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 2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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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경위국립국어원 설립 경위

‘말’과 ‘글’은 한 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하게 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러므로 말과 글의 정비와 발전을 위한 일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조선 시대 세종 때 최초의 국문 연구 기관인 언문청(諺文廳)을 설립하여 한글 창제 및 사용 규범에 대한 연구를 도모한 것이나, 광무 11년(1907년), 학부(學部) 내에 국문연구소를 설치하여 국문의 원리 및 내력, 체계 등을 확립하려 한 것은 모두 말과 글의 정비가 당대 언어문화 및 국가 운영의 중요한 문제였음을 잘 보여준다. 국권 침탈의 시기였던 일제 강점기에도 이 같은 의식은 계승되어 국어연구학회(1908년), (1921년 ‘조선어연구회’, 1931년 ‘조선어학회’, 1949년 ‘한글학회’로 개칭), 조선어학연구회(1931년) 등의 민간단체들이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한 연구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통일된 어문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국가 기구의 필요성이 학계와 대중으로부터 광범위하게 제기되었다. 한글 전용론과 국한문 혼용론 간의 대립과 같은 역사가 깊은 정책 갈등에서부터 신구 철자법 상용 문제와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언어 문제를 총괄할 주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1950년대 한글 간소화 파동이나, 1960년대의 문법 파동 등은 국어 문제를 해결하고 조절할 만한 공공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공공기관의 필요성을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60년대 언론을 통해 제기된 국립국어연구소 설치에 대한 건의문은 국립 국어 연구 기관 설립의 역사적 필연성을 잘 보여 준다. 1962년 국어국문학회 총회에서 문교 당국에 국어 연구 기관 설치 문제를 건의한 것을 필두로 하여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학자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제출되었다. 문교부(지금의 교육과학기술부)의 국어과 편수관이 겨우 2명에 불과했던 당시의 열악한 상황을 지적하고 방송 언어 발음의 불일치, 맞춤법 및 외래어 표기법의 혼란, 상용한자⋅표준말⋅국어 순화 문제, 방언과 지명 조사, 국어대사전 편찬 및 국어 교육 문제 등 산적한 언어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상설 기관인 국립 국어연구소의 필요성을 담은 것이었다.
이 같은 국립 국어 기관 설립에 대한 학계 및 언론계의 적극적인 요청에 힘입어 정부가 국어 연구 기관의 설치 의지를 보인 것은 1976년이었다. 문교부에서 국어 순화 운동 추진을 위한 조사 연구 업무를 담당할 문교부 직속 상설 연구 자문 기관 설치 계획을 발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현행 국어심의회와 한글 전용 연구 위원회 등이 있으므로 이를 통폐합 보강해서 운영하는 것이 타당하다.”라며 총무처(지금의 행정안전부)가 난색을 보임으로써, 정식 국립 국어 연구 기관은 그로부터 약 8년이 지나서야 설립될 수 있었다. 비록 국립 국어 연구 기관의 설립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인식의 확대는 국립 국어 연구 기관이 설립되는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인 국어 연구 기관 설립 계획에 착수한 것은 1983년 문교부에서 학술원 내 국어연구원 설치를 시사한 것에 대해, 우리말 관련 9개 학술 단체가 강연회를 개최하고, 문교부에 정식 건의문을 제출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말 관련 9개 단체는 1983년 5월 ‘국립국어연구원 설립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합동 강연회를 열고 국립 국어 연구원 설치 건의문을 당국에 제출함으로써 본격적인 국립 국어 연구 기관 설립 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들 단체는 전문적인 어문 연구 및 정책 수립과 집행의 필요성, 선진국들의 어문 연구 기관 설립 사례 등을 근거로 하여 국어 연구원 설치의 당위성을 구체적으로 역설하였다. 이날 강연회에서는 민간 주도가 아닌 정부 주도로 국어 연구 기관의 설립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과 1948년 설립 이래 현재 5개 연구부, 정원 77명에 달하는 대규모 기관으로 정착한 일본 국립국어연구소의 경우가 선진적이고 모범적인 사례로 제시되었다. 또한 이탈리아의 크루스카 한림원(1582년), 영국의 어학회(1842년) 및 스페인(1713년), 러시아(1783년), 독일, 프랑스 등을 비롯한 유럽의 국어 연구 기관 설립 및 국어 정리 사업 실태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었다.
정부에서는 이 같은 학계의 요구 및 여론에 나타난 열망을 반영하여 1983년 10월, 학술원 안에 비공식 기구인 국어연구소를 설치하고 연차적으로 이를 독립 기구로 발전시킨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설립 예산은 1억 4천만 원으로 책정되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국어연구소의 기능과 구체적인 운영 계획이 발표되었다. 이에 따라 1984년 4월, 연구원 4명 및 조사원 6명을 공개 선발했으며,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해영회관에서 1984년 5월 10일, 국어연구소 개소식이 거행되었다. 초대 국어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한 김형규 소장(당시 학술원 원로 회원)은 ‘우리나라 국어 교육 및 국어 정책에 충실한 학문적 뒷받침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이처럼 어렵게 설립된 국어연구소가 어문 정책의 총괄이라는 무거운 사명을 수행하기에 모든 상황이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국어연구소는 국무총리 또는 문교부 직속 기구로 설치되어야 한다는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독립적인 상설 기구가 아닌 학술원 내 비공식 기구로서 설립되었다. 법적으로 개인 단체와 다를 바 없었던 국어연구소는 연구 및 출판 활동에서 여러 제약을 감수해야 했다. 또한, 정부 당국의 예산 동결로 정부 보조금이 충분히 지급되지 않았고 연구 인력을 확보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광복 39년 만에 첫선을 보인 국어연구소의 안정적인 업무 수행이 어려워지자, 국어 정책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국립의 국어 연구 기관으로 확대⋅개편하자는 의견이 각계에서 제출되었다.
국립국어연구원은 문교부가 학술원 내 비공식 기구로 설립한 국어연구소를 확대⋅개편한 것으로, ‘대통령령 제13163호(1990년 11월 14일)’에 의해 1991년 1월 문화부 소속 기관으로 설립되었다.
1990년, 문화부가 정부의 독립 부처로 출발한 것은 전 시대적인 문화의 특권화, 귀족화를 배격하고 국민 대다수가 고루 누리는 문화 예술을 진흥하기 위한 새로운 문화 정책의 수립을 알리는 것이었다. 문화부는 과거의 문화공보부와는 차별화된 정책으로 어문 및 도서관 정책을 추진하였다. 교육부의 어문 정책 업무는 문화부로 이관되었고 문화부는 전담 부서로 어문출판국 안에 어문과를 설치하였다. 이 과정에서 ‘국어연구소’도 ‘정부 조직법’의 개정(대통령령 제12895호 1990년 11월 14일)에 따라 교육부에서 문화부로 소속이 이관되었다. 어문 정책이 교육부에서 문화부로 이관된 것은 국어 정책의 지향점이 교육의 차원에서 문화의 차원으로 옮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어’가 교육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누구나 향유하는 ‘문화’가 된 것은 국어 정책상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문화부의 어문과는 본래 정책 결정을 담당하는 부서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국어 연구나 집행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 제한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문화로서의 국어 정책이라는 개념을 정착하고 국어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본이나 프랑스처럼 전문 국어 연구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문화부 내부 및 국어학계와 언론계에서 제기되었다. 문화부는 이러한 각계 의견을 검토한 끝에 문화부 어문과나 기존 국어연구소만으로는 국어의 보전과 발전의 사명을 다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새 시대의 문화 환경에 걸맞은 어문 정책을 수립하기 위하여 국립국어연구원의 설치를 결정하였다.
당초 문화부는 1991년 1월까지 기존의 국어연구소를 국립국어연구원으로 승격하여 차관급 원장과 4부 49명으로 확충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공무원 정원 동결 정책으로 기존의 계획이 축소되어 1과(서무과) 3부(연구1부, 연구2부, 연구3부) 정원 35명을 기준으로 하는 직제가 1990년 11월 확정⋅발표되었다. 이후 ‘서무과’는 ‘기획 관리과’를 거쳐 ‘행정 지원과’로 이어졌고 ‘연구1부, 연구2부, 연구3부’는 ‘어문규범연구부, 어문실태연구부, 어문자료연구부’와 ‘언어 정책부, 어문실태연구부, 어문 진흥부’를 거쳐 지금의 ‘어문 연구실, 공공 언어 지원단, 교육 진흥부’로 이어졌다. 그동안 이름과 기능이 조금씩 바뀌었지만 애초의 기본 골격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수행할 전담 업무로는 맞춤법 등 어문 규범의 표준화 작업, 남북한 언어 통합 방안 모색, 한국어의 국제적 보급, 한글 기계화 추진 등이 선정되었다.
그리하여 국립국어연구원은 1991년 1월 23일,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 청사에서 현판식을 거행함으로써 정식으로 개원하게 되었다. 당시 ‘언어의 표준화’를 비롯한 어문 정책을 생활 문화의 차원에서 정착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어령 문화부 장관은 “전통적인 문화를 되살리는 것은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라고 축사를 전했다. 국립국어연구원 초대 안병희 원장 역시 “국민 언어생활에 대한 조사 연구와 학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객관적 입장에서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국어 합리화의 기초 확립과 국민 언어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이로써 언어문화 및 어문 정책의 발전이라는 각계의 목소리를 아우르면서 국립 국어 연구 기관이 출발하게 되었다. 비록 계획보다는 작은 규모로 출발하였지만 국립국어연구원의 설립은 언어 문제를 국가가 전문적으로 관리함으로써 현실의 언어 문제 해결은 물론 국민 모두가 누리는 문화의 차원으로 다루게 되었다는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