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인 상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합형 한글이 완성형 한글보다는 우수하다고 하더라도 국어학적 면에서 볼 때는 몇 가지 원리적인 문제가 야기된다. 국어학에서 생각하는 한글의 개념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된 후로 문헌에 사용된 모든 한글을 포함하기 때문에, 현대의 일상적인 한글보다 그 범위가 넓으며, 그만큼 한글 문자의 수효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여기에서 이들 옛 한글들을 포함한 모든 한글을 입출력하려고 할 때 컴퓨터에서의 한글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야기된다.

  첫째는 한글의 수효에 관한 문제이다. 흔히 한글 코드 문제로 인식되어 온 완성형 한글과 조합형 한글의 본질도 이러한 한글의 수효에 대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완성형 한글은 현행 한글의 사용 빈도수를 근거하여 가려 뽑은 2,350자의 한글만을 사용하는 방식이며, 조합형 한글은 현행 맞춤법에서 규정된 초성, 중성, 종성의 결합에 의한 11,172자의 한글 전부를 사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국어학적 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적인 면에서도 글자의 수효가 풍부한 조합형이 우수하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다. 한글 문제는 조합형 한글 11,172자를 그 출발점으로 해서 그 위에 더 보완될 점이 있는지를 따져야 할 것이며, 완성형 2,350자를 놓고서 보완점을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로 생각된다.

   이제 국어학적 면에서의 한글의 수효는 현행 맞춤법에 규정된 11,172자를 넘어서, 고문헌에 사용된 옛글자들과 국어학적 분석에 의한 어간 형태의 옛글자들을 포함하여야 하는데, 이 글자들을 조합형 방식으로 실현하려면 초성, 중성, 종성의 자모 수효가 상당히 늘어나게 된다. 필자가 이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초성 51가지, 중성 27가지, 받침 54가지가 되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이 외에도 한글의 수효는 더 늘어날 것이다. 방언 형태를 분석하다 보면 현행 맞춤법에서 벗어난 글자가 있으며, 개화기 문헌에도 현행 맞춤법에서 벗어난 한글 형태가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자모들의 숫자는 이미 현행 2바이트 조합형 코드 구조가 수용할 수 있는 초성, 중성, 받침 별 32개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므로 자모별 조합형은 기대할 수가 없다. 따라서 현행 조합형 한글 바탕 위에 옛글자는 한자와 같은 방식의 완성형을 가미하여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로는 한글 코드 체계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앞에서 이야기한 완성형과 조합형의 문제가 아니라, 조합형 가운데에서 코드화할 자모 단위와 그 배열 순서의 문제이다.

   먼저, 자모 단위에 있어서 ‘ㅘ, ㅝ, ㅢ ……’와 같은 겹모음이나 ‘ㄶ, ㄺ……’ 등과 같은 겹받침들을 하나의 단위로 할 것인가 두 개의 단위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한글의 기본 문자 수를 흔히 자음 14자, 모음 10자 합계 24자라고 하는 쪽에서는, 옛글자를 포함하더라도 자음 17자(순경음 제외), 모음 11자 합계 28자밖에 안 되므로 이들 문자에만 코드값을 부여하면 될 것이다. 즉 기본 문자가 아닌 모든 겹자모들을 모두 단자모 형식으로 풀어서 코드화하면 되는 것이지만 이것은 컴퓨터의 효율성이나 우리 문자 생활의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된다. 이전에 ‘N 바이트 한글’이라는 이름의 코드 체계에서 이러한 방법 일부가 사용되다가 사라지게 된 것도 그 비효율성 때문이었다. 따라서 현행 2바이트 조합형의 방식과 같이 한글 자형의 초성, 중성, 받침을 각각 한 단위로 하여 그 고유한 코드값을 할당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다. 다만, 코드값이 할당되어야 하는 초성, 중성, 받침의 종류에 있어서는 현행 2바이트 조합형보다 개선될 점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현행 2바이트 조합형은 초성 19자, 중성 21자, 받침 27자로서 이들의 산술적인 결합에 의한 글자 수효는 모두 11,172자가 된다. 한글의 자모들이 이렇게 선정된 것은 물론 현행 맞춤법에 의거한 것이지만 컴퓨터에서 한글을 실현하는 기준은 한글 맞춤법과는 무관하게 컴퓨터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우리의 문자 생활 전반의 실용성과 효율성에 입각하여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컴퓨터는 결코 한글 맞춤법의 부속 장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한글 맞춤법도 컴퓨터의 부속 장치가 아니다.)

   2바이트 코드 체계에서는 초성, 중성, 받침별로 각각 32개까지 코드화할 수 있지만, 컴퓨터 운영체제로 MS-DOS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MS-DOS 자체의 제약에 의하여 초성 32개, 중성 24개, 받침 31개까지만 코드로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서 내용이 없는 표지(FILL CODE)를 하나씩 할당하고 나면 실제로 내용이 있는 초성, 중성, 받침의 구별 가능한 수효는 각각 31개, 23개, 30개가 된다. 이 범위 안에서 실제로 수용할 한글의 자모를 선정하고 배열하여야 하는데 이 모든 영역을 한글만으로 사용하는 것은 한자(漢字)나 특수문자 등의 수용을 고려할 때 허용되기 어렵다. 따라서 한글의 영역은 한자를 수용하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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