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위에서 논한 문제들과는 달리, 가로 풀어쓰기는 한글의 글자 모양을 바꾸자는 제안으로 하나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제안은 놀랍게도 이미 주시경의 ‘말의 소리’(1914)에 나타난다. 이 책의 맨 끝에 ‘우리 글의 가로 쓰는 익힘’이라 하여 한 면을 채운 것이 있는데 이 글을 해독해 보면 그 마지막 문장이 “가로글은 쓰기와 박기에 가장 좋으니라.”로 되어 있어 주시경이 ‘가로글’을 우리 나라 文字 改革의 理想으로 삼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가로글은 (1) 1913년에 준 ‘배달 말 글 몯음 서울온몯음’의 ‘맞힌보람’과 (2) 1915년에 준 ‘서울한글배곧’의 ‘마친 보람’에 실제로 쓰였다. (1)에 찍힌 도장 셋(배달 말 글 몯음, 솔벗메, 한힌샘)도 모두 가로글로 되어 있다. (1)이 ‘말의 소리’가 간행되기 전 해에 준 것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10)

  이러한 주시경의 생각은 제자들에게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과 열의를 보인 분으로 김두봉과 최현배를 들 수 있다. 먼저 김두봉은 ‘깁더 조선말본’(1934)의 ‘붙임’(附錄)에서 ‘좋을 글’이라 하여 가로글씨의 私案을 제시하였는데 ‘흘림글씨’라 하여 필기체를 고안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11)

   ‘글자의 혁명’(1947)의 머리말에 의하면 최현배는 1922년 여름에 한글 가로글씨에 대한 私案을 강연한 일이 있고 이어 東亞日報에 발표하였다고 한다. 金允經(1937)에는 1926년(11월 18일과 19일)에 朝鮮日報에 실린 최현배의 가로글씨가 소개되어 있다. 특히 그는 함흥 감옥에서 가로글씨를 연구하여 광복 뒤에 그 결과를 위에 든 ‘글자의 혁명’에 발표하였고 1963년에는 ‘한글 가로글씨 독본’을 간행한 바 있다. 가로글씨에 대한 최현배의 집념과 신념은 1955년에 ‘글자의 혁명’의 개정판을 내면서 쓴 ‘고친 박음의 머리에’의 첫 부분과 끝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내가 함흥 감옥에서 한글 가로글씨의 수십 년래의 연구의 끝맺음을 얻어 놓고서, 이것을 나의 목숨의 대가로서 바깥 세상에 전달하여, 뒷사람의 참고에 바치며, 또 실시되는 날이 있기를 기원하여 …
1954년의 새해를 맞이하여, 나는 큰 희망과 한결같은 정열을 가지고 이 책의 둘째 박음을 내면서, 우리 나라에 글자의 혁명이 하로 바삐 실현됨으로 말미암아 배달 겨레의 새 문화의 비약적 발전이 있기를 기대하여 마지아니한다.

   아마 가로 풀어쓰기에 대한 관심이 가장 고조되었던 것은 지난 20년대와 30년대 전반이 아니었던가 한다. 이 시기에 이필수와 金碩坤의 案도 발표되었지만 조선어학회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어 회원들에게 私案을 제출하게 한 일도 있었고 1936년 11월의 임시총회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한글의 原字形을 유지한 活字體를 채택하기로 결정을 보기도 하였다.(김윤경 1937 참고) 1937년 초에 간행된 ‘한글’ 5권 1호부터 표지에 ‘한글’의 가로글씨가 나타나게 된 것은 이 결의의 한 결과였다. 1936년 10월 28일에 간행된 조선어학회의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의 索引에 이 가로글씨가 쓰인 것을 보면 위의 결의가 있기 전에 이미 이 안이 학회에서 어느 정도 공인되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광복 이후에도 가로 풀어쓰기의 문자 개혁 운동이 한때 힘을 얻는 듯이 보였다. 그것은 주로 타자기 등이 보급되면서 한글의 글자 모양이 기계화에 적합하지 않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최현배(1947)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도 이것이었다. 그러나 가로 풀어쓰기는 학계나 사회에 넓은 지지 세력을 얻지 못하였다. 가로 풀어쓰기 주장의 주된 근거는 모아쓰기가 기계화에 큰 불편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 불편은 컴퓨터의 출현으로 많이 가셔졌으나, 그래도 아직 문제가 아주 해소된 것은 아니다.12)

  그러나 앞으로 기계화가 더욱 나아가면 모든 문제가 해소될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기계화를 위해서 글자의 모양을 바꾸는 것은 “마치 구두에 맞지 않는다고 병원에 가서 발을 수술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다.”(이기문, 1968)
10) 1912년의 ‘죠선어강습원’의 ‘익힘(에)주(는)글’은 縱書로 되어 있고 찍힌 도장은 ‘周時經’이라 되어 있음을 보아 修了證書에 ‘가로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13년으로 추정된다. (1)의 사진은 최현배(1970)에서, (2)의 사진은 ‘新生’(2권2호, 1929)에서 볼 수 있다. 이기문(1976) 첫머리에 轉載한 바 있다.
11) 이 책은 1922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날젹’이라 하여 速記體도 제시하였다.
12) 최근에도 컴퓨터 전문가로서 가로 풀어쓰기를 주장한 예가 있다. 박양춘(1994)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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