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세기 말엽에 한글 체계는 상당한 혼란을 보여 그 정비가 절실한 문제로 등장하였다. 1907년에 學部 안에 國文硏究所가 설치된 목적은 바로 이 문제의 해결이었다. 이 연구소에서 1909년 말에 작성한 ‘國文硏究議定案’은 ‘.’자의 존속을 인정하여 25자모 체계를 인정하였다. 이 글자를 뺀 24자모 체계가 주시경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의 개인 저술에서 지켜졌고 조선어학회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에서 마침내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생각하면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도전이 만만치 않았으니 그 역사를 잠시 더듬어 보는 것도 헛일은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이 도전은 고유어 표기와 외래어 표기의 두 방면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외래어 표기에서 제기된 도전은 오랫동안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고유어 표기에서 새 문자의 추가는 모음자에 집중되었다. 이봉운의 ‘국문졍리’(國文正理 1897), 이필수의 ‘鮮文通解’(1922)와 ‘정음문전’(1923)7) 을 들 수 있는데, 前者는 ‘ㅏ’는 長音, ‘?’는 短音이라는 그릇된 생각에서 출발하여 종래의 母音字들은 長音字로 보고 短音字를 새로 만든 것으로서 특별히 거론할 가치도 없으나, 後者가 주장한 (1) ‘ㅡㅓ’ 二重母音, (2) ‘ㅣㅡㅓ’와 (3) ‘ㅜㅡㅓ’의 三重母音을 표기하기 위한 새로운 合字를 제안한 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제 이필수(1923)에서 이들 모음이 든 예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현재의 모음자로 적는다)

(1) 健康, 聖人
섬[島], 범[虎], 적다[小], 언제[何時]
(2) 慶事, 鏡城
연한 고기[軟肉], 변이 났다[變生]
(3) 怨望, 遠視
훤하다[薄明], 훨훨 날는다[飛負]

  요컨대, 長音으로 발음되는 ‘어, 여, 워’의 ‘어’가 短音의 ‘어’와 발음이 다름에 유의하여 長音의 ‘어, 여, 워’에 대하여 새로운 글자를 제안한 것이다. 서울말의 ‘어’ 발음이 長音과 短音의 경우에 그 위치가 다름은 李崇寧(1949)을 비롯한 여러 논문에서 거듭 밝힌 바이며 최근의 예로는 兪萬根(1977)에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필수의 주장은 音聲學的으로는 타당성을 지니고 있으나 음운론적으로는 ‘어’의 異音으로 해석될 수 있는 면이 없지 않다. 그리고 요즈음은 서울말에서도 위에 말한 발음의 차이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음을 본다.

  24자모 이외의 새 글자의 필요성을 가장 강하게 제기한 것은 서양 고유 명사의 표기에서였다. 이 새 글자는 子音字에 집중되어 있음이 주목된다. 그 가장 이른 예로 ‘태셔신?’(1897)를 들 수 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漢字에 의한 고유 명사 표시가 原音과 동떨어진 사실을 발견하고 고민한 나머지, 그 卷頭에 ‘人地諸名表’를 붙이게 된 것이다. 이 表는 한글 原音 표기와 中國의 漢字 표기를 대비시킨 것으로 그 당시의 外來語 표기의 예들을 보여 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한글로 표기한 서양 原音이 대체로 영어 발음을 택한 사실이다.8)

  첫머리에서 몇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파리스 巴黎 法都
그리스 希臘 國
롬 羅馬 國 卽 府

7) 이 書名에도 아래에 든 二重母音字를 썼으나 편의상 ‘어’로 고쳐쓴다.
8) 오늘날은 이보다 조금 나아졌으나, 영어 발음을 존중하는 경향은 여전히 남아 있다.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