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창 석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2. 제자 원리의 주요 특성과 배경
  한글(훈민정음)의 제자 원리를 밝히는 작업은 현대의 국어학자들에게 비중이 제일 큰 연구 과제였다. 한글이 고유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그것을 경시하고 방치했던 탓에,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 동안의 연구 결과로 잊혀졌던 많은 사실들이 다시 확인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미심쩍은 면이 있거나 아예 논의의 단서조차 찾지 못한 부분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밝혀진 제자 원리의 내용과 특징을 먼저 살펴보고, 이어서 앞으로의 과제에 관해서도 조금 언급해 보기로 한다.

  제자 원리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금세기 중반 즉 ‘訓民正音’의 발견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전까지는 한글이 창제되었다고 하는 사실조차도 잘 몰랐거나 믿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에 연구되고 논의된 것은 ‘제자 원리’가 아니라 주로 ‘기원’이었다. 금세기 초까지 한글의 기원에 관한 십수 가지의 설들이 등장한 바 있는데, ‘훈민정음’이 발견되면서8)  사정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그 책에 그 동안의 오해와 궁금증을 풀어 줄 수 있는 중요한 내용들(한글을 누가,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만들었는지 등)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기원 대신에 제자 원리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고, 대부분의 연구나 논의들이 ‘훈민정음’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
‘훈민정음’ 등의 문헌 기록과 그 동안의 연구들을 통해 확인된 한글의 제자 원리는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될 수 있다.

ㄱ. 음(절)을 초성과 중성, 종성으로 분석하였다.
ㄴ. 초성과 중성을 구분하여 각각의 문자를 별도로 만들었다.9)
ㄷ. 종성에 대해서는 따로 문자를 만들지 않고 초성자를 같이 쓰기로 하였다.
ㄹ. 초성과 중성 모두 약간의 기본자를 먼저 만들고 그것을 이용하여 나머지 문자를 만들었다.
ㅁ. 초성의 기본자는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따 만들고, 중성의 기본자는 천, 지, 인을 상형(象形)하였다.
ㅂ. 초성의 경우, 각 발음 위치별로 가장 약한(最不?) 소리를 기본자의 대상으로 삼고, 나머지는 센 정도에 따라 거기에 획을 더하였다(加?).10)
ㅅ. 중성의 글자꼴 결정에는 음양오행설 등의 철학적 원리도 반영되었다.
ㅇ. 실제로 글을 적을 때에는 초성과 중성, 종성을 합해 적기로 하였다.

  위의 내용은 지금까지 확인된 제자 원리의 대강을 적어 본 것이다.11)

  제자 원리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자세히 논하자면 한이 없지만, 이 정도의 내용만 가지고도 제자 원리의 특징과 배경 등을 어느 정도는 분석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내용에서 확인되는 주요 특징은 역시 ‘독창성’과 ‘과학성’이다. 제자 방법이 이론적이고 그 이론이 새로운 것이었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 특성은 지금까지 수없이 언급되어 온 것이므로 여기서 다시 지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과 수립 배경 등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위에서 보듯이, 제자 원리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은 음에 관한 분석과 이론 수립이었다. 자세한 기록이 없어, 당시의 연구 방법과 과정 등을 소상히 알 수는 없지만, 완성된 문자 체계를 통해, 어떤 내용이 연구되고 결론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대강 파악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음을 세 부분으로 분석하고, 각각의 목록과 체계 그리고 특징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 내용을 제자(자형)에 그대로 반영했던 것이다.12)

  그러한 작업은 분명히 550여 년 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음 분석의 수준은 현대의 그것에 못지 않은 것이었고, 그 방법이나 결론면에선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도 주저 없이 한글의 ‘과학성’과 ‘독창성’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9) 초성과 중성의 문자가 구분된다고 하는 것도 한글만이 지닌 특성 중의 하나이다. 로마자의 경우는 자형이나 순서 등에서 자음자와 모음자가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10) 중성의 경우에는 어떻게 기본자의 대상을 정하였는지 드러나 있지 않다. 초성의 경우와 같은 원리가 아니었을까 추정해볼 수 있을 뿐이다.
11) ㅇ의 경우는 제자 원리가 아니라 그 이후의 결론 즉 표기 원리라고 구분하여 볼 수도 있다. 그러나 ㅇ의 내용이 먼저 결정되고 나서 제자가 이루어졌다면, 그것 역시 넓은 의미의 제자 원리에 포함될 수 있다. 실제로도 초성과 중성 그리고 종성을 합쳐 쓰는 것을 전제로 해서 자형이 결정된 것으로 여겨진다.
12) 여러 가지 내용이 포함된 한글의 제자 원리를 한 마디로 줄인다면, 소리의 체계와 특징을 글자(꼴)에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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