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글은 15세기 중엽에 국어의 표기를 위하여 창제되어 오늘날까지 쓰여 왔다. 지금까지의 한글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문자로서 그 지위를 굳혀 온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우리 나라 문자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마다 우리는 씁쓰레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 漢字의 시대가 너무나 오래 이어 온 것이다. 그런데 실은, 2천년이란 긴 기간보다도 이 문자의 기본 성격이 더욱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漢字는 중국어의 표기를 위하여 만들어진 문자로서 그와는 구조가 판이한 한국어의 표기에 쓰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에, 漢文으로 문자 생활을 하게 됨으로써 우리 민족은 입으로 하는 말과 글로 쓰는 말이 서로 다른 ‘言文二致’가 빚어지게 된 것이다.1) 우리 옛 사람들이 겪은 문자 생활의 어려움은 오늘의 우리로서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혹시 우리가 英文만으로 문자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면 그 어려움을 어림 쳐 짐작할 수 있을 듯도 하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게 된 근본 동기가 이 言文二致의 극복에 있었음은 길게 말할 것도 없다. 御製序의 첫머리에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 不相流通”(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漢字와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이라 한 것은 바로 이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민족의 먼 조상이 漢字를 받아들인 뒤에 그것을 손질하여 우리말 표기를 하였더라면, 그것이 큰 불편 없이 사용되어 왔더라면,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의 發想을 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큰 불행과 불편이 위대한 발명의 어머니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모든 위대한 창조적 업적이 그런 것처럼, 하나의 기적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이 문자를 만드는 데는 그 당시 우리 나라에 알려진 여러 알파벳 계통의 문자들(梵字, 위굴 문자, 티베트 문자, 파스파 문자 등)을 보고 이와 비슷한 성질의 체계가 한국어의 표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위에 든 외국 문자들 중의 어느 하나를 택하여 조금 손질하여 한국어 표기에 적용하려고 하지 않은 점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이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요 世界 文字史의 通例였음을 감안할 때 더욱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한국어의 문자화를 이룩함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문자 체계를 만들 생각을 하였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이것을 분명히 밝히기에는 오늘날 남아 있는 기록들이 너무나 짧다. 오늘날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기록은 ‘訓民正音解例’, 그 중에서도 ‘制字解’인데, 한글 창제의 기본 발상에 대해서는 극히 막연한 몇 구절이 있을 뿐이다.2)

   今正音之作 初非智營而力索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理旣不二 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이제 정음을 만듦도 애초부터 슬기로써 마련하고 애씀으로써 찾은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성음을 바탕으로 하여(성음의 원리에 따라서) 그 이치를 다한 것뿐이다.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 귀신과 함께 그 용(用)을 같이하지 않겠는가.
   旴 正音作而天地萬物之理咸備 其神矣哉 是殆天啓聖心而假手焉者乎. 아아, 정음이 만들어짐에 천지 만물의 이치가 다 갖추어지게 되니, 그 참 신기스러운 일이구나. 이것은 거의 하늘이 성인(聖人, 즉 성왕인 세종)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하늘의) 솜씨를 성인에게 빌려 주신 것이로구나.
1) ‘言文二致’란 말은 1909년 12월 28일에 國文硏究所가 學部大臣에게 제출한 最終 報告書에 보인다. 李基文(1970) 所載 影印 6면에 “言文이 二致고”, 310면에 “言文이 二致됨으로” 등 참고. 옛글이 오늘의 말과 같지 않음도 ‘言文二致’라한 예가 보인다. 312면, 325면 참고.
2) 번역은 姜信沆(1987)에서 옮겨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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