도 아주 많다. 여러 가지를 모아 끓인 찌개를 ‘모듬찌개’라 하고, 이와 비슷한 찌개를 또 ‘부대찌개’라고도 한다. ‘모듬찌개’는 ‘모아서 만든 찌개’의 뜻을 담은 말이고, ‘부대찌개’는 과거 군 부대에서 나오는 음식 찌꺼기를 모아 끓여 낸 찌개를 일컫던 말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아주 어엿한 하나의 요리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그 밖에 다음과 같은 웬만한 국어 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음식 이름이 있다.
·불백(‘불고기 백반’의 준말)
·불낙곱(불고기에 낙지와 곱창을 곁들인 음식)
·갈매기구이(짐승의 횡격막 살을 구워 낸 고기)
  ‘갈매기’라는 말은 한때 바다의 그것을 연상해서 이것이 그 고기인 줄 알았던 사람이 많았으나, 이제는 너무도 잘 아는 음식이 돼 버렸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정착된 말이다.
  가로(橫)+막이(隔) > 가로막이 > 갈막이 > 갈매기
  ‘먹었다’는 말이 ‘한방 먹었다’든지, ‘뇌물을 받았다’는 뜻으로 되는 것처럼 뜻의 영역이 자꾸 넓어져 가는 것도 있고, ‘담백하다’는 말처럼 그 뜻이 변질돼 가는 낱말도 적지 않다.
  ‘용되다’는 말은 ‘용(龍)’과 ‘되다’라는 말이 어울려 된 말이기는 하나, 이 말은 이제 ‘출세하다’와 비슷한 뜻의 하나의 낱말이 되고 말았다.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는 ‘연륙교(連陸橋)’라 해서 모든 국어 사전에는 다 있으나, 섬과 섬을 잇는 ‘연도교(連島橋)’라는 말은 최근에 나온 말이라 그런지 웬만한 국어 사전에서는 볼 수가 없다.
  사투리를 변형시켜 조금 다른 뜻으로 쓰고 있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제, 저) *지가 그랬걸랑요
·빙신(못난이. ‘병신’을 변형시켜 만든 말)
·보담(~보다) *너보담 내가 낫다.
·눔(놈)
  그런가 하면 아예 뜻 자체가 달라졌거나 달리 쓰고 있는 말도 상당히 많다.
·엄청(매우)      *엄청 크다.
·아쭈(감탄사. ‘아주’에서 나온 말)      *너 아주 제법이구나.
·아빠(남편)      *우리 아빠(남편)예요.
·무더위(몹시 더운 더위. 원래의 뜻은 습기가 차고 더움)
·떡값(명절 같은 때 정해진 삯 외에 더 주는 돈)
·사모님(결혼한 여자를 높여 부르는 말. 원래는 웃사람의 부인의 존칭)
·헷바지(아무 쓸모없는 사람. ‘홑바지’에서 나온 말)
·웃기다(기가 막히다)      *그 사람 자기가 잘못하고도 잘 했다고 하니 정말 웃기는 사람이야.
  같은 뜻의 말이 겹쳐 된 말도 많이 늘어났다. ‘역앞’이라고 쓰이던 말이 ‘역전’(驛前)이 되더니, 그것으로 말맛(?)이 안 찼던지 ‘역전앞’이란 말이 아주 편안하게(?) 쓰이고 있다.
  그런 덧말이 이 즈음에 부쩍 늘어났다.
·처가(妻家) > 처갓집
·외가(外家) > 외갓집
·생수(生水) > 생수물
·약수(藥水) > 약수물
·냉수(冷水) > 냉수물
·온수(溫水) > 온수물
·고목(古木) > 고목나무
·김일성이 > 김일성이가
  그냥 ‘비’라고 하면 될 것을 ‘빗자루’라고 쓰는 사람이 많고, ‘남태령’이라고 하면 될 것을 ‘남태령고개’라 하며, ‘종로’라 하면 될 것을 ‘종로길’로 말하는 사람이 늘어가는 등 우리말은 이상하게 자꾸 필요 없는 꼬리를 달고 있다. 그런데, ‘안절부절 못한다’고 해야 할 말은 왜 ‘안절부절하다’로 많이 쓰고 있는지?
  

끝소리 발음 엉터리가 많고

  요즈음에 와선 끝소리가 많이 달라졌다. 물론, 글에서는 제대로 쓰지만, 실제 말에서는 제 발음대로 하는 예가 극히 드물다. 아래의 예는 모두 끝소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다.(#표가 끝소리를 제대로 살린 바른 발음)
·흑(흙) *흑을(흐글) 파 와라. ····················································· # 흘글
·빗(빛) *불빗이(불삐시) 너무 세다. ····················································· # 불삐치
·삭(삯) *품삭이(품싸기) 나무 비싸다. ····················································· # 품싹시
·솟(솥) *솟을(소슬) 걸어 놓고 ····················································· # 소틀
·숫(숯) *숫이(수시) 검다. ····················································· # 수치
·옷(옻) *옷이(오시) 올랐다. ····················································· # 오치
·젓(젖) *젓을(저슬) 먹여라. ····················································· # 저즐
·윳(윷) *윳을(유슬) 놀아라. ····················································· # 유츨
·부억(부엌) *부억에서(부어게서) ····················································· # 부어케서
·낫(낯) *낫을(나슬) 씻었니? ····················································· # 나츨
·닥(닭) *닥이(다기) 운다. ····················································· # 달기
·닷(닻) *닷을(다슬) 올려라. ····················································· # 다츨
·덧(덫) *덧에(더세) 걸렸다. ····················································· # 더체
·몃(몇) *몃을(며슬) 더했니? ····················································· # 며츨
·밋(밑) *밋을(미슬) 씻어라. ····················································· # 미틀
·밧(밭) *밧을(바슬) 갈아라. ····················································· # 바틀
·볏(볕) *볏이(벼시) 따갑다. ····················································· # 벼치
·꼿(꽃) *꼿을(꼬슬) 꺾지 마라. ····················································· # 꼬츨
·끗(끝) *끗이(끄시) 안 보인다. ····················································· # 끄치
  우리말이 된소리로 자꾸 돼 간다는 지적은 국어 학자들이 많이 해 왔거니와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사랑’이 ‘싸랑의 옛말’이라고 풀이할 사전이 나올 날도 멀지 않을 것 같다.
  그 대표적인 예들을 들어 본다.
  <용언(동사-형용사)에서>
  딲다(닦다), 짝다(작다), 쎄다(세다), 쏙다(속다), 쏙이다(속이다),
  <부사에서>
  쪼금(조금), 삐뚜로(비뚜로), 쫌(좀), 까뜩(가득), 깐딴히(간단히), 꺼꾸로(거꾸로)
  <명사에서>
  싸나이(사나이), 싸랑(사랑), 쏘나기(소나기), 쏘주-쐬주(소주), 쩐(전=돈), 쩜(점), 쪼각(조각), 끼(기=氣), 쫌전(조금 전), 쬐끔(조금), 창꾸(창구=窓口), 깜빵(감방), 깡술(강술), 꺼리(거리=일거리), 껀(건=件), 꼬랑내(고린내), 꽈(과=科), 쯩(증=證)
  거센소리로 돼 가는 현상도 보이고 있다.
  ‘깨끗이’를 ‘깨끄치’로 발음한다든지, ‘씻어’를 ‘씨처’로 발음하는 예 등이 그에 속한다.
  ‘12·12사건’에서의 ‘12·12’는 정확히 ‘십이일이(시비일니)’로 통해 왔어야 하나, 이상하게도 ‘시비시비(십이십이)’로 굳어진 채, 신문 등에서 하나의 낱말처럼 쓰이고 있다.
  우리말에서 ‘이모음역행동화(이母音逆行同化)’는 흔히 있는 일이나, 이 때문에 앞으로 표준말 조정을 할 때 상당한 논란이 따를 것이 틀림없다.
  ‘창피하다’가 ‘챙피하다’가 되고 있고, ‘먹이다’를 ‘멕이다’로 쓰는 사람이 많은가 하면, ‘곰팡이’를 ‘곰팽이’로, ‘지팡이’를 ‘지팽이’로 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준말도 정상적으로 돼 가질 않고, 이상한 말로 돼 가고 있다.
·이리로 와 > 일루와
·우리 엄마 > 울 엄마
·때문에 > 땜에
·좋으냐? > 존냐?
  어떻든 우리말은 지금도 계속 ‘말법 따로 말 따로’ 가고 있다. 그리고, ‘말 따로 뜻 따로’ 가고 있다.
  이러다간 정말로 국어 사전이 쓸모 없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고, 학교 교단에서 문법 같은 것을 가르칠 때 어디에 기준을 두고 가르쳐야 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지금 모르고 지내고 있다.
  국어 사전을 이젠 지금 실지로 많이 통용되고 있는 말 중심으로 바꿔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하면, 나더러 미친 사람이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