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 2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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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사

권재일

국립국어원장

국립국어원이 국립 기관으로 문을 연 지 스무 해가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사람도 스무 살이 되면 약관이라 하여 갓을 씌우고 비로소 어른 대접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어른이란 곧 자기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스무 해 생일을 맞는 국립국어원의 책임이 그만큼 크다는 뜻으로 새기고자 합니다.
돌이켜보면 국립국어원의 개원은 우리 국어 정책사에 큰 획을 긋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전까지 몇몇 국어학자나 비상설 심의기구를 통해 결정하던 국어 정책이 권위 있는 전문 기관의 연구를 통해 합리성과 체계성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우리의 언어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합리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국가 기관의 설립을 오랫동안 기다려 온 학계의 바람이 실현된 결과이며, 한편으로는 우리 말과 글을 쓰는 데에 불편이 없게 해 달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온 국민의 기대와 관심 속에 스무 살 청년으로 성장한 국립국어원의 20년사를 펴내며, 지난 20년간 우리가 이루어온 성과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개원 당시 국립국어원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어문규범의 정비와 보급이었습니다. 개원 직전 국어원의 전신인 국어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등의 어문규범을 개정 고시하였으나 일반에까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아 언어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에 국립국어원은 개원 첫 사업으로 가나다전화를 개통하고 국어문화학교를 열어 바른 언어생활을 안내하는 일에 힘쏟았습니다. 통일에 대비하여 남북한 언어 차이를 연구하는 한편, 연구원들을 중국과 구소련 지역에 파견하여 북한식 규범을 따르는 재외 동포들에게 새로운 우리말 규범을 보급하였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호칭어⋅지칭어 등의 언어 예절을 표준화하기 위한 표준화법 제정 사업도 펼쳤습니다. 개원 초기에 이루어졌던 이 모든 사업은 표준국어대사전 편찬으로 집대성되었습니다.
한편, 변화하는 언어 상황에 대응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정보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국어 자료를 체계적으로 전산화하는 21세기 세종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발전하면서 우리말을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요즘에는 국내외 한국어 교육의 수준을 높이려는 제도 개선은 물론, 표준 교육과정이나 교재 개발에도 직접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 언어와 관련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토론회, 공청회 등을 활발히 열어 학계는 물론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한편으로는 국어기본법을 제정하여 국어의 발전과 보급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정의하고 국어책임관, 국어문화원 등 국민들의 언어생활을 진흥하기 위한 여러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을 국립국어원이 혼자서 이룰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성과를 위해서 지난 20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성원해 주신 모든 국민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세계는 인터넷의 영향으로 점차 획일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정보와 경제에 앞선 국가를 중심으로 국제 질서가 재편되면서 그 문화적 가치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언어적으로도 다양성이 사라지고 몇몇 거대 언어로의 통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언어정책의 올바른 방향은 우리 언어문화의 보전과 발전을 통해서 우리 문화의 긍지와 자존을 지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입니다.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담는 소중한 정신의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국립국어원은 우리 말과 글을 더욱 갈고 닦아 후손들에게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국립국어원은 그동안 쌓아온 성과를 바탕으로 국어순화와 전문용어의 표준화 사업에 더욱 힘을 쏟을 것입니다. 또한 언어 자원을 모우고 다듬어 개방형 국어대사전을 편찬하여 제공함으로써 우리 언어문화가 활짝 꽃피울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국어의 다양성이 존중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역과 계층의 어휘들을 되살려 쓰는 정책을 펼 것입니다. 외국의 언어정책 기관과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여 국제적인 언어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한편, 우리의 앞선 언어정책 경험을 다른 나라들과 나누는 일에도 앞장서겠습니다.
국립국어원은 앞으로 우리나라 언어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올바로 이끌어가야 할 사명을 잊지 않겠습니다. 언어와 관련한 모든 현안을 드러내고 학계의 역량을 모두 모아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말과 글을 쉽고 정확하게 그리고 품격 있게 쓸 수 있도록 온 힘을 바치겠습니다.

끝으로 국립국어원이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국민들과 학문적 성과를 통해 국립국어원의 정책 방향 설정에 도움을 주신 국어학계의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변함없는 사랑과 격려를 기대합니다. 어려운 정책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명감으로 맡은 일을 다해 주신 국립국어원 동료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