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창 석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앞에서도 말했듯이, 한글의 제자 원리는 현재 완벽하게 구명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그에 관한 연구가 많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주로 ‘훈민정음’ 등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에 대해서였고, 그 외의 경우에는 아직 문제 제기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리고 ‘훈민정음’ 등의 기록을 대상으로 한 논의의 경우에도 기록의 해석이나 신뢰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로서는 ‘훈민정음’에 나오는 ‘상형’과 ‘가획’이라는 제자 원리를 부정할 만한 근거와 그에 대한 대안이 없다. 그러나 이 말이 ‘상형’과 ‘가획’만으로 모든 것이 다 설명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ㅁ과 ㅂ 그리고 ㅍ의 경우는 분명히 가획의 원리만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그리고, ?은 제자 원리에 아예 어긋나는 글자꼴이다. 원리대로라면 상형에 의해 아음의 기본자로 제자되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후음의 기본자에 변칙적으로 가획한 모양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그런 글자꼴을 지니게 된 까닭에 관해서는 ‘훈민정음’에 약간의 언급이 있다. 그러나 그 언급 내용을 제대로 해석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문제일 뿐더러, 그것을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위와 같은 문제들이 왜 생겨난 것이며,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 확언하기 어렵다. 그것을 제대로 밝히는 것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는데, 그 과정에서는 한 가지 사항을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한글의 창제 과정에서도 적잖은 시행 착오와 계획의 수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훈민정음’이 쓰여질 당시에는 ?을 아음의 불청불탁음으로 인식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라는 글자꼴이 정해질 당시에도 똑같은 판단을 가지고 있었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아음을 왜 후음의 모양으로 제자했을까 하는 의문은 문제 자체가 틀린 것이 될 수도 있다. 제자 당시에는 아음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후음으로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상형과 가획이라는 제자 원리의 경우에도 똑같이 제기될 수 있다. 즉 이들 원리에 의해 문자가 완성된 것임은 틀림없을 터이지만, 제자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이 원리만으로 시종 일관 작업이 진행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은 것이다.17)

   한글의 제자 과정에서 있었을 법한 시행착오나 방향 수정의 문제는 문헌 기록에 어떤 단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도, 상식적인 차원에서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18)
문헌 기록은 지금까지도 충분히 검토해 왔으므로, 새로운 돌파구는 이제 다른 곳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한글의 성공적인 창제 비결이 고차원의 이론 추구가 아니라 상식과 경험의 존중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창제 원리의 올바른 이해도 같은 방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7) 한글이 처음부터 상형과 가획의 원리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견해가 김완진(1983)에서 이미 제시된 바 있다.
18) 그렇다고, 문헌에는 시행착오나 방향 수정 여부를 짐작케 해 주는 내용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미리 가정해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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