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창 석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머리말
  한글은 아주 독특한(다른 문자들과 다른 점이 많은) 문자이다. 여기서 한글의 어떤 점이 독특하고, 그런 특성들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에 관한 연구와 해설이 수없이 이루어져 왔고, 그 결과로 지금은 한글의 과학성과 독창성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글에 관해 논하다 보면, 누구나 아는 한글의 독특함을 재삼 언급하고 그 의미를 거듭하여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론적으로는 한글의 특성을 잘 알고 또 항상 말하면서도, 실제로 한글을 논하고 기술하는 과정에서는 그것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로마자와 일본의 가나(假名)는 기존의 다른 문자에서 파생된 것이다. 비단 이들 두 문자만이 그런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했던) 문자 대부분이 그렇게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1)

  그러나 한글만은 그렇지 않다. 한글은 15세기에 세종대왕이 창제한 문자이다. 그것도 대충이나 적당히가 아니라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만든 것이다. 한글이 다른 문자에는 없는 여러 가지 특징을 지니게 된 것도 이처럼 탄생 과정이 남다른 데 기인한다.

  한글을 만드는 과정에서 적용된 여러 가지 이론과 방법들을 통칭해서 보통 ‘제자 원리’라고 부른다. 이 글에서 주로 말하게 될 내용이 바로 그 ‘제자 원리’에 관해서이다. ‘글자꼴’도 이 글에서 다루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글자꼴을 결정한 원리나 글자꼴에 담겨진 내용이 곧 제자 원리이므로, 내용은 결국 한가지라고 볼 수 있다.

  제자 원리는 아무 문자에서나 논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글에서만 논의가 가능하고 또 필요한 내용이다. 오랜 시일에 걸쳐, 기존의 문자가 변형되어 생겨난 다른 문자들의 경우에는 ‘제자 원리’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글자꼴’에 대해서는 다른 문자들의 경우에도 논의가 가능하고 또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역시 한글의 경우와 같을 수 없다. 한글의 ‘글자꼴’은 서로간에 구별만 되는 단순한 부호가 아니라, 그 모양 속에 여러 가지 이론과 정보를 담고 있는 의미 있는 기호이기 때문이다.

  한글의 제자 원리 즉 문자를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등장했던 여러 가지 이론과 방법들은 그 내용이 후대로 전해지지 못하였다.2)
1) 한글만 아니라면, 모든 문자들이 같은 기원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한글이 알려지기 전에 나온 서양의 전문 논저들에도 그렇게 서술되어 있다.
2) 성종 때 나온 성현(成俔)의 “傭齎叢話”란 책에도 한글이 범자(梵字)를 본땄다는 언급이 나온다(其字體依梵字爲之). 따라서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면, 한글에 대한 오해는 창제 직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글은 세종 개인이 비공개적으로 창제한 것이므로, 사후에 창제 과정을 상세히 공개하지 않았다면, 당시의 사람들도 한글을 어떻게 만든 것인지 제대로 몰랐을 수 있다. 우리가 현대에 일어난 모든 일들의 내막을 다 알지 못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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