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 2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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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국립국어원이 첫발을 내디뎠던 1991년 1월도 지금과 같은 겨울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땅속 깊은 곳에서 뿌리와 씨앗이 새로운 봄을 기다리듯이, 우리나라 국어 정책의 발전을 위해 뿌려진 씨앗이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이제 어엿한 성년으로 꽃피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국립국어원 개원 20주년과 “국립국어원 20년사” 발간을 축하합니다.

우리에게는 ‘한글’로 대표되는 빛나는 언어문화의 전통이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문화의 바탕에는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문화의 기틀을 세우고, 인쇄⋅출판 문화를 꽃피워 풍요로운 문화의 시대를 열었던 선조들의 미래에 대한 혜안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부심과 긍지는 나라를 잃은 어려움 속에서도 목숨을 바쳐 우리의 말과 글을 지켜내는 힘이 되었습니다. 선조들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역사를 꿰뚫는 통찰력, 그리고 민족과 국가를 위한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빛나는 언어문화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최근 들어 우리의 언어문화는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다양한 구성원의 생각과 문화를 아우르는 소통의 도구로서 언어의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각종 매체의 발달과 가족, 사회 제도의 변화에 따라 부모와 자식 간, 세대와 세대 간의 언어 분화 또한 심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방송을 비롯한 매체의 언어 사용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매우 큰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은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한 사회의 문화가 달라지는 시대입니다. 언어는 더 이상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개인의 고유한 특성과 집단의 생각, 사회 전체의 지향점을 표현해 주는 핵심 요소입니다. 세계의 여러 국가가 언어 사용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것의 올바른 사용이 사회와 국가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다양해진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가고, 여러 이질적인 요소를 하나로 묶어 새로운 언어문화를 창조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언어를 바탕으로 문화를 창조하고, 창조의 힘으로 삶을 풍요롭게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필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국립국어원 개원 20주년을 맞아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 정책을 전망하고 논의하는 ‘국제 학술 대회’가 열린 바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이 세계 유수의 언어 정책 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이질적인 생각을 하나의 목소리로 담아내는 세계 여러 나라의 경험과 전통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지난 20년간 국립국어원에서는 어문 규범 정비, 국어대사전 편찬, 한국어 교육, 공공언어 분야에서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성과를 발판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안으로는 지난 20년간의 발자취를 되새기고, 밖으로는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언어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데 젊은이다운 패기와 열정으로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사람과 사람, 집단과 집단, 사회와 사회를 연결해 주고 갈등과 오해를 풀어주듯이 서로 다른 생각과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다양한 생각을 품어 주는 언어의 힘이 필요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국어 발전을 위해 땀과 정성을 아끼지 않은 여러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국립국어원이 새로운 언어문화의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