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화어의 이해

‘뜨더국’, ‘마치다’


전수태(田秀泰) 국립국어연구원

북한 문화어에 ‘고망년’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말체(구어체)로서 주로 ‘어느’와 함께 쓰여 ‘알 수 없는 오랜 옛날’의 뜻이다. “야 참, 변 선생님은 왜 또 어느 고망년 때 이야기를 꺼냅니까?”(『대지는 푸르다』, 4.15 문학창작단, 문예출판사, 1981, 562쪽) 하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그게 언제인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하느냐?” 하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대기’는 우리의 경우,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기체층’을 뜻하는 것으로서 대체로 일기 예보를 할 때에 ‘대기가 불안정하다’ 등으로 쓰인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이 ‘대기’가 ‘공기’와 동의어로 쓰인다. 이에 대하여는 “선화는 겉옷을 걸치면서 사랑채를 향해서 달려갔다. 새벽 대기가 오싹한 느낌을 주었으나 그런 것에 잔신경을 쓸 경황이 없었다.”(『김정호』, 강학태, 문예출판사, 1987, 128쪽) 등의 예문을 들 수 있다.

‘수제비’를 북한에서는 ‘뜨더국’이라고 한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끓는 물에 조금씩 뜯어 넣어 익힌 음식이 수제비인데 지난날 여름철에 농촌에서 머슴들이 풀베기를 할 때에 새참으로 먹거나 하루 종일 벤 퇴비용 풀을 밤에 일꾼들과 함께 작두에 썰고 나서 쉴 때에 옷소매로 땀을 훔쳐 가면서 먹던 음식이다. 지금은 계절에 관계없이 별미로 찾는 음식이 되었다. “낟알을 구해오는 문제가 화제에 오른 다음날 아침 윤칠녀는 전에 없는 밀가루로 뜨더국을 끓이었고 잣잎을 우려서 차물 대신 내놓았다.”(『백두산 기슭』, 415 문학창작단, 문예출판사, 1978, 141쪽) 등으로 쓰인다. 여기에서 ‘낟알’은 ‘곡식’의 총칭이다.

마치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마치다’를 ‘일을 마치고 귀가하다’에서 보는 것처럼 ‘끝마치다’의 의미로 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우리가 쓰는 것과는 달리 ‘더러운 것을 묻히어 못쓰게 만들다’의 의미로 쓰인다. 문맥에서는 “그러나 그이께서 흙 묻은 손을 비벼 터시며 내려오시자 박창우와 최승보는 나이 생각도 며느리, 딸들 앞이라는 생각도 다 잊어버리고 앞을 다투어 지붕 우로 올라갔다. ≪조심하십시오. 옷 마치겠습니다.≫ 김성주 동지께서는 껄껄 웃으시며 어린애같이 덤비는 두 노인에게 말씀하셨다.”(『대지는 푸르다』, 4.15 문학창작단, 문예출판사, 1981, 618쪽)와 같이 쓰인다.

시끄럽다’는 말은 북한에서는 ‘조용하다’의 반대 개념으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북한에서는 ‘성가시도록 말썽이나 가탈이 많다’의 의미를 가진다. 이 말은 “가만 내버려 두면 아낙네는 종일이라도 이야기를 할 것 같았다. 해가늠을 해 보니 이제 10리나마 되는 명주촌에 들렀다가 돌재로 돌아가자면 날이 저물어 두만강 나루를 건너기 시끄러울 것 같았다”(『대지는 푸르다』, 4.15 문학창작단, 문예출판사, 문예출판사, 1981, 287쪽)와 같은 문맥에서 쓰인다.

북한에서는 ‘화장실’을 ‘위생실’이라고 한다. 예문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온 몸이 얼음 구멍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불시에 꽁꽁 얼어들었다. 그는 방망이질하는 가슴으로 그 녀석들의 방 문앞을 거쳐 위생실에 가는 체 가만가만 발끝 걸음을 해 보았다. 신경이 바늘 끝처럼 날카로워진 채 돌아오다가 그것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훔쳐들을 수 있었다.”(『그들의 운명』, 현희균, 문예출판사, 1984, 86쪽)

정부의 대북 화해 정책에 발맞추어 앞으로 정부 당국자 사이나 민간 차원에서 남북이 자주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위에서 언급한 간단한 몇 가지의 어휘 상식이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얼마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