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우리 나라 학자들이 많이 논하였고 특히 1940년 ‘訓民正音’(解例本)이 발견된 뒤에는 목소리를 한층 더 높여 왔다. 과학적인 증명보다도 감상적인 예찬이 많았고 판에 박은 듯한 표현을 되풀이함으로써 설득력이 크지 못했음이 사실이었다. 한글의 독창성에 관한 주장이, 우리로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국제 학계에 먹혀 들지 않은 데는 우리 나라 학자들의 책임도 없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이 국제 학계, 특히 歐美 학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60년대에 들어서의 일이다. 여기서 우선 큰 몫을 한 것이 미국 하바드 대학의 교과서로 출판된 라이샤워(E. O. Reischauer)와 페어뱅크(J. K. Fairbank)의 共著(1960)였다. 이 책의 한국에 관한 부분(제10장)에서 라이샤워는 15세기 한국의 문화에 대하여 논하면서 한글은 아마도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모든 문자 중에서 가장 과학적인 체계일 것이라고 하였다.(Hangeul is perhaps the most scientific system of writing in general use in any country.)

  이보다 4년 뒤(1964)에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포스(Frits Vos)가 향가, 이두, 한글을 포함한 우리 나라 문자의 역사와 언어의 역사를 다룬 3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들은 미국 중부의 11개 대학이 참여한 위원회(Committee on Institutional Cooperation, CIC)가 1963년 여름에 연 세미나에서 발표된 중국, 일본, 한국의 언어와 문자에 관한 논문들을 모은 책(J. K. Yamagiwa 편, 1964) 속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중 ‘한국 문자: 이두와 한글’(Korean Writing: Idu and Hangeul)에서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알파벳을 발명하였다.”(They invented the world's best alphabet!)고 했던 것이다.(31면) 이것은 그 당시의 구미 학계의 분위기에서는 매우 대담한 발언이었다. 라이샤워의 글에 나오는 ‘아마도’(perhaps)가 없어진 대신 감탄 부호가 있음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이 발언은 그대로 묻혀 버렸을는지도 모른다. 위의 논문집은 동양의 언어와 문자에 관심이 있는, 극히 한정된 수의 학자들 사이에만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의 작은 돌풍이 일었다.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언어학자들이 보는 미국 언어학회 회지(Language 42권 1호, 1966)에 시카고 대학의 맥콜리(J. D. McCawley)가 이 논문집의 서평을 쓰면서 포스의 말에 전적인 동의를 표한 것이다. 포스가 최상급형을 쓴 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하고 그것은 벨(A. M. Bell)의 可視 言語 記號(Visible Speech, 1867)보다 4백년이나 앞선 것임을 지적하였다.(Vos’s use of the superlative has much justification, since the hangeul anticipates by over 400 years the idea of Alexander Melville Bell’s ‘Visible Speech’.) 한글은 各音의 음성적 특징을 시각화함에 있어, 벨의 그것만큼 철저하지는 못하다 해도,3) 자못 높은 수준의 調音 音聲學的 分析의 기초 위에서 창조적으로 만든 알파벳으로 높이 평가한 것이다. 끝으로 그는 한국에서 한글날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는 사실에 유의하였다. 실제로 맥콜리는 개인적으로 한글날을 명절로 지켜 왔는데, 한글날이 공휴일이 아닌 요즈음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3) 우리 나라 사람으로서 한글과 벨의 기호 사이의 유사성을 처음으로 지적한 安自山(1926)은 한글이 도리어 정치하고 결점이 적다고 평한 바 있다. 이기문(1988)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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