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 1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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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연구원 10년사를 간행하며

심재기 / 전 국립국어연구원 원장, 서울대 교수

국립국어연구원의 개원 10주년을 맞아 『10년사』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그 뜻은 연구원이 그동안 한 일들을 되짚어 보고 다른 편으로는 여러분의 뜻을 모아 연구원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모색하려는 생각에서입니다. 제가 1999년 1월 22일에 덕수궁 석조전에 위치한 국어연구원에 부임하자마자 IMF 이후 모든 국립 기관이 구조 조정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국어연구원이 민간단체로 바뀌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도 느꼈지만, 같이 일하는 부장들과 연구원들, 서무과 직원들 모두의 헌신적인 노력과 외부의 바른 평가로 위기를 넘기면서, 그동안 연구원이 추진해 왔던 표준국어대사전의 완간, 새 청사 완공과 이전, 그리고 이렇게 개원 10년을 기념하는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사실 국어연구원이 생긴 지는 10년이 되지만, 학술원 산하 단체인 국어연구소가 있었고 문화부 직속 기관으로 국립국어연구원이 그 사업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국어연구소 설립 연도(1984년)에서부터 본다면 모두 17년사가 됩니다. 그래서 이 『십년사』도 부득이 국어연구소(1984~1990)의 역사도 아우르게 되었습니다. 국어연구소 이래 국립국어연구원은 어문 규범의 여러 과제(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로마자 표기법)를 국민들과 더불어 합리적이고 편하게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국어 연구를 계속하고 보급해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순수 연구 기관이라기보다는 대국민 봉사 기능을 하여 국어 문화의 발전에 앞장선다는 명제에 충실해 왔습니다. 오늘날, 세계화라는 신경제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한 국가나 한 국민이 주체성을 온전히 지켜 나가기 힘든 세태입니다. 영어 공용화론이 떠오르고 광고나 인터넷에 뜨는 영어와 우리말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문자 생활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국어연구원이 고대로부터 이어 온 우리말을 아름답게 계승하면서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의 뜻처럼, 쉽게 익혀 누구나 국민으로서의 기본적인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국민의 기본권으로서의 언어생활에 봉사하는 연구 기관이라는 위상을 충실히 다지는 일에 여러분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8년이라는 기간 동안 연구원과 국어학계의 총력을 모아 50만 표제어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발간하였습니다. 연구원의 거의 모든 인력이 사전 편찬에 공력을 기울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 밖에 한자 표준화 사업, 로마자 표기법의 개정, 외래어 표기법 등 국내외에 영향력이 큰 어문 규범의 일들을 일반 국민의 의견을 물어 처리해 왔습니다. 또한 '국어 순화'라는 명제를 가지고 지하철 안내 방송에서부터 시작하여 비행기내 안내 방송, 문화재 표지판 순화, 법령 용어 순화, 식생활 용어 순화, 건축 용어 순화 등 각계에 남아 있던 일본어와 외래어의 잔재를 순화하는 일을 계속해 왔으며 어문 규범의 보급과 더불어 바른 말 고운 말 쓰기를 위해 항상 국어문화학교의 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이 국어문화학교에는 일반인을 비롯하여 출판인, 교사, 공무원 등 숱한 전국 각지의 국어와 번역에 관심 있는 분들이 거쳐 나갔습니다. 또한 국외의 한국어 교사들을 불러 한국어 어문 규범을 교육하고 그곳에 나가서 또 가르치는 사업을 통해 구 공산권에서 북한의 어문 규범에 익숙한 동포들에게 우리 규범의 기초를 닦아 놓았습니다.

이제 교양 있는 한국인이라면 외국어사전 못지 않게 국어사전을 곁에 두고 바른 국어 사용에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기본 조건이 되었으며, 국내 기관들이 자체 교육 과정에서 바른 국어 사용법 강좌를 빠뜨리지 않고 교육해야 함을 깨닫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며, 연구원의 '가나다 전화'에 전화하면 국어에 관한 모든 궁금한 사항을 친절하게 알려 준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 되었습니다. 35명이라는 인원으로 이만한 일을 해냈음에 자축하면서도 앞으로의 연구원 사업은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더 넓은 길을 모색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이 무엇인지는 국민 여러분의 관심도와 국어학의 발전적인 방향이 서로 맞물릴 때에 찾을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국립국어연구원이 이만큼 자리잡기까지는 여러모로 협조를 아끼지 않은 문화관광부 관계자 여러분과 국내외의 국어학 연구자 여러분, 그리고 국어에 관심이 있는 국민 여러분들의 관심과 애정, 그리고 잘하라는 채찍의 말씀이 절대적인 밑거름이 되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국어연구원에 변함없는 사랑과 격려를 보내 주시길 빌며 이만 간행사를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